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역사 - 대항해 시대에서 석유 전쟁까지
권홍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난스런 꼬리한 냄새를 피운다며 구석자리로 밀려날망정 질겅질겅 씹다가 중간에 멈추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오징어 씹기처럼 8개의 다리와 2개의 촉완을 몽땅 그 자리에서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심정을 이 책 '부의 역사'를 읽으면서 오래간만에 느껴보았다. 거의 중독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만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흥미위주의 역사비틀기도 아닌 폼은 좀 날 것 같지만 드라이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솟구쳐 오르는 이 책을 손에 잡고서 퇴근 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오직 이 책 읽기로 밤을 보낼 만큼 중간에 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줄이야! 법정 스님이 새벽 2시 까지 읽었다는 모출판사의 책처럼 이 책 부의 역사가 사람 안 놓아 주는 책으로 유명해질 것만 같다. 한 번 붙들면 끝을 봐야만 포만감이 생기는 그런 책을 만다나니 정말 뜻밖의 횡재였다.


만화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허영만의 <부자사전1.2>에는 한국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실제 부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사례 별로 나와있어서 호기심 충만하게 쉽게 쓱쓱 읽어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권으로 넘어갈수록 내가 기대했던 정당한 수단으로 부를 얻는 것은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순진함의 발상이며 실상은 졸부들의 천하를 부의 세계라고 일컫는 다는 것을 한 참이 지난 후에야 씁쓸하게 깨달았다.  그 방법이란 것이 참으로 정권의 실세와 결탁하거나 탈세할 구멍도 찾아가며 '개 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한국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인간됨'을 벗어 던져야 가능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받고 물러나고 말았기에 역시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고 생각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탓이었다. 10월부터 계속 소비를 줄여나갔다. 지금은 소비가 스트레스해소는 커녕 치열한 머리싸움 그 자체로 변해버렸다. 꼭 필요한 생활용품 위주로 쇼핑품목이 짜이게 되니 자연히 자기계발이나 뮤지컬을 통해 나 자신이 충전되고 발전하는 그 즐거움을 이젠 '똑똑한 이기심' 으로 여기며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도 책만큼은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을 골라도 예전처럼 자서전이나 인문학서 대신 실용서적, 그러니까 먹고 사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 책 부의 역사처럼!


역사의 갈림길,1492년 첫 소제목을 대할 때만해도 1492라는 숫자의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되는 이 책을 이토록 재미나게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 2세의 공동 왕국이 시작되며 동시에 에스파냐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몽땅 축출이 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몇 년 전 두 번씩이나 몰두하다시피 보았던 '킹덤 오브 헤븐'이 떠올랐다. 무대는 각각 에스파탸와 예루살렘으로 달랐지만 이슬람세력과 기독교세력이 함께 공존하던 것하며 왕국을 포기하는 대신 그 곳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순순히 수대에 걸쳐 통치하던 왕국을 등지고 떠나는 이야기 등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계속된 억압된 소비에서 벗어나고 파서 먹고사는데 도움이 될 요량으로 읽기 시작한 나는 왕국과 공주, 결혼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서서히 풍요와 낭만, 그리고 스릴이 있는 15세기 유럽으로 아주 천천히, 느리지만 평화로운 뱃길 여행을 떠나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부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은 세계역사도 한 나라가 영원한 주도권을 쥐고 찬란한 역사를 이어갈 수 없듯이 세계의 부 역시 그 주도권은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사실, 즉 부의 분명한 흐름이란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유태인이란 선택받은 민족의 이동과 함께!

처음에는 저자의 이 주장에 대해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파냐에서 알람브라의 칙령으로 비통하게 그 땅을 떠난 유태인들이 네덜란드에 정착하면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확인하면서 비로소 이삭 아브라바넬이 남긴 비수같이 날카로운 말-

 

 

'"우리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쳤는가? 당신들을 돕고 거들었을 뿐이다……. 그렇다 왕과 여왕은 실수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떠나도 영혼만큼은 결코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박해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떠난다. 그러나 이 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결코 ."

