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p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을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ㅗ다 더 크고, 거기에는 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겨울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겨울에 읽어서 더 차가운마음이 드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울음의 의미가 슬프지만은 않다고 생각되는 어른이 되어서 다행이고 그의미를 아는 지금 나도 울음의 자리가 넉넉해서 좋다.)
18p
말도 사람도 진작에 사라졌지만, 그들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소리가 남은 것, 눈을 감고 그 장면을 상상하면 울컥할 만큼 좋았다. 누군가는 실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테지만, 나는 삶에 환상의 몫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려는 삶에서도 내밀한 상상을 간직하는 일은 필요하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히는 일이다.
언 강에 미혹된 것이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는 내가 잃은 목소리가 거기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힌다니 그렇다면 내믿음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건가? 어릴적 내상상은 제한이 없었다면 지금은 스스로가 아니고 어떤자극에 의해서만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 그모든것들이 도망이 아니였다니 현실도피의 상상은 착가이고 믿음의 성장으로 새해에는 그렇게 넓게 나아가보자)
25p
고양이들이 밤에 몸을 누이는 장소, 열매를 기대해볼 수 있는 나무, 울다가 잠든 사람들의 집....... 산책할 때 내가 기웃거리고 궁금해하는 것들도 모두 그렇게 하찮다. 그러나 내 마음에 거대한 것과 함께 그토록 소소한 것이 있어, 나는 덜 다치고 오래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일상의 폭력과 구태의연에 함부로 물들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그런 다음 나의 내면이 다시금 바깥을 가만히 보는 것이다. 작고 무르지만, 일단 눈에 담고 나면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세계를.
그러므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전과 다를 사람이 된다. 지혜로워지거나 선량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시의 한 행에 다음 행이 입혀지는 것과 같다. 보이는 거리는 좁지만, 보이지 않는 거리는 우주만큼 멀 수 있다. ‘나‘라는 장시(長時)는 나조차도 미리 짐작할 수 없는 행들을 붙이며 느리게 지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책은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나열하는 것인지 모를정도로 두꺼운 책들이 있다. 그런것들은 책의 두께에 따라가지 못하는 가벼움때문에 지루하기 짝이없이 느껴지고 오히려 발췌가 적어지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데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은 읽고 있자면 페이지한장을 발췌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책의 두께와 반비례하는 마음에 주는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런좋은 책을 만나는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믿고 싶다. 올해 많은 운명이 되준 작가님들과 그 문장들이 다시한번 감사하게 느껴지고 그것들이 내 내면을 만들고 있음에 기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