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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를 위하여 ㅣ 한빛문고 15
황석영 지음, 이상권 그림 / 다림 / 2002년 4월
평점 :
‘힘은 무조건 센 것이 좋은 것이다!' 라는 짧고 굵은 메시지가 떠오르는 책이다. 제목을 얼핏 봤을 때는 어린 동생을 위한 낭만적이고도 따스한 전래동화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내 예상은 전혀 빗나가고 말았다.
이처럼 선이 굵은 단편을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이 시점에 <아우를 위하여>를 통해 무엇이 국민이 주인 되는 국가이며 지도자이며 민주주의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를 얻어 매우 고맙고 반가울 따름이다.
그런데 처음 접한 이 책의 책장을 몇 장 넘기지도 않았을 때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을 그토록 유명하게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1987년에 나온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 <아우를 위하여>는 1972년에 나왔으니 15년이나 앞 선 책을 이제야 만나다니…….
두 작품의 무대가 모두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서술하고 있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흔들며 사용하고 있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반장이 등장하는 것도 똑같다. 또, 후반에 그 어린 독재자의 횡포를 다스리는 선생님이 새롭게 나타나는 점도 그리고 비판의식과 불만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서술자 '나'가 등장하는 것까지 같다.
황석영작가의 <아우를 위하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스토리는 습사하지만, 그것이 우리사회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두 작가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문제해결을 향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즉,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엄석대가 학교를 자퇴한 후 서술자인 나와 30대 중반의 나이에 우연히 만났을 때는 열차 안에서 형사들에 의해 수갑이 채워지는 몰락을 그렸지만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영래파의 일원인 종하의 비굴한 사과는 받은 '나'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노깡'속을 자발적으로 들어가 그 두려움의 대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정복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이다. 또, 처음 들어보는 풍부한 어휘들, 그의 어린시절이 담긴 40-50년대가 내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묘사력이 뛰어나다. 비록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된 궁핍한 생활상을 그렸어도 어딘지 모르게 그립고 따스한 고향의 모습이 담겨있어서 앞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이 소설의 실제 배경은 1970년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생존권을 포함한 기본권도 유린당한 채 정당성 없는 독재 권력에 이리저리 끌려 다녔던 시절, 오직 힘 센 한 사람만이 옳았던 시절이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의 배경을 한국전쟁 직후의 시점으로 옮겨놓아 조심스럽지만 할 말은 힘을 주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래도 유신정권시절을 그대로 배경으로 했다면 과연 이 책이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나의 청소년시기를 되돌아보면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믿고 사고하고 말했던 것 같다. 87년 6.29선언을 이끌어낸 시민들과 대학생들의 민주화시위를 언론에서는 공부 안하는 돌대가리 대학생들이 버스길이나 막아서며 하는 폭력시위로 왜곡시켜 커다란 사진과 함께 폄훼했기 때문에 어린 나 또한 하굣길에 대학생들의 대모가 있을 때마다 터지는 매콤한 최루탄가스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맘속으로 나마 그들을 무시하며 미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체육관대통령을 다시는 세우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강한 열망이 대통령직선제라는 커다란 성과를 이끌어낸 위대한 승리였건만 어린 나에게는 단지 공부 못하는 대학생들의 한심한 작태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대선에 나선 후보자들이 합동연설을 하며 전국을 누빌 때 우리 반에서는 누군가 '김대중은 빨갱이다. 절대 뽑으면 안된다!' 라는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했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선거권도 없던 우리들이었지만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대통령이 된다고 저렇게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손을 흔들며 거리를 활보하는지 정말 무섭다며 호들갑을 떨 때 얌전히 책을 읽고 있던 김선영이란 친구가 발딱 일어서더니 우리들을 향해 "김대중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훌륭한 분이야, 그 동안 미국에 있다 돌아오신 것이지 북한에 있다가 온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런 훌륭한 분이 빨갱이라니 너희들은 진실을 모르고 있어!" 라며 평소 영어를 잘하고 단정한 선영이가 얼굴이 발갛게 상기가 되어 격앙된 목소리로 분노하는 것을 처음 본 우리들은 너무 놀라 이 번에는 선영이와 선영이 부모님을 '분순한 세력'으로 의심하기 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집집마다 누가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민정당마크가 새겨진 보자기와 푸른색 트레이닝복이 있었고 '보통사람'노태우후보야 말로 대통령감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던 시절이었으니까…….
이처럼 언론이라는 권력집단에 눈과 귀가 왜곡된 상태로 청소년기를 보낸 후 스스로 책을 선택하여 볼 수 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축복을 누리며 대학생활을 즐긴 덕분에 그 동안 내가 믿어 확신해 마지않던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만약 그 때 최루탄가스에 눈을 뜨지 못하며 집으로 향했더라도 그 시위가 진정으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한 고통스런 통과의례라는 바른 인식을 갖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회와 그 구성원을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우기엔 힘 센 어른들이 매일 찍어내는 신문이나 교과서에 실린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시, 수필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이다. 몸은 쑥쑥 자라나는 청소년기였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고 앞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좀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그리지도 못한 채 그 귀한 시절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황석영작가는 나와 같이 청소년기에 눈에 색을 입힌 선글라스를 끼고 사회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을 모두 자신의 동생, 즉 아우라고 부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아우들이 성장하여 청년이 되고 군 입대를 하기까지 덮어두었다가 그제야 이 사회를 똑바로 볼 수 있도록 아우들의 눈에 씌어있는 선글라스를 벗기기 위해 <아우를 위하여>를 편지글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선량한 반 친구들을 자의대로 억압하며 통치하는 소수의 영래패거리들을 타도해야할 악랄한 깡패집단으로 그리지 않고 생각이 모자라는 듯 단순하고 어리석어서 친구들을 못살게 굴었지만 사실은 그들도 마음이 여리고 바르게 가르치면 얼마든지 함께 어울려 놀기 좋은 아이들로 변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훈훈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가르침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작가는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재미를 주기도 하고 잘못된 역사관, 인간관을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특히 황석영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에게 독자가 기꺼이 돈을 내어 신간이 나오는 대로 책을 사는 것은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용기 있는 문제제기를 듣고 싶어서일 뿐만 아니라 그 작가도 자신이 쓴 글처럼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어린시절 나에게 다수의 견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그 선영이는 현재 어느 지방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통제된 사회 속에서도 바른 역사관, 정치관을 갖고 있던 그 선영이가 판사가 된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선영이가 지난 동창회에 불참해서 만나지 못했지만 조만간 다시 만날 텐데 그 때 선영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 주어야겠다. 친구들의 무지를 방관하지 않고 일어나서 바르게 알려준 그 용기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