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부의 이동경로는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세계의 부와 유대인은 함께 움직였지만 저자가 주장하듯 유대인의 이동이 풍요를 가져온 것이냐에 대해서 큰 확신은 들지 않았다. 반대의견 즉, 유대인들이 풍요로운 지역을 따라 이동했다는 반론도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동하는 동안 유대인들은 그 옛날 칙령 하나로 삶의 터전에서 빈털터리 상태로 무능하게 쫓겨나올 때와는 그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그 막강한 부의 위력을 약자인 타민족에게 유감없이 과시하며 압제도 서슴지 않는 실질적인 세상의 강자로서, 지배자로서 서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새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신대륙발견을 통한 금 사냥의 결과에 온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이유는 보물선이나 바다 밑에 수장 된 해적들의 유품의 양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유럽인들에겐 야만스럽게 보였다는 그 원주민들, 인디오들을 짓밟고 그 피와 눈물과 땀으로 개발된 금광에서 캐 낸 그 금으로 그들이 얼마만큼 대단한 왕국을 건설했는지 , 얼마나 찬란한 역사를 만들었는지가 속 시원하게 밝혀지길 고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에 대해서 저자는 간단명료하게 이렇게 밝혀 놓았다.



"금이 더 많이 들어올수록 왕국이 보유한 금은 더 적어진다. 우리 왕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

그리고 에스파냐의 국력과 관련해서 국왕에 대한 평가를 보고서도 쉽게 그 말로를 알 수 있었다.

"카를 5세는 전사였으며 왕이었다. 펠리페 2세는 왕이기는 했다. 펠리페3세와 펠리페4세는 왕도 아니었고 카를로스 2세는 인간도 아니었다."




역시 역사는 탁월하게 재미있다. 현재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효율성면에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건들과 일련의 사실들, 사람들을 한 큐에 꿸 수 있는 그 놀라운 통찰력에 엄청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고한다는 것, 예측한다는 것, 그리고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것 이 모두가 역사를 알면 알수록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힘 있고 신속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매력이다.

 

 

이와 함께 내가 궁금했던 또 한 인물의 말로가 있었다. 바로 미국의 유명한 투기꾼이었던 대니얼 드루는 초상화에서 보듯 지독한 스쿠르지의 인색함과 동시에 한 번 물면 절대 먹잇감의 숨통을 놓지 않는 맹수의 날카롭고 잔인한 피냄새를 풍기는 사내였다. 그런데 15살 때 국가를 상대로 입영 장려금을 사기 쳐서 그 100달러를 종자돈 삼아 시작한 사업이 바로 가축사업이었다. 서부에서 소떼를 사들여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에 도착하기 하루 전 강제로 소들에게 소금을 먹인 후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있다가 정육업자에게 넘기기 직전 허드슨 강가에 풀어놓았다. 긴 이동과 갈증으로 지칠대로 지친 소들이 물을 먹어서 불린 중량만큼 드루는 큰 돈을 벌었다.


바로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그렇게 원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드루의 비법을 따라할 수가 없다. 생명이 있는 소들, 곧 도살장으로 보내어져 최후를 맞이할 소들에게 그렇게 무지막지한 고통을 주며 마지막까지 위에 가득 찬 물의 무게 때문에 숨도 편히 쉬지 못할 소들을 생각하면 그 떼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남보다 지독스런 잔인함과 생명을 상하게 하는 추잡함이 탁월한 자신을 오히려 남보다 지능이 뛰어난 잘난 사람으로 착각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그의 말로가 평탄했다면 아마 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잘못 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아무리 부자가 되고 싶어도 순하디 순한, 큰 눈에서 흐르는 소들의 눈물을 보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그런 일을 자행했던 그 망가진 인간성에 심한 분노와 함께 슬픔을 느꼈기 때문에 더 이상 계속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인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드루는 자신의 손으로 키운 후배세력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바로 그 '물타기'수법으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재산을 잃은 뒤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제1차,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강국으로 떠오르기 전 미국의 한 가난한 변호사가 석유추출을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이야기의 결과가 3번째로 궁금한 이야기였다. 조지비셀이란 이 변호사가 어떻게 법조문은 안 외우고 원유분석을 위해 예일대 벤저민 실리먼2세를 찾아갔는지도 무척 신기했지만 실제로 사상 최초의 수직 굴착식 석유시추에 성공한 에드윈 드레이크가 어떻게 근처 수백 개의 유정 가운데 자신의 유정에서만 단 30미터 파 들어간 상태에서 석유가 솟아났는지, 그 지점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그 대단한 성공에 대해 읽으면서 전직 철도원에서 인생 역전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흥분이 되었다.

