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함께 사계절 아동문고 58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이선민 그림 / 사계절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용과 함께

포치와 함께 노는 아이, 지능이 약간 모자란 듯함, 운동신경의 발달이 늦음

도키오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판단이다.



하지만 나는 형 다카시에 대해서 더 마음이 찡하다. 6살이나 어린 도키오가 때어나자마자 엄마의 관심과 보살핌에서 자연스레 멀어진 아이,”너는 형이니까 참아야 해!” 엄마의 한 마디 말을 엄마가 살아있을 때부터 엄마의 사후까지 지키며 엄마 품에 안기고 싶은 것도 참고 응석을 부리며 귀여움을 받고 싶은 것도 참고, 단 둘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소곤거리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오직 의젓한 형이 되어버린 아이. 그 아이를 만나자마자 내 마음이 뭉클하다. 엄마는 늘 도키오랑 같이 있다. 도키오의 웅얼대는 듯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루해하지도 않고 듣고 또 들으면서도 따뜻하고 사랑스레 도키오를 바라본다.

엄마가 죽은 후 다카시는 엄마가 했던 것처럼 혼자 노는 아이 도키오의 유치한 이야기를 애 써 들어주고 형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엄마의 교훈을 유언처럼 지킨다. 다카시 역시 아직 도키오와 별 반 다르지 않은 어린아이면서도 의지적으로 형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온 몸의 에너지를 다 짜내고 있는 것을 본다. 엄마의 죽음으로 도키오가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는 것은 가족 누구나 인식하며 인정하는 일이지만 도키오보다 엄마랑 함께 한 시간이 훨씬 많은 다카시의 충격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도키오보다 오히려 다키시가 더 걱정이 된다.

엄마와 자신의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 동생이 싫고 밉살스럽다가도 자신과 쨉도 되지 않게 너무나 약해 병치레가 많은 동생을 엄마가 안고 병원으로 갈 때마다 뒤에 남아서 함께 걱정했던 아이. 엄마가 죽은 후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구와도 대화를 단절한 어린 동생의 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더 열심히 공부하며 위태한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했던 아이가 눈에 선하다. 감기에 걸린 도키오도 염려가 되었지만 감기가 오래되어 폐렴이 되어버린 다카시가 더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 그 동안 도키오의 눈에만 보이던 하늘색 비늘이 덮은 용 포치가 다카시의 눈에도 선명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작 다카시는 아파트 14층 꼭대기 난간에서 포치를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는 위태한 도키오를 말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발이 붙어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또 한 번 영원한 이별을 하려는 어린 동생의 맹렬한 몸부림과 벌써 이 세상의 영역이 아닌 하늘 권을 유유히 날며 동생을 데려가려는 엄마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엄마라니! 아무리 겉으로 태연한 척 애쓰며 살아온 다카시에게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 사무치도록 깊은 것이었다. 엄마는 살아있을 때도 나보다 동생을 더 사랑했는데 지금 그 엄마가 동생을 데리러 온 것이다! 다카시는 입으로 불을 뿜는 성난 포치의 행동에 눌리지 않고 동생을 향한 따뜻하고 다정한 눈빛에서 생전의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지만 용으로 변한 엄마가 동생만 데리러 온 것이 서운해 질투가 난다거나 엄마를 따라가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억지로 놀아주고 형으로서 애 쓰고 있다는 생색을 내는 이기적인 형아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여린 동생을 붙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자존심 강한 아이 다카시가 그 절대절명의 순간에 아버지와 도키오가 듣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상상 속의 용 포치에게 “도키오를 제발 데려가지 말아줘, 엄마!” 라고 간절하게 소리내어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옥상 난간에서 마지막 한 발 마저 떼려고 하는 동생을 막은 것은 다카시였다. 모자란 아이, 재미없고 따분한 걱정스런 아이라고 은근히 평가절하며 자신과 통하는 면이 하나도 없다고 단정했던 그 동생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되면서 동시에 헤어지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확인하는 장면에서 내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연민이나 동정과는 분명히 다르다. 신체조건이나 사고능력, 취향을 가려가며 사귀는 것은 비판 받을 일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다.

  

그런데 가족은 그 보편성을 뛰어 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니 가족이기 때문에 그 탄탄한 보편성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신체장애의 벽보다 가족 안에 서로 치고 있는 상처 난 감정들과 피해의식의 장벽이 훨씬 더 거대한 것 같다. 너무 높고 단단해서 결코 작은 구멍 하나도 뚫기 어려워 상대방의 벽 근처에 갔다가 그만 주눅이 들어 다시 자신의 안전한 영역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가? 용과 함께는 엄마의 죽음으로 한 벽면이 폭탄 맞은 듯 무너진 가정이 어떻게 회복되어지는 지를 보여주었다.

 

가장 문젯거리라며 덤탱이를 써 왔던 도키오를 다카시가 “형이니까 참아야 해!” 식의 어거지 의지의 사디리에서 내려와 진심으로 한 인격체와 같은 높이에서 손을 잡는 화해를 보여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