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죽음의 문턱에 가 본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 두려움, 이제 정말 끝이라는 절망감 등과는 사뭇 다른 그들 만의 뚜렷한 색채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이렇게 좋은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바로 일생동안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소수의 사람들, 즉 가족과 더 많이 이해하며 사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그래서 전신마비의 고틀립할아버지가 이제 막 세상에 도착한 손자 샘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풀어 놓고 있으며 또한 자폐증을 달고살 손자에게 세상을 화해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소곤소곤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책에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엄청난 스캔들이라던지 우주의 신비 같은 것이 아닌 '사랑'이 담겨있다. 이 책에도 손자 샘에 대한 근심어린 애정뿐만 아니라 샘의 엄마이자 저자의 둘째 딸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 짧고 행복했던 결혼생활을 함께 한 아내에 대한 미움과 너무나 길고 진한 그리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유태인계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고마움 등이 골고루 담겨있다.
특히 고틀립이 5살 위인 누나 '샤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을 때 내 마음이 이상야릇해졌다. 나에게도 5살 어린 남동생이 있고 그 남동생 역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공공연히 누나와 자신과는 '애증의 관계'라는 불경스런(?)표현을 쓰고 있었기에 마치 내 동생의 심정을 고틀립을 통해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15살 때까지 누나 한 번 이기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고 이혼까지 겪을 때 그 누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삶의 이유가 되었는 지 모른다고 했다.누나가 자신의 잘 나가는 사업체를 가정파탄에 이른 어느 가장에게 선물로 주어 그 가정이 화목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누나의 장례식이 끝난 후 처음 알게 된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가장 친밀하고 좋은 혈육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여성,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다는 그 고백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누나들이 동생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서 모리교수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책 중간중간에 떠오른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용납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거나 이동할 수 없음도 받아들이고.... 고틀립박사 역시 심리상담을 하러 찾아 온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일을 하다가 바지가 다 젖도록 실수를 해서 그 당혹감과 창피함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을 때 바로 그 앞에서 그 꼴을 다 보고 느낀 한 소녀가 일어나 고틀립의 앞으로 다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꼬옥 안아준다. 이 장면이 가장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든 장면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고 아프고 병 들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조차 외면당하기 일쑤인 요즘 세상에 돈을 내고 상담을 하러 왔던 마음이 병든 소녀가 자신에게 한 창 조언을 하고 있던 박사의 몸은 자신의 마음보다 훨씬 병세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고 가까이 다가가서 박사를 위로해 준 것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소녀는 자신에게 못 볼 꼴을 보여 수치심과 당혹감에 말 한마디 못하고 떨고 있던 박사에게 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과 용납을 보여주었다.
이 후로는 박사역시 젊고 건강했던 자신의 몸이 어느날 갑자기 입만 겨우 열 수 있는 형편으로 변해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죽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살아야하는 이유. 삶의 목적을 찾기 시작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내 곁에서 정신이나 마음, 신체의 고통으로 불편을 겪고 입으로 하소연을 늘어 놓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 사람들 옆에 있으면 불편해져서 자꾸 자리를 옮기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양심에 가책을 받기 쉽상이었다. 시간을 내어 그 분들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그분 들이 하고 싶어하시는 말씀을 오래도록 들으며 혼자가 아님을,살아야하는 이유를 찾도록 스스로 느끼게 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