적과 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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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야욕 참회가 뒤섞인 역사소설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인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이자 희망일까? 

각자가 목표로 하는 사다리의 높이와 위치가 다를지 몰라도 상승에 대한 열망 자체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숙명의 굴레인가.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 인간사회의 양상이 1814년 나폴레옹 몰락 후 프랑스 사회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나폴레옹의 치하에서 신분상승의 격동을 목격한 쥘리앵이, 자신이 살고 있는 왕정복고의 시대에 대해 한탄하는 부분을 볼 때마다 '만적의 난'이 떠올랐다. 브장송의 신학교에서, 그저 배고픔을 면하게 된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이 체제에 끔찍히 순종하는 모습은 1984 빅브라더 체제에 비판없이 순응하는 이들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챕터마다 해당 내용에 상응하는 구절이 삽입되어있고, 군데군데 작가 갑자기 등장하여 본인의 변명을 하는 부분이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폭풍같은 후반부의 전개를 막 끝마친 지금 드는 생각은, 과연 마틸드의 명예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정말이지 쥘리앵이고 마틸드고 끓어오르는 격정과 젊음에 따라 튀어오르는 인물이다 보니 그들의 행동을 한치 앞도 예상할 수가 없다. 마틸드는 과연 자식을 낳았을까? 아마 임신 후 대략 6개월이나 지났으니 낳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비밀 출산을 하였을까? 아니면 가문의 권력을 등에 업고 새로운 청혼자 후보와 결혼했을 것인가...


이 책은 신혼여행과 그 후 대략 한달 동안 나와 함께 하였다. 휴양지로 여행을 간 터라 죽치고 읽을 책이 필요하여 적과흑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질 않아 완독하는데 대략 한달 조금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장편의 책을 읽고 나면 모종의 흐릿하지만 애달픈 노스탤지어가 몰려온다. 꼭 시간여행을 통해 1830년대의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책의 결말이 비극적일수록 배가되는데 그동안 정들었던 인물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니(그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드 크루아즈누아 후작의 죽음이다! 그는 마틸드의 돌아갈 거처가 되었어야 했는데!) 돌아갈 수 없는 도시를 영영 떠나버린 기분이 든다.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재판에서의 쥘리앵의 연설 아닐까. 거의 자살 선고와도 같았던 그 연설은 1830년대 사회의 핵심을 꿰뚫는 말이자, 여전히 현대사회에도 적용되는 문제를 꼬집는다. 해당 부분을 읽으며 나는 많은 여성들을 떠올렸다. 작은 재판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잘잘못을 가름하는 권력의 중추에는 여전히 남자들이 많다. 기득권인 남성들. 여성들은 매순간 다양한 이유로 말미암아 이들의 앞에 서고, 편파적인 판정을 받으면서도 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인간사회에서, 지배와 피지배층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성별이 아닐까. 그리고 여전히 이 공식은 유효하며, 두 성별이 동등한 권력을 누리기엔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여성판사로 가득한 재판장에서도 여전히 성범죄자는 지금처럼 깃털같이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인가. 권력의 핵심을 여성이 지배한 세상에서도 여성들이 지금처럼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을 것인가. 두 걸음 전진과 한걸음 후퇴가 반복되는 더딘 발전은 얼마나 더 쥘리앵과 같은 희생자들을 필요로 할 것인가.   

  

"배심원 여러분, 죽음의 순간에 부당한 경멸을 받을까 염려하여 발언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의 계급에 속하는 영예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본인은 자신의 비천한 운명에 반항한 일개 농부인 것입니다."
여기서 쥘리앵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본인은 조금도 환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죽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본인은 온갖 존경과 찬사를 받아 마땅한 훌륭한 부인의 생명을 빼앗을 뻔했던 것입니다. 드 레날 부인은 내게 어머니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내 범죄는 잔혹한 것이며 또한 계획적인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러므로 본인은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 P373

그러나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해도 사람들은 내 젊은 나이가 동정을 살 만하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젊은이를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 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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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싯다르타 (한글판+영문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205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진권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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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던진 고뇌라는 질문


