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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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 덕분에 미취학이었던 동생들은 할머니 집에 나는 늦게까지 혼자였던 1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친구들이 다 저녁 먹으라는 말에 하나 둘 사라질 때면 나는 집에서 혼자 엄마 아빠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었다. 그 무렵 집에 있는 그림책은 거의 다 읽었을 때라서 내 눈에 들어왔던 것들은 책장에 장식처럼 진열되어 있던 금박 제목의 고전소설이었다. 이야기가 긴 만큼 기다리는 시간은 빨리 갔다. 그때부터 나에게 소설은 늦게까지 나와 함께하는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계몽사가 최애 출판사였다면 커가면서는 매번 달랐다. 최근 들어서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한 곳이 작가정신이다. 북스타그램을 하면서 더 좋아졌고, 다양한 책들 특히 다양한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믿고 읽게 된 출판사이다. 벌써 35주년이라니 내가 소설을 읽기 시작한 해와 맞아떨어지는 것도 신기했다.

김사과, 김엄지, 김이설, 박민정, 박솔뫼, 백민석, 손보미, 오한기, 임 현, 전성태, 정소현,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천희란, 최수철, 최정나, 최진영, 하성란, 한유주, 한은형, 한정현, 한정임. 현역 작가 23인의 소설 생각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소설가의 소설 이야기라서 더 기대가 되었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하는 직관적이면서 인간적인 제목 표제작인 오한기 작가님 다운 소설가 오한기보다는 사람 오한기로 다가온 것과 나와 작가정신을 더욱 가깝게 이어준 작가님의 글이 표제작이라는 것 또한 뭔가 주파수가 맞는다는 생각에 신기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고 오늘까지 출판된 책들까지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책들이 더 많다. 내가 찾아서 만나 책들이 있다면 나한테 와준 책들이 있는데 작가정신 책들은 나한테 와준 인연이라는 생각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소설가 중에서 23명의 소설에 대한 진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어떤 책보다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인데 신기한 것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매번 낯설게 느껴지는 문체의 작가의 글은 천천히 꼭꼭 다양한 맛을 느끼면서 읽고 싶었고, 같은 엄마라서 공감 가는 작가님들의 글들은 너무 공감 가서 좋아하는 국수를 먹듯이 후루룩 빨리 읽게 됐다. 생물체마다 들을 수 있는 주파수가 있는 것처럼 글도 나에게 맞는 주파수가 있는 것처럼 동일한 느낌이 나는 것은 역시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조경란 작가님의 표현처럼 ‘작가사람‘의 글이기 때문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름을 가리고 읽었더라도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블라인드 서평단을 경험하면서 알게 됐다.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리고 책에서 더 좋았던 것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서재를 느낄 수 있고 근황을 알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문학만큼이나 에세이가 좋아지는 것은 십 대 때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궁금했던 것처럼 내가 소망했던 작가라는 직업의 인간다움 그들의 삶(본문에 수록된 사진이 모두 작가님들이 직접 제공한 작업실 풍경, 자주 찾고 머물던 공간, 영감을 준 사물 등 소설 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느낄 수 있어서라는 것을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마진을 따지기 정말 힘든 것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는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쓰는데 드는 경비 그리고 노동의 가치를 정확하게 따질 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결국 이 제목 자체가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해답은 있을 수 있지만 정답은 없는 그런 유의 문장.

소설은 그래서 매력 있고 그 글을 쓰는 이들에게 느끼는 감정 또한 여러 의미로 미지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는데 이번 에세이를 통해 생각보다 더 힘들고 고된 그렇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책과 이북으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밤늦게 와 새벽시간에 어둠 속에서 누워서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전자책을 즐기게 되었던 이유였는데

작가정신 책들이 밀리의 서재에 빨리 들어와서 반가웠다.

어두워질 때가 책 읽기 좋은 시간인 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도 아이의 작지 않은 목소리가 끝없이 들리는 일이 책 읽기에 마냥 좋은 환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또는 아무도 깨기 전에 먼저 일어나 불빛 없이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을 읽는 시간과 장소가 내 독서 스폿이 됐다.

그리고 23편의 에세이가 그 시간을 함께하기에 딱 좋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즐기에 딱인 그런 소설가들 개인의 이야기가 잘 어울렸다.

올해 읽은 책들 중에 마음에 들어온 문장들이 가장 많은 책이라서 독서노트에 필사를 7페이지나 했다.

소설가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새해에 나에게 동기부여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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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다독다독 2022-12-08 18:56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남은 연말 몸도 마음도 따뜻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