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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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의 기대작!
진정한 선한 이웃의 의미?
저자의 신선한 주제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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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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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원형은 무엇일까?

가끔 영화나 책을 통해서 접해보는 사랑의 형태들은 실로 다양하다.

처한 환경에서 오는 이별이나 사랑의 첫출발을 다루는 여러 가지 글들이나 영상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의 첫출발부터 아주 남다른 사연들을 지닌다고 볼 때 이 책은 그런 사랑에 대한 감성을 다룬 책이다

 

책은 첫 장부터 이별 장면부터 시작을 한다.

두 사람이 언제 만났으며 사랑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바로 헤어짐이다.

유부남인 티투스는 베레니스와의 만남을 포기하기로 하고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마음의 상처를 안게 된 베레니스는 주위의 모든 충고와 위로를 때론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위로 자체도 안된다는 심히 상실감에 빠져드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장 라신이라는 프랑스 작가의 시를 접하고서 그가 다룬 말들을 통해 자신의 아픈 심정을 위로받고자 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인 장 라신의 생애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독자들은 베레니스가 처한 상황과 장 라신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여성의 심리 상태를 그렇게도 구구절절 잘 그려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그의 생애를 통해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로 돌아가는 이중의 상황을 보게 된다.

 

로마 황제였던 티투스는 자신의 로마을 버리지 못하고 유대인 공주였던 베레니스와의 사랑을 포기한 이야기는 현재의 지금 유부남인 티투스와 버려진 여인 베레니스로 다시 부활하면서 베레니스란 이름은 사랑의 아픔을 겪는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형식을 취한다.

 

여기서 장 라신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 17세기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수도원과 또 다른 학교에서 살아가던 시절에 익힌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통해 고유의 언어와 자신이 생각하는 언어에 대한 자유분방한 해석과 번역을 통해 파리로 진출하게 된다.

 

수도원과 궁정생활이란 두 세계의 극과 극을 달리 한 생활은 그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했는지에 대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비극 작품을 연출하게 되고 이는 곧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책은 기존의 일반 사랑을 다루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쉽고 빠르게 습득되는 사랑의 표현방식은 수많은 라신의 언어와 글을 통해 저자의 지식을 마치 독자들이 재 습득하듯이 아포리즘으로  가득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의미와 그 상황이 부여하는 의미를 찾아가면서 읽게 하는 책이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이 글의 색채는 다른 책들이 전해주는 사랑에 대한 아픔을 대체시킬 수 있는 무언의 압박처럼 다가오는 구절로 인해 난해함과 장 라신이라는 작가에 대한 작품을 들춰보고 싶게 하는 의미를 부여시킨다.

 

사랑의 상실을 나타내는 라신 만이 그려낼 수 있는 언어의 뉘앙스는 아마도 그 당시 라신이 살았던 시대에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의 한 처세술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본인 자신이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껴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살아왔던 수도원의 생활과 궁정에서의 생활 속에서 갈등을 통해 사랑의 아픔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소설에서 라신은 사랑했던 여인과도 헤어지고 죽음을 맞기까지와 현재의 티투스 죽음을 동일선상에 올려놓는다.

죽기 전에 베레니를 보길 원하는 티투스-

그러나 베레니스는 “그들은 아직 그를 잃는다는 게 뭔지 알지 못한다. 고 말하며  그녀는 이미 , 두 번째 상실은 첫 번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라며 자신 “자기 안에 그런 잔혹함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헸던 것이라” 고 말한다.