무척이나 동양적인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고타마 싯다르타, 즉 부처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고타마가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아니었고, 동명이인의 싯다르타라는 자의 삶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작품 해설을 보니 해세 본인의 삶이 굉장히 투여된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야기가 얼핏 있었다. 그 말은 결국 이 책 또한 삶의 고뇌에 대한 절대 진리라기보단, 헤르만 헤세가 본인의 삶을 통해 찾아낸 본인만의 대답을 그려낸 것이란 얘기다. 아니 사실, 고뇌에 대한 절대 진리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각자의 생이 던진 질문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삶이니까. 모두에게 통용되는 진리란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고 아리송한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말은 불신하고 사랑할 수 없지만, 사물들은 사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싯다르타의 말을 듣고 있자니, 결국 나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 않나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참 고민하던 때, 잘 읽지도 않는 자기계발 서적까지 들추어가며 생을 고민하던 때, 수많은 명강사의 가르침과 명언들을 핸드폰에 저장하며 흔들리던 때를 보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이 모든 것은 결국 흩어져갈 '말'에 불과하고 생은 현재에 있다는 것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언들, 격언들, 가르침들을 꽁꽁 가슴에 묶어두고 싶었지만 그것들은 결국 살짝 구기면 바스러져버릴 말들이었고 중요한 것은 내 생에 대하여 내가 세울 진리이자, 태도였다.

 

이것은 내 삶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삶의 원칙을 세우게 되면, 그 외의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태도로, 내가 가장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원칙을 세운다면, 여러 명언을 가슴에 품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참으로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 방황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만큼 스스로에게 설득력과 진실함을 지니지 못했을 나의 결론이다. 


현재는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모종의 약소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는 듯싶다. 그저 덜 신경쓰고, 덜 흔들리고, 쉽게 기뻐하고, 쉽게 털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이 삶이 언제까지 얼마큼의 평온함을 내게 가져다줄진 모르겠지만... 부디 나도 생의 쇠락, 나의 쇠락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쇠락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는 상인들이 장사하는 것을, 귀족들이 사냥하러 가는 것을, 상을 당한 이들이 고인들 때문에 통곡하는 것을, 기생들이 몸을 파는 것을, 의사들이 병자들을 위해 애쓰는 것을, 승려들이 파종하는 날을 정하는 것을, 연인들이 사랑하는 것을,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는 것을 보았다. 그가 보기에 모든 것이 가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모든 것이 악취를 풍겼다. 모든 것이 거짓의 악취를 풍겼으며, 모든 것이 의미 있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썩어 없어질 것이었다. 세상은 쓰고, 인생은 번뇌였다. - P21

오, 고빈다! 나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아직도 그것을 끝내지 못하고 있네.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오, 나의 친구! 오직 깨달음이 존재할 뿐이지. 그것은 어디에나 있네. 그것은 아트만이야. 그것은 내 안에 있고, 자네 안에 있고, 모든 존재 안에 있네. 그래서 나는 깨달음 앞에서는 알고자 하는 것, 배움보다 더 사악한 적은 없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네. - P29

이 세상이 선한지 악한지, 이 세상에서의 삶이 괴로운지 즐거운지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단일성, 모든 사건의 연관성,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동일한 흐름과 법칙, 생성과 소멸되는 일에 포함되어 있다는 바로 이것이 당신의 고매한 가르침에서 밝게 드러났습니다. - P46

"저는 손님께 뱃삯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다음번에 제게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싯다르타가 명랑하게 말했다.
"물론이지요, 저는 모든 것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도 강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사마나 당신 또한 다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의 우정을 뱃삯으롱 하겠습니다. 신들께 제사를 올릴 때면, 잊지 말고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P65

싯다르타는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고, 많이 들었을 뿐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말라의 말을 기억하면서, 그는 결코 상인에게 종속되지 않았다. - P87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신 또한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랑을 기교로써 행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어쩌면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인배들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비밀일 것입니다." - P97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그는 생각했다.
‘모두 스스로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렸을 적에 배웠다. 나는 그것을 오래전에 알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단지 기억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위로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 P127

아니, 진실로 구하는 자, 진실로 찾고자 하는 자는 아무런 가르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미 찾은 자, 그 사람은 그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고, 모든 길, 모든 목표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 속에 살면서 신성한 것을 호흡하는 수천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결코 다를 바 없었다. - P144

