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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추로 완성되는 삶이라는 행복
글쎄. 뭐랄까. 책의 절반가량이 역자의 작품해설이었는데 차라리 작품해설을 읽기 전에 감상을 써 두었으면 좀더 작품 자체에 대한 진솔한 감상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작품해설을 읽음으로써 책의 어느 부분은 좀더 납득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여간 이 책은 시작부터가 아주 무미건조하고 강렬한데 1부내내 지속되는,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일상에 지쳐 스스로에게조차 무관심한 뫼르소의 태도는 아주 인상적이다 못해 충격적이다. 하지만 한발 물러서 돌아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그는 나의 모습일지도. 사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보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죽음을 인지한 사람의 시각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관념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현존하는 죽음. 나에게 닥치는 죽음. 지금 숨쉬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위태롭게 평화로운 일상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런 죽음 말이다.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빛을 바래고, 어떠한 것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차이는 묵살당해 버린다. 어짜피 내가 죽는다면, 지금이든 언제든 그 무엇을 한들, 아니면 하지 않는 들 무슨 소용이랴? 나의 죽음이라는 유일하고도 확고부동한 불변의 진실 앞에서는 삶의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연고로 1부에서의 뫼르소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마저도 그는 이방인처럼 군다. 오히려 삶의 추상적인 의미따윈 생각하지 않으므로 뫼르소를 움직이는 동력은 순간의 즐거움(전차를 향해 달리기, 마리 만나기 등)이다.
하지만 우리가 죽는다고 해서 삶까지 무력하게 살아야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우리는 어짜피 태어났고, 어쨌든 죽을거고, 그리고 그 사이 공백을 살아내야 한다. 아니 사실, 우리가 죽는다는 실로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삶은 이전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다. 더 살아낼 가치가 있는 무엇인가가 될 수 있다. 실로 낮에 빛나는 촛불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촛불이 더 밝게 타오르듯이, 죽음이라는 뿌리를 깊고 무겁게 드리우고 나서야 실로 살아있는 순간이 기쁨으로 타오르지 않을까?
1부내내 무관심함으로 일관하던 뫼르소 또한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죽음이라는 두껍고 육중한 무게를 깨닫고 나서야 본인이 매 순간 행복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삶의 막바지에서도 미래를 꿈꾸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
책의 뒷부분 작품해설란에 보면 이 책은 또한 현실 재판등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상 2부에서 당사자인 뫼르소는 제3자마냥 배제된 채 재판이 진행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역자인 김화영씨가 작품해설란에 잘 적어두었으니 내가 동일 내용을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여하튼, 파리로 떠나기 전에 프랑스 작가의 책을 한권 읽어보고자 한 선택이었는데 가슴 절절하게 울리는 내용은 없었으나 죽음과 삶을 둘러싼 무미건조함과 행복에의 깨달음이 인상깊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