 한 문장 한 문장 부드럽게 다가오진 않지만 묵직한 향이 나는 느낌처럼 다가오는 책, 그러면서도 사랑의 상실을 안고 있는 베레니스의 마음을 달래준 또 하나의 예리한 글들은 책 속의 베레니스뿐만이 아닌 만인의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시대를 뛰어넘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 주요 문학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인 만큼 세속적인 '사랑'이란 주제 안에서 볼 수 있는 상실에 대한 감성을 순수 문학 쪽으로  접할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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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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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실천자이신 법정 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실감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하고 보니 새삼 다시 마음의 다스림을 깨달아 가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물욕이나 기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상에 대한 소유욕을 저버리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지만 불일 암이란 암자에서 평소의 소신대로 실천하다 열반하신 스님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과 그동안 출간하셨던 책의 구절들을 이어서 같이 보는 느낌이 사뭇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최순희 님의 사진집 <불일암 사계> 속 사진들과 함께 스님의 글들이 같이 곁들여져 있는 책이다.

첫 장을 펼치게 되면 최순희 님의 인생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지고 책 중간과 종반부에 조금씩 할머니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는 정지아 님의 글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이 책에 대한 뜻깊은 것을 알아가게 한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고 그 안에서 탐욕과 무소유의 실천을 통한 구도자의 자세를 엿보게 되는 글들은 여전히 담백하고 절제가 된 문장들로 가득 차 있고 이를 뒷바침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최순희 할머니가 불일암에 드나들면서 찍은 사계의 모습들이 더한 감동을 전해준다.

 

 

 

 

 

 

1979년 한 여인이 스님이 계신 곳에 말없이 나타났다 안팎의 청소를 해주고 말없이 사라지는 행태를 보이기를 여러 해, 스님은 거부하지도 받자 하지도 않으셨다는데, 이미 최순희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알고 계셨기에, 그녀의 혼란스럽던 마음의 구도자로서 지탱해주고 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만 하게 할 뿐 정확한 두 분의 오고 간 편지들은 무소유의 실천답게 모두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에서 김영랑의 남동생과 결혼 후 사회주의자인 남편을 따라 월북을 하게 되고 이후 전쟁을 통해 빨치산에 있다 동료 몇 명과 함께 아들은 이북에 남겨두고 붙잡혀 평생을 괴로운 심정으로 살다가신 분이었다고 한다.

 

 

 

이런 자신의 기구한 운명 자체에 대한 갈구하는 심정을 스님을 통해 다스리게 됐고 행여 스님의 구도 생활에  방해가 될까 싶어 자연의 사진만 찍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런 소중한 불일암의 사계를 흙, 바람, 햇빛, 눈이란 제목을 달아 그때그때의 변화된 자연의 모습과 스님의 평소 모습을 물건과 자연의 조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귀중한 책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복잡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심히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 힘들 때 가끔 이런 산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본적인 자신의 마음속을 헤집는 원인을 다스리고 다른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을 되새겨보게 되는 책이란 생각도 들기에 잠시나마 정적인 고요함 속에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듯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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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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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그것도 두 군데서 한 해에 두 개의 대상을 거머 줬다는 것은 실로 어렵기도 한 일이기도 하지만 대상으로 뽑힌 그 이유엔 그럴만한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이 책을 접하면서 잠시 또 한 번의 흥분을 느낀다.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가로서 그의 작품인 '스파링'에 대한 강렬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매번 좋은 작품의 선정으로 인해 독자들로 하여금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준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바로 같은 작가란 기사를 접하고 무척 놀랐다.

 

 전작에 대한 기대를 또 한 번 느낄 수가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을 상상하기도 했던 바, 역시 이 작품 또한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글이다.

 

이마에 두 개의 탄알 구멍이 난 상태로 발견된 피해자의 수가 동일한 방식으로 발견이 되고 단지 유일하다 싶은 증거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선 좀체 보기 힘든 권총을 이용해서 죽인 사실뿐이다.

 

당연히 죽은 사람들에 관한 연관성 자체는 물론이고 전혀 어떤 근거도 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경찰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국민들은 그 대상이 모두 나에게도 해당이 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는데, 어느 날 저스티 맨이란 닉네임을 가진 자가 등장해 이 사건들에 대한 자신 스스로 나름대로의 자료와 논리를 통해서 사건 자체에 대한 전모를 제시하게 된다.