당신이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만은 번뇌와 고통과 환멸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아들을 위해서 열 번을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아들의 운명을 조금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158

그는 카마스바미를 보았고, 하인들, 떠들썩한 술자리, 노름꾼들, 악사들을 보았고, 새장 속에 갇힌 카말라의 쏙독새를 보았고, 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살려 냈고, 윤회를 호흡했고, 다시 한 번 늙고 피곤했으며, 다시 한 번 혐오감을 느꼈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없애고 싶은 욕망을 느꼈고, 다시 한 번 그 성스러운 ‘옴‘의 힘으로 자신을 치유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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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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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다는 것.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오웬과 마일라가 떠올라 저렇게 제목을 적었다. 책을 덮고 난 지금 가장 인상에 남는 인물은 주인공보다는 마일라이다. 태린과 파로딘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었달까. 무엇보다 자꾸만 파로딘의 묘사에서 중년의 날카롭고 피곤하지만 나른한 인상의 '남성'이 자꾸만 떠올라서... 


결론적으로 몹시도 참신한 소재였으나 내용의 결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아 아쉬운 작품이었다.

그동안 김초엽 작품에 끌렸던 이유는 소재의 남다름도 있었지만 작품 내에서의 여성 캐릭터의 활용이 여타 작품과는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 안에서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고, 행동하고, 삶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캐릭터 사이의 미묘한 기류는 입을 틀어막고 떨리는 가슴으로 책장을 넘기게 하는 주요 동력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여성캐릭터 간의 에로스적 감정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오히려 흥미가 식어버렸달까. 게다가 둘이 같은 성별이었기에 망정이지 파로딘이 남자였다면 그들의 관계를 굉장히 불편하게 느꼈을 거란 확신 또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소재 자체는 항상 그러하듯이 놀랍다. 이렇게 방대하고 구체적인 세계관을 책 한권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책의 분량을 늘리고, 서사를 조금 다르게 풀어나갔으면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범람화된 세계를 창조해내면서 작가가 느꼈을 즐거움과 황홀함이 짐작되기도 하니, 책 하나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작품 자체에 그렇게 몰입하지 못해서 쓸 말이 많이 남진 않는다. 읽고 나서도 후기를 적는 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려버려, 태린의 여정의 끝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허탈함도 흐릿한 윤곽만 남긴 채 날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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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인간실격 (한글판) ㅣ 더클래식 세계문학 120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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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민한 인간의 기만적 붕괴



부족한 것 없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요조가 자신의 기민하고 유약한 자아를 건사하지 못하고 끝내 파멸로 굴러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어떤 해석을 덧붙여야 할까. 사실 초반에 나는 주인공의 감정적 묘사가 너무 극적이다 못해 너무 과해 작가가 이러한 성격의 인간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타인이 보내는 눈빛 하나에도 뜨끔하고 전전긍긍해하며 자기만의 소설을 지어내는 여리디여린, 너무나 조심스럽고 유약한 인간이다. 단단하지 못한 인간의 자아는 어떻게 물리적 풍요로움을 거슬러 스스로를 붕괴시키는가. 그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실, 옛날에 쓰인 책들을 읽다보면 아무리 명작으로 꼽는 책이어도 현대의 감성으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아마 인간실격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에는 뭔가 거창해보이는 저 제목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미약한 자아를 올바로 세우지 못하고 대중에 표류하며 피해의식에 의식을 지배당한 사람들 상당수의 호응도 한 몫 했겠지. 굳이 추려보자면 몇 가지 울림을 줄 듯한 문장도 있긴 하였으나 그리 길게 감상을 쓸 것이 못되긴 한다. 


풍요는 인간에게 독이 되는가. 

주인공 요조의 인간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우울과 고통은 어쩌면 그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느끼지 않았을 것들인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종류의 우울과 고통을 느꼈을 테지만 그것은 주로 삶을 살아내는 것에 대한 것이었을 테고, 지금처럼 회피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든 것의 결정에 남의 기준을 우선시하는, 그러면서 스스로 고통받는 그런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 고통받는 인간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가끔 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 인간이 성장하기 위한 것은 어느정도의 결핍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요조라는 인물은 이러한 내 생각의 방증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계속되는 요조의 여성편력과 이중잣대, 그리고 오히려 불쌍한 것은 희생된 여성들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니 하지 않겠다. 


