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쟁이 열세 살 사계절 아동문고 59
최나미 지음, 정문주 그림 / 사계절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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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을 펼쳐 헤드라인을 쭈욱 훑어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습관인데 요즘은 문득 이런 바램이 생겼다. 내게 오는 신문에는 사건 사고란을 제외시키고 보내주었으면 하는...... 오늘 아침에 서울에 사는 초등학생이 ‘TV를 그만보고 공부를 하라’는 엄마의 꾸지람을 듣고서 홧김에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생의 자살이라니! 그것도 어제 내가 읽었던 동화책 주인공의 나이와 같은 열세 살짜리 어린 아이라는 점이 너무나 섬뜩하도록 눈에 들어왔다.

사실 어제 읽은 ‘걱정쟁이 열세 살’은 상상과 웃음이 가득한 전형적인 동화(fairytale)에 가까울 것이라는 나의 기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작품이었다. 동화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조숙하고 생각이 많은 어른아이 상우와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눈쌀을 찌푸릴 만큼 되바라진 상은이, 그리고 삶의 고단함과 상처가 고스란히 조울증 증세로 나타나고 있는 엄마까지 어느 하나 동화에 나올법한 인물이 아니라 현실의 거리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사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의 중반이 넘어서면서 내가 기대하던 꿈의 나라, 환상의 나라 이야기 대신 누구도 별 관심없이 지나치는 도로 정리가 되지 못한 오래된 동네의 구불구불한 뒷골목을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나를 압도하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작고 수리할 곳이 많아 보이는 낡은 지붕을 얹은 집과 꼭대기에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감 몇 개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겨울을 나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힘없는 불빛이 어스름한 골목을 비취고 있는 조용한 집 앞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나의 의문은 계속되었다. 동화가 이렇게 어두워서야 어떻게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줄 수 있을까! 물론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니 인간세계의 어려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현실세계도 복잡한데 동화만이라도 이 메마른 현실 밖 너머의 촉촉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한 편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면서 끝을 맺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은 어른의 세계를 닮지 않은 완전한 선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그런 완벽한 장면들로 한 장 한 장 채워지는 것이어서 아이와 어른의 세계가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신문에 난 사건을 보고서 아이들을 위한 진짜 동화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다른 평범한 아이들처럼 장난도 잘 치고 감정표현도 스스럼없이 곧 잘 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내면도 과연 그런 것일까? 오히려 자신의 문제와 열등감을 감추려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다시 어제 읽었던 상우의 생각과 행동을 되 짚어보면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고 들켜서도 안 된다며 혼자서 끙끙 앓으면서도 천진스런 얼굴을 하느라 더욱 고통스런 아이의 비명을 들은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장 친한 석재와도 나눌 수 없었던 너무나 무겁고 창피한 짐.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곁에 없어서 보고 싶고 필요하고 그리워서 힘든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웃들의 관계에서 아버지가 집을 나간 사실이 탄로날까봐 두려움이 떠는 고통이 훨씬 더했다는 점에서 상우가 안쓰러웠다. 엄마와 누나와만 살고 있는 집을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집이라고 규정하면서 그 속에서 정상적인 아이가 되고 싶어했던 상우의 고뇌와 그런 아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굳이 아는 척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지켜보며 염려했던 상우엄마의 촉촉하게 젖은 눈을 보며 안심이 되었다.



정말 부모의 이혼이 어린 아이들 사이에 그토록 이해받기 어려운 문제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그보다는 이유를 불문하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와 얕잡아보는 시각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를 알면서도 쉽게 사회적인 편견에 가슴 아파하는 어린 아이들의 다독여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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