 

사건의 첫 주자의 발생 원인부터 조목조목 지적해나가는 일련의 사실성에 접근한 근거는 소수의 누리꾼들에 의해 이루어지다 어느 순간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게시물을 통해 그 숫자가 오십만이 넘게 되고 순간적으로 누리꾼들의 시선은 저스티 맨이 이루어 놓는 카페 가입을 시작으로 저스티 맨과 연쇄살인범에 대한 추종이 어느 신을 떠받들 듯 절대적인 신앙처럼 번지게 된다.

 

익히 익숙한 인터넷 세상에서 마우스 하나로 모든 정보를 습득하기 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너도 나도 누리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져 있는 사람들의 소양은 이 익명의 세계를 넘나들 때 과연 어느 정도의 양심과 자격을 갖추어져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떤 유명 연예인의 가십을 주제로 토론을 벌일 때 자칭 덕후들의 팬덤현상은 가히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정도를 넘어선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어떤 기사에 대한 내용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나 언행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나 설사 그 연예인이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들을 했을지라도 이미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그 사실마저 인정치 않는 괴력의 모든 행동을 불사하는 경우를 더러 볼 때가 있다.

 

나의 생각이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을 때의 현상, 바로 이 책에서 다루는 저자의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댓글 토론이나 그 현상에 대한 흥분을 넘어선 자제하지 못하는 일부 누리꾼들에 대한 모습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의 작은 시작점이 점차 팬덤처럼 커지고 저스티 맨의 주장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에 반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익명의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오고 가는 언어폭력을 넘어서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정의감과 도덕적인 행동에 따른 우월감이 전혀 나와는 연관이 없는 타자에게 어떻게 다양한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소수의 의견의 소중함은 아예 잘못된 식이란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다수의 논리의 대세 흐름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함마저 들게 한다.

 

폭력이란 것이 단지 어떤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언어라는 것을 통해 행해지는 폭력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려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실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모양새들은 살인의 원초적인 근본적인 실체는 이제 저리 가고 오로지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난상토론을 토대로 이를 어느새 자신의 왕국 안에서 군림하는 왕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저스티 맨이란 인물과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살인이나 폭력만은 안된다는 사실 하에 저질러지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처벌은 과연 법에 따른 정당한 형량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죽은 자들에겐 저스티 맨에 의한 논리에 의하면 모두 죽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 사회적으로도 없어져도 될 만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란 인식하에 어느새 누리꾼들 사이에 우상처럼 떠오른 게 되는 이러한 사회 현상 속에  그 안에서 무리들 틈에 끼여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들도 과감히 나서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와 양심, 특히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심과 그럴듯한 논리에 의해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의지마저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저자는 정곡을 찌른다.

 

 

-독단적으로 폭력 또는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없는 이들은 한데 뭉쳐 무리를 이룬다. 누군가 불을 지르면 따라 지르고 집회에 참가하면 그곳에 함께 서 있으며 소리치면 함께 고함친다. 그들에게도 역시 모든 게 수월하고 익숙하며 두려움 따위 이제 더는 없다.-p 219

 

악이란 타고났을 때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타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연쇄살인범의 행동이나 저자가 주장하는 본성이라고 부르는 악에 대한 것을 읽다 보면 과연 악과 선의 경계선을 구분 짓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태초의 정통성을 지닌 악은 삶의 또 다른 면이자 선이자 색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것을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 숨겨놓을 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매혹의 힘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이었다. 단숨에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까 두려워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무언의 합의. 또 하나의 본성.- p 9

 

 