인터넷 댓글에서 그런말을 본 적이 있다. 하나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자가 흘리는 눈물보다 10개 중 9개를 가진 부자가, 1개를 가지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 더 진실되고 처절하다는 말. 요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난다. 모든 것을 가진, 풍요로움 속에 서 있는 인간은 그래서 고상할 수 있고 그래서 고뇌할 수 있다. 그에게는 먹고산다는 일상의 일차원적인 욕구가 충족되므로, '삶'이라는 좀더 고차원적이어 보이는 무언가를 고상하게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화려하게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서 자살을 논했다는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에서처럼 우습고, 기만적이다. 그래, 기민한 인간의 기만적인 삶의 붕괴. 그것이 이 소설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다케이치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악마의 예언이었음을 저는 훗날 깨닫게 됩니다. 제가 누구에게 반하건 누가 제게 반하건, 이 반한다는 말은 너무도 천박하고, 분별없고, 그야말로 자아도취적인 느낌이라 제아무리 ‘엄숙한‘자리라도 그 자리에서 이 말 한 마디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 순식간에 우울의 사원이 무너지고 그저 밋밋한 폐허가 되어 버릴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자꾸 내게 반해서 오는 괴로움‘같은 속된 표현이 아니라, ‘사랑받는 불안‘같은 식의 문학적인 표현을 쓰면 또 우울의 사원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참 묘한 노릇입니다. - P33

"요조, 네가 날 도와줄 거지? 그렇지? 이런 집 따위, 같이 나가 버리는 게 나아. 도와줘, 도와줘, 응?"
아네사는 그렇게 격한 말을 내뱉고는 다시 울었습니다. 저야 여자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네사 누나의 과격한 말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부하고 알맹이 없는 내용에 김빠진 기분으로 가만히 이부자리에서 나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감을 깎은 다음 한 조각을 아네사 누나에게 건네줬습니다. 그러자 아네사 누나는 흐느껴 울면서 그 감을 먹고서 말했습니다.
"뭐 좀 재미있는 책 없어? 빌려 줘." - P37

저는 넙치의 집을 나와 신주쿠까지 걸어가서 품고 있던 책을 팔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역시막막해졌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지만 ‘우정‘이라는 것은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호리키처럼 노는 친구는 별개로 치더라도 모든 인간관계는 제게 그저 고통만 줄 뿐이고, 그 고통을 덜어 보겠다고 열심히 광대 짓을 하다 보면 도리어 기진맥진 녹초가 됩니다. 결국 몇 되지도 않는 지인들의 얼굴을, 그들과 비슷하게 닮은 얼굴조차도 오다가다 마주치면 심장이 철렁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에 휩싸이는 형편인 걸 보면, 저는 남들이 저를 좋아해 준다는 건 알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하기는 세상 사람들 역시 진정한 ‘사랑‘의 능력이 있는지 큰 의문이긴 합니다.) - P91

"그나저나 네 여성 편력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는 세상이 용납 못 해."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의 복수형을 말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단 말인지. 어쨌거나 강하고 모질고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그 세상인데, 호리키의 말을 듣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 거 아니야?‘ - P104

하지만 그때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철학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란 한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뒤부터 저는 이전까지보다는 그나마 조금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저는 조금 떼쟁이가 되었고, 흠칫흠칫 겁도 먹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호리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상하게 인심이 박해졌답니다. 또 시게코의 말을 빌리자면 시게코를 그다지 귀여워해 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 P105

세상. 저도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이며, 당장 그 자리에서만의 싸움이며,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도 노예 나름의 비굴한 보복을 한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한판 승부에 기댈 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의 명분을 부르짖고는 있지만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또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환영에 겁먹고 벌벌 떨던 데서 조금은 해방되어 예전만큼 끝없이 눈치보는 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적당히 뻔뻔하게 처신하는 기술을 몸에 익힌 것입니다. - P110

