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인간실격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120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소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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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민한 인간의 기만적 붕괴



부족한 것 없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요조가 자신의 기민하고 유약한 자아를 건사하지 못하고 끝내 파멸로 굴러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어떤 해석을 덧붙여야 할까. 사실 초반에 나는 주인공의 감정적 묘사가 너무 극적이다 못해 너무 과해 작가가 이러한 성격의 인간상을 조롱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타인이 보내는 눈빛 하나에도 뜨끔하고 전전긍긍해하며 자기만의 소설을 지어내는 여리디여린, 너무나 조심스럽고 유약한 인간이다. 단단하지 못한 인간의 자아는 어떻게 물리적 풍요로움을 거슬러 스스로를 붕괴시키는가. 그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실, 옛날에 쓰인 책들을 읽다보면 아무리 명작으로 꼽는 책이어도 현대의 감성으로는 쉬이 받아들이기 힘든 작품들이 많다. 아마 인간실격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에는 뭔가 거창해보이는 저 제목이 한몫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미약한 자아를 올바로 세우지 못하고 대중에 표류하며 피해의식에 의식을 지배당한 사람들 상당수의 호응도 한 몫 했겠지. 굳이 추려보자면 몇 가지 울림을 줄 듯한 문장도 있긴 하였으나 그리 길게 감상을 쓸 것이 못되긴 한다. 


풍요는 인간에게 독이 되는가. 

주인공 요조의 인간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우울과 고통은 어쩌면 그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느끼지 않았을 것들인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종류의 우울고 고통을 느꼈을 테지만 그것은 주로 삶을 살아내는 것에 대한 것이었을 테고, 지금처럼 회피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든 것의 결정에 남의 기준을 우선시하는, 그러면서 스스로 고통받는 그런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꼬일 대로 꼬여 고통받는 인간이 되지는 않았으리라. 가끔 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 인간이 성장하기 위한 것은 어느정도의 결핍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요조라는 인물은 이러한 내 생각의 방증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계속되는 요조의 여성편력과 이중잣대, 그리고 오히려 불쌍한 것은 희생된 여성들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니 하지 않겠다. 


인터넷 댓글에서 그런말을 본 적이 있다. 하나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자가 흘리는 눈물보다 10개 중 9개를 가진 부자가, 1개를 가지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 더 진실되고 처절하다는 말. 요조를 보면 그런 느낌이 난다. 모든 것을 가진, 풍요로움 속에 서 있는 인간은 그래서 고상할 수 있고 그래서 고뇌할 수 있다. 그에게는 먹고산다는 일상의 일차원적인 욕구가 충족되므로, '삶'이라는 좀더 고차원적이어 보이는 무언가를 고상하게 논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화려하게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서 자살을 논했다는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에서처럼 우습고, 기만적이다. 그래, 기민한 인간의 기만적인 삶의 붕괴. 그것이 이 소설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다케이치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악마의 예언이었음을 저는 훗날 깨닫게 됩니다. 제가 누구에게 반하건 누가 제게 반하건, 이 반한다는 말은 너무도 천박하고, 분별없고, 그야말로 자아도취적인 느낌이라 제아무리 ‘엄숙한‘자리라도 그 자리에서 이 말 한 마디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면 순식간에 우울의 사원이 무너지고 그저 밋밋한 폐허가 되어 버릴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자꾸 내게 반해서 오는 괴로움‘같은 속된 표현이 아니라, ‘사랑받는 불안‘같은 식의 문학적인 표현을 쓰면 또 우울의 사원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참 묘한 노릇입니다. - P33

"요조, 네가 날 도와줄 거지? 그렇지? 이런 집 따위, 같이 나가 버리는 게 나아. 도와줘, 도와줘, 응?"
아네사는 그렇게 격한 말을 내뱉고는 다시 울었습니다. 저야 여자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네사 누나의 과격한 말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부하고 알맹이 없는 내용에 김빠진 기분으로 가만히 이부자리에서 나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감을 깎은 다음 한 조각을 아네사 누나에게 건네줬습니다. 그러자 아네사 누나는 흐느껴 울면서 그 감을 먹고서 말했습니다.
"뭐 좀 재미있는 책 없어? 빌려 줘." - P37

저는 넙치의 집을 나와 신주쿠까지 걸어가서 품고 있던 책을 팔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역시막막해졌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지만 ‘우정‘이라는 것은 한 번도 실감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호리키처럼 노는 친구는 별개로 치더라도 모든 인간관계는 제게 그저 고통만 줄 뿐이고, 그 고통을 덜어 보겠다고 열심히 광대 짓을 하다 보면 도리어 기진맥진 녹초가 됩니다. 결국 몇 되지도 않는 지인들의 얼굴을, 그들과 비슷하게 닮은 얼굴조차도 오다가다 마주치면 심장이 철렁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불쾌한 전율에 휩싸이는 형편인 걸 보면, 저는 남들이 저를 좋아해 준다는 건 알지만 남을 사랑하는 능력에는 결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하기는 세상 사람들 역시 진정한 ‘사랑‘의 능력이 있는지 큰 의문이긴 합니다.) - P91

"그나저나 네 여성 편력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는 세상이 용납 못 해."
세상이라니 어떤 세상을 말하는 걸까요. 인간의 복수형을 말하는 걸까요. 대체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단 말인지. 어쨌거나 강하고 모질고 무서운 곳이라고만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온 그 세상인데, 호리키의 말을 듣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말하는 세상이란 건, 널 말하는 거 아니야?‘ - P104

하지만 그때 이후 저는 ‘세상이란 개인이다.‘라는 철학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란 한 개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뒤부터 저는 이전까지보다는 그나마 조금 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저는 조금 떼쟁이가 되었고, 흠칫흠칫 겁도 먹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호리키의 말을 빌리자면 이상하게 인심이 박해졌답니다. 또 시게코의 말을 빌리자면 시게코를 그다지 귀여워해 주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 P105

세상. 저도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시작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개인과 개인 간의 싸움이며, 당장 그 자리에서만의 싸움이며, 게다가 그 자리에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도 노예 나름의 비굴한 보복을 한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한판 승부에 기댈 밖에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대의 명분을 부르짖고는 있지만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 개인을 뛰어넘어 다시 또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의 환영에 겁먹고 벌벌 떨던 데서 조금은 해방되어 예전만큼 끝없이 눈치보는 일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적당히 뻔뻔하게 처신하는 기술을 몸에 익힌 것입니다. - P110

"아니야, 이제 필요 없어."
정말 드문 일이었습니다. 누가 권하는 것을 거부한 일은 그때까지 제 인생에서 그때가 유일했습니다. 제 불행은 거부할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권하는 것을 거부하면 상대의 마음에나 제 마음에나 영원히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골이 생길 것 같은 공포심에 떨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반미치광이가 되어 그토록 원하던 모르핀을 아주 자연스럽게 거부했습니다. 요시코의, 말하자면 ‘신(神)과도 같은 무지‘에 감동받았던 걸까요. 저는 그 순간, 이미 중독에서 벗어났는지도 모릅니다. - P150

‘폐인‘이란 아무래도 희극 명사인 모양입니다. 잠을 자겠다고 설사약을 먹고, 그나마도 그 설사약 이름이 헤노모틴이라니. 지금 저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상에서 딱 하나 진리 같다고 느낀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이 넘은 나이로 봅니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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