책은 미국의 화가 잭슨 폴락의 그림의 제목을 소제목으로 이용하는 노련함을 보인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익숙지 않는 과감성을 보인 화가의 작품들이 어떤 특정한 논리와 전문가들의 소견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면 그 순간 그의 작품은 이미 어떤 평가 자체에 대한 선을 넘은 명작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처럼 이 연쇄살인 사건을 토대로 벌어지는 온라인 상의 누리꾼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심리 그 근저의 기저에는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 즉  도피적인 탈피에서 벗어나고픈 욕망과 그 실현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가상의 익명성이 보장하는 인터넷이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비열함과 뒤틀린 모습들을 통해 스스로의 자생력을 가진 악의 원천으로도 자생할 수 있다는 점, 이런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타인의 주장은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행동까지 갖게 되는 현상들이 새삼 또 다른 공포를 자아내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쏟아내는  비방과 욕설로 무릎 끊게 함으로써 더 이상의 반대 이론을 제시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근원은 바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숨어 있다는 사실, 특히 책 종반부에 범인이 하는 행동의 실천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보면 왜 저자가 잭슨 폴락의 그림 제목들을 이용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스티 맨을 내세운 저자의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그려낸 이 책을 통해 또다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도 한 여운이 남아 있는 책이기도 하고, 무심히 던진 돌에 개구리의 생명은 이미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경우를 볼 때 한 개인의 무심코 친 댓글로  인해 목숨까지 끊는 심정까지 가게 하는 일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서  근절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로 넘어가게 한 책이다.

 

저자의 추리기법을 통한 범인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기법도 인상적이었지만 사회 전반부에 흐르는 이러한 현상들을 제대로 그려낸 저자의 깊은 세심한 표현이 기억에 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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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소녀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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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한적한 산골 마을이나 다름없는 아베쇼란 마을에 정신전문 의사인 플로렌스에게 한 통의 전화가 한밤 중 걸려온다.

레베카 마이어란 여 검사가 데리고 온 자는 유명한 수사관인 포겔-

 

 

 

별다르게 볼 것 없는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서 벌어진 한 소녀의 실종사건을 수사 중이던 포겔에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소설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생활을 꾸려가던 지역이 광산의 발견으로 인해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된 사람들과 오리려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살아가던 마을이자, 종교적으로 보면 자생적으로 구성된 강한 신앙으로 뭉친 교구가 있는 곳으로 16 살의 애나 루란 소녀가 성탄 전야에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단이 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안개가 있던 날에 집을 나선 소녀의 행방은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을 사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수사관으로서 유명세를 달리고 있고, 한때는 한 사건의 불미스러운 결말로 인해 명성에 흠이 가 있는 포겔이란 형사가 보르기 신참내기 경찰과 함께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보통의 추리라면 이러한 배경 속에 소녀가 지니고 있던 교유관계, 부모와의 관계, 소녀만이 간직할 수 있는 비밀을 모두 파헤치면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도 당연히 보이지만 기존의 책에서 다뤘던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저자는 피해자의 실종을 다루면서 벌어지는 그 주위의 모든 것들을 통해 보임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통상 실종 시간이 어느 정도의 골든타임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고, 그 와중에 보다 적극적인 모색의 방안으로 미디어를 활용한다.

 

 

 

포겔 또한 오랜 경찰의 생활로 몸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미 실종이란 확신 아래에 자신이 이번 기회에 실수했던 전작의 수사를 만회하려는 노련한 수사를 펼친다.

 

 

 

작고 소박한 한 가정에 몰아친 비극, 처음엔 주위 사람들도 모두 염려하고 걱정스러워하며 촛불과 꽃들, 그리고 소녀가 좋아했다던 고양이 인형까지를 그들의 집 앞에 놓고 가는 성의를 보이고 주위를 둘러싼 숲 지역을 샅샅이 파헤치는 열성을 보이지만 이 모든 절차의 행위들을 고스란히 방송 매체란 미디어를 십분 활용해 이 사건을 부각하면서 사건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펼치는 포겔이란 형사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영상 속에 흰 suv차량이 포착이 되고 이 차량에 대한 조사는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내보이게 되는 결정적인 단서로 잡히면서 사건은 좀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의 본성, 특히 이 사건을 토대로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심정들이 고스란히 방송이란 매체를 통해 보이는 현상들, 실종된 부모와 실종된 소녀에 대한 우상화에 대한 흐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방조적인 호기심과 호시탐탐 이러한 사건들을 엮어내는 미디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어떻게 작은 마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이 사건을 자신의 촉수와 감각만으로 확정 지으며 범죄자를 몰아가려는 포겔이란 형사의 행동, 그 안에는 방송계와 서로 주고받는 이익의 타산 관계와 경찰의 투입 예산까지를 모두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는 실질적인 모습들이 들어 있어 충격적이다.

