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리마스터판)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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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이라는 수많은 퍼즐이 얽혀 이루는 세상


피프티 피플은 50명(엄밀히 말하자면 51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낸 소설이다. 각 장마다 해당 장의 이름을 하고 있는 이의 간략한 삶의 단편을 풀어내는데, 그렇게 한명 두명 읽다 보면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이들이 얽혀 이루어낸 사회가 눈에 보이게 되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실 한 서너장 읽었을때는 호흡이 너무 짧고 이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아 중단할까 싶었는데 중반부쯤 이르니 어느새 소설에 젖어들어 각자의 인생을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인물들의 격렬하고도 처절한 삶에 비해 이를 풀어내는 소설의 어조는 건조하고 잔잔하기 짝이 없어서 그 극명한 대비가 모종의 서글픔을 자아낸다고 하겠다. 


삶은 슬픈것이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을 꾸역꾸역 살아낸다. 살아내면서, 드물게 발견한 희망과 행복의 조각으로 눈물의 바다를 건너내는 것이다. 슬픈 이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슬픈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치있는 면모라고 하고 싶다.

지지는 주변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일부러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숨긴 적도 없었다. 누구든 물어보면 대답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묻지 않아서,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는 조용함이 좋아서 그냥 있었다. - P411

"그것보다는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압축이 쉽지 않았다. - P468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 P469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끔찍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좋게 소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또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는 거리까지.
(...)
젊은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요. 당사자니까, 끄트머리에 서 있으니까. 그래도 오만해지지 맙시다. 아무리 절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 P470

(새로 쓴 작가의 말 중)
어디에 계시거나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 속에 계시길 바랍니다. 단단한 곳에 함께 서서야 그 다음이 있다는 걸 이 이야기를 처음 썼을 때처럼 믿고 있습니다. -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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