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살
이태제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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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장하는 폭력에 잠식당한 인간, 그리고 디스토피아


처음 책을 접한 것은 몇 개월 전이었나 알라딘 홈페이지에서였는데, 책 표지를 보자마자 너무 흥미로워 보여서 이 책은 꼭 읽어야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스포당하는 걸 별로 안좋아해서 책이든 영화든 아주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읽기(보기)시작하는데 푸른 살도 마찬가지로 '푸른 살의 창궐로 인해 범죄가 사라진 지구, 인류는 정말 도덕적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소개 문장(?)정도만 보고 흥미롭겠다고 판단했었다. 


결론은 그래도 꽤 재미있다. 작가님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부분부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거친 부분이 보이나 소재도 흥미롭고 부분부분 장면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연상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처음 작품의 1/3을 들어냈다고 하는데 다시금 여백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달까. 소설을 읽으면서도 너무 인물의 내면이나 기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설명이 너무 많다고 느꼈는데 그것이 이미 한차례 덜어낸 후라고 하니... 한편으론 작품은 작가가 쓴 것이지만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은 후부터는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닌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을 쓰는 인고의 시간동안 작가는 본인이 안내하는 길로 독자가 작품을 즐기길 바랐겠지만 그것은 마치 자식이 본인의 뜻대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만큼이나 어려운 것 아닐까. n년동안 몇 개의 팬픽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독자가 샛길로 빠져나가 자신만의 상상력을 구축할 여지를 없애버린 글은 읽는 이의 흥미를 급격하게 하락시키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혹시라도 궁금할까봐, 아니면 길을 벗어날까 봐 빼곡히 적어넣은 작가의 설명이 때론 글 자체를 읽기 피곤하게 만든다. 마치 사람이 빼곡한 관광지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책 내용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흥미로운 소재이기도 하고 넷플릭스 영화화를 한다면 꽤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다만 결말이 조금 아쉬운데 아이버스터가 갑자기 참회하고 본인의 목적을 전면수정하여 누나의 뜻에 따르는 부분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장편으로 길게 인물의 서사를 따라갔으면 납득이 수월하였으려나? 어쨌든 이 한권의 책으로 아이버스터라는 인물을 접한 나에겐 여전히 너무 결말이 허무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초반부터 불행한 복선을 잔잔하게 깔아놓고 마지막에 전 인류를 터뜨리는 방법으로 결말이 났어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러고 나서 에필로그에 그 대재앙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의 이야기로 결말을 맺었으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몇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후속작품의 여지도 있고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쨌든 재밌는 책이고, 소재만으로도 여러가지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서 좋았다. 



드레스덴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상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듯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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