그렇다! 많은 돈은 분명히 긴장을 느끼게 하고 강력한 호기심과 함께 그 유정을 내가 팠으면 하고 엉뚱한 탐심마저 일으킨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한계였을까!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찰스 폰지와 같은 사기꾼들과 석유라는 빼앗길 수 없는 검은 황금을 놓고 서로 웃으며 악수하다가는 등 뒤로는 총을 겨누고 2번씩이나 세계전쟁을 일으키는 인간탐욕의 역사이다.

어째서 최근까지 금융과 석유가 미국의 독점아래서 움직이게 되었으며 이란을 공격한 것도 역시 종교적인 커튼 뒤에 가려 진 검은 황금-석유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졌다.

저자가 지적한 작금의 금융위기에 대한 처방 법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미국에게 기대어 되도록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현 정권과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쇠고기개방요구에 반대의견을 표한 국민들에게 불순한 배후가 있다며 그 배후를 토설하라고 강압적인 공권력을 들이대는 정치인과 검.경찰을 생각하면 한 숨부터 나온다. 누구나 풍요롭게 살고 싶다. 그렇다고 힘이 약한 자들에게 그 모든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이 궁핍이 바로 미국을 반대한 너희들의 책임이라고 전가한다며 말 못하는 소떼들에게 강제로 소금을 먹인 뒤 도살장으로 팔아넘기는 것으로 부자가 되었던 대니얼 드루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의 탓인가를 따지기보다 객관적으로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부의 흐름 가운데 어느 지점인지를 정확히 파악한 후 그 해결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시작인 것 같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임기응변의 부정한 방법을 깨끗이 버리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미래가 보이지 않을까! 저자는 당장 돈에 목말라하는 이 조급한 국민들에게 쉽게 가는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고 하필 케케묵은 15세기 알람브라칙령부터 끌어내어 유대인들이 대거 이동한 네덜란드에 잉여자본이 생기자 우습게도 튤립 알뿌리 투기가 번성하고 끝내는 국민경제에 치명타를 입혀 그 주도권이 이웃 영국으로 이동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무엇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일까! 아무리 위대한 왕국의 역사도 순식간에 완성될 수 없듯,몇 백 년을 두고 세워지듯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탄탄한 부의 왕국 역시 우리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거기에 덧 붙여 나는 봉착한 이 금융위기에 누굴 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혹은 거기에 동조해서 나만은 무사히 이 난국을 피해갈까 하는 비겁함과 무지함을 벗고 프랑스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마른 전투에서 보여 준 그 자발적인 단결과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참여하는 그 공생의 수준 높은 의식을 배우길 진심으로 바란다. 조셉 갈리아니 장군의 한 밤 중의 '택시징발'이라는 명령에 적극 협조했던 르노 택시는 이 먼 나라 한국에도 르노 자동차로 진출해 있을 만큼 참으로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 믿고 힘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리더의 도덕성이 참으로 간절한 때이다.

조급함을 버리고 얼마나 오래 계속 될지 모르는 이 경제위기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서 이다음에 내가 몸소 겪은 이 혼란과 물질적인 궁핍보다 더 심각한 지도력결핍, 신뢰결핍의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는 책을 꼭 내고 싶다. 역사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것, 아니 나의 생명이 후세대를 통해 영원히 계속된다는 기대와 희망이다. 그렇기에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느냐 식의 아전인수격인 역사를 지양하고 따가운 회초리처럼 아프지만 곧고 바른 역사를 남기고 배워야할 책임이 있는 것이기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처 2008-12-25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말씀하신 역사책 꼭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멋질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

queen 2008-12-2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다니 마음이 풍요로와지는 것 같아요.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로처님도 꼭 힘을 발휘해 주실 분 같아
좋은 친구를 얻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