 

 

창조는 파괴를 선행하고 동시에 그 파괴를 따르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의 눈에는 애나 루 캐스트너를 희생의 제물로 삼아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중략) 희생이 없으면 신앙도, 순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간 세상에서는  벌써부터 애나 루를 신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P175

 

 

"왜냐하면 범인을 체포해야 우리가 좀 더 조금은 안전하다고 그나마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범답안은 따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우리도 사건에 연루가 되고 공범이 되기 때문이지요. 언론과 대중,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범죄자를 인간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범죄자들을 무슨 외계 종족이나 남을 해하고 악을 행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런 범죄자들을..... 대단한 인물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그 대단한 인물들의 대다수는 창의성도 부족하고 다수의 틀에서 벗어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개 개인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범죄자들이 우리 자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p129

 

 

작은 마을에서 신앙의 힘으로 살아가는 가족, 그 외에 자신의 또 다른 가정을 유지하고자 들어온 한 가정의 가장이 범인으로 몰리면서 어떤 뚜렷한 증거와 연관도 없지만 이미 범인이라고 낙인이 찍힌 한 인간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수사방식에서 소녀를 찾겠다는 원래의 초심은 뒤로 가고 미디어의 힘에 의해 실종자는 아예 죽었다는 기정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차후 벌어질 사건들에 관심을 모으는 일반 대중들의 기대심리를 비판한다.

 

 

평범함은 싫고 뭔가 도저히 눈에서 뗄 수 없는 그 어떤 현혹적인 이끌림, 악마의 등장으로 인해 활기를 띠는 이러한 사건의 현장을 보통의 우리들이란 존재로 불리는 인간들의 심성을 저자는 제대로 보고 근접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아주 솔직하게 그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혐의는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한 사람을 지목해 마녀 사냥하듯 몰아치듯 몰아가는 수사 방법의 차원을 넘어 가족까지도 외면하는 사태에 직면한 한 인간의 상실성까지 느끼게 해 주고 있으며, 무죄로 판결이 난다고 해도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입장에서 과연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까지....

그 와중에 보상의 차원으로 '돈'이 갖는 유혹과 매력 앞에서 저절로 관심이 가지게 되는 현상들을 실종이란 이름을 달고 펼치는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은  같은 이미지의 소녀들 실종이 이어지다 30년 전에 끊겨버린 사건과 애나 루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는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긴장모드로 독자들을 몰아가는 흡입력은 대단하다.

 

 

 

 

어쩌면 이 사건을 제대로 파악한 신참 보르기 경찰의 시선만 따라갔더라도 포겔의 실수는 없었을지도 모를, 한 소녀의 실종은 결말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독자들의 허를 찌르는 반전과 반전의 묘미를 뒤 몇 장 안에 강타한 사실들을 읽노라면 허걱! 이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모든 걸 영원히 뒤바꾼 밤은 한 통의 전화벨 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첫 구절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할 이 책의 전개 상황은 전혀 예측조차 못했던 사건의 진실과 정말 처단해야 할 자도  따로 있다는 사실의 진실조차도 모르고 넘어가게 되는 보통 사람들의 우월함을  이 책에선 여지없이 치부를 드러낸다는  느낌마저  전해 준다.

 

 

기존의 '속삭이는 자', '영혼의 심판'에서도 재미와 추리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저자지만 이 책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썼다가 다시 책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수긍이 갈 만큼 영상미로 만난다면 재미를 배가 시킬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보통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뒤로하고 오히려 다른 곳에 호기심을 기울이는 대중들에게 대한 궁금증을 이 책에서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한 만큼 책을 덮고서도 공포가 여전히 가시지 않게 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책을 읽었던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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