"아니야, 이제 필요 없어."
정말 드문 일이었습니다. 누가 권하는 것을 거부한 일은 그때까지 제 인생에서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제 불행은 거부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거부하면 상대의 마음에나 제 마음에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골이 생길 것 같은 공포심에 떨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반미치광이가 되어 그토록 원하던 모르핀을 아주 자연스럽게 거부했습니다. 요시코의, 말하자면 ‘신(神)과도 같은 무지‘에 감동받았던 걸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릅니다. - P150

‘폐인‘이란 아무래도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잠을 자겠다고 설사약을 먹고, 그나마도 그 설사약 이름이 헤노모틴이라니.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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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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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여는 첫 책.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을 읽는 참고서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방인을 읽으면서 아리송했던 부분들이 시지프 신화에서는 길고 아리송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이 풀어져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독립생활을 시작하면서, 죽음과 삶에 대해 구체적이고도 습관적으로 고민해본 끝에 내린 결론과 시지프신화에서의 결론이 유사해 아주 흥미롭다고 하겠다. 아니 생각해보면 신이 죽은 사회에서 현대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정적이지 않나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한번뿐인 이 삶 뿐이고 이 삶을 자의적으로 끝내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본인이 삶을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하나뿐인 삶에 충실하는 것밖에 더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은 작년 말 이방인을 읽고 나서 다 해버렸기에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난해한 비유와 설명이 가득한 시지프신화 였지만 그렇기에 군데군데 이해가 가는 부분이 등장할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막과도 같은 척박한 사유의 공간에서 부조리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음을 인지하면서도 그 부조리를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인간. 그래,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다.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2년 전에... 그때 내가 내린 결론도 비슷하다. 비슷하게 고독을 끌어안고 공허에 서 있는 것. 공허에 서서 현재 삶에 충실하는 것. 앞으로 마주할 삶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도 그것이었다. 


생각할수록 삶은 죽음으로써 완성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의 경중을 가릴 수 없을때, 나는 곧잘 죽음을 떠올린다. 삶만큼이나 너무나 당연한 존재, 항상 우리의 곁에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존재를 떠올릴 때면, 종종 나를 옭아매는 무엇인가를 끊어내고 자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삶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서글픈 느낌을 자아낸다. 콕 집어낼 수 없는 이 느낌은 꼭 이 거대한 우주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결국 혼자고, 나를 포함한 이 세계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는 날까지 이런 서글픈 행복을 끌어안고 갈 것이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의,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우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철학자가 존경받으려면 마땅히 자신의 주장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결정적인 행동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머릿속에서 분명해지도록 하려면 그것들을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 P15

물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몸짓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첫째 이유가 습관이다. 고의적으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습관의 우스꽝스러운 면, 살아야 할 깊은 이유의 결여, 법석을 떨어 가며 살아가는 일상의 어처구니없는 면 그리고 고통의 무용함을 본능적으로라도 인정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 P19

모든 위대한 행동, 모든 위대한 사상은 그 시작이 하찮다. 위대한 작품은 흔히 어느 길모퉁이를 돌다가 혹은 어느 식당의 회전문을 지나가다가 착상한 것이다. 부조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중략)

무대장치가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 전차로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 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이 끝날 때 느껴지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 P29

사실 그가 느끼는 것은 오직 그것,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죄뿐이다. 그에게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다. 이리하여 그가 스스로에 요구하는 바는 오직 자신이 아는 것만 가지고 살고, 실재하는 것으로써 자족하고, 확실치 않은 것이라면 아무것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사람들은 그에게 응수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가 상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확실성이다. 즉 그는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은 것이다. - P82

자살은 그것 나름의 방식으로 부조리를 해소해 버린다. 자살은 부조리를 바로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려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죽음의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에서 벗어난다. 부조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생각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현기증 나는 추락의 막다른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는 저 한 가닥의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수다. - P84

이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한 생애의 전체에 걸쳐 펼쳐져 있는 반항은 그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 편협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인간의 지성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광경보다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것이다. 인간적 오만이 펼쳐 보이는 그 광경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것이다. - P85

부조리는 인간의 극단적인 긴장, 고독한 노력으로써 끊임없이 지탱하는 긴장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매일의 의식과 반항을 통해 운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그의 유일한 진실을 증언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 번째 귀결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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