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
매튜 D. 리버먼 지음, 최호영 옮김 / 시공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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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fMRI를 이용해 사회인지신경과학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과학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이 책의 저자는 20여 년 동안 뇌과학과 연계하여 심리학을 연구한 미국의 현직 교수이다. 저자의 아내도 동일한 분야의 교수인 거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해당 분야의 다양한 논문들에 기반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책 뒤편에 50여 페이지가 넘는 참고문헌 목록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책은 그 두께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펼쳐내고 있지만 핵심은 우리의 뇌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리의 뇌는 사회적 연결에 대한 위협을 신체적 고통을 경험할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처방해주는 게 언뜻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진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사회적 추론과 비사회적 추론을 담당하는 신경체계는 매우 다르며 서로 대립적으로 작동한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비사회적 추론을 위한 신경망을 사용하면 할수록, 사회적 추론을 위한 신경망은 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뜻 대립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상보적일 때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뇌의 특정 부위와 관련된 인지심리 실험들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뇌가 틈만 나면 즐겨 하는 일이 우리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이라면서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없을 경우 뇌는 자신의 평생 취미로 관심을 돌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의 뇌는 사회적 세계에 관심을 돌린다고 한다. 뇌의 여가시간은 사회적 사고에 투자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타인 또는 타인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오랫동안 간직해온 지식에 새로운 경험들을 통합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또한 공정함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추상적 단서인데, 우리 뇌의 보상체계가 이런 단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특히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이 공통의 신경인지적 과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처럼, 신체적 보상과 사회적 보상도 공통의 신경인지적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경우의 사례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감동적인 말을 들을 때 우리의 뇌에서는 우리의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이 보상받을 때와 동일한 부위가 활성화 된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안녕에 대한 관심, 우리가 아끼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 상호협력은 모두 우리 뇌의 그러한 보상체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어서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마음 읽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러한 마음읽기 능력과 관련하여 심리화 체계와 거울뉴런에 대해 소개하면서 "왜"라는 질문은 언어나 심리화 체계를 활성화시키는 반면, "어떻게"라는 질문은 거울체계를 활성화시킨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신경과학 분야에서 지금까지 가장 무시되었지만 앞으로 10년 동안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될 뇌 부위는 중격부라면서 우리의 정서적 반응을 이타적 동기로 전환시키는 핵심고리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의 뇌에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기 위한 체계와 우리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기 위한 체계가 따로따로 존재한다면서, 몸과 마음은 현실 속에서 따로따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닐 것이지만 우리가 이 둘을 인식하는 방식은 뇌 안에서 따로따로 존재한다면서 철학 영역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심신이원론을 지지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저자가 원래 학부 때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철학 영역에 빗댄 이야기들이 군데군데 나온다. 특히 자기 혹은 자아를 트로이목마에 빗대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즉, 실제로 자기는 집단적 삶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진화가 꾸며낸 가장 교활한 책략이라고 언급한다. 자기의식은 대개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우리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 더 봉사는 비밀요원과도 같은 것이라고 니체가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더 나은 사회적 기술과 연관되어 있는 자제력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한 번에 오직 한 종류의 자제력만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 두 종류의 자제력을 하나씩 차례차례 발휘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제력이 개인보다 사회에 더 큰 혜택을 선사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정서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 밖에 진화는 우리에게 전방위적 자기통제의 메커니즘을 선사했는데, 이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고 평가할지 모른다는 가능성만 존재해도 사회의 가치나 도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제력과 충동억제의 자연스러움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생활했다면서 그곳에서 우리는 이웃뿐만 아니라 대다수 주위 사람들과 알고 지냈는데, 이는 공동체가 그만큼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난 20세기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이 우리를 예전보다 덜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파한다. 그런데 이는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의 삶에서 사회적 연결을 확장하는 것이 아마도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 가운데 단연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신봉하게 된 물질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팽배해졌고, 금전적 성공을 향한 열망은 많은 경우에 사회적 연결을 희생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사회적 기반을 재건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아파트에도 사회적 교류를 위한 개방 공간을 많이 확보해야 하고, 주민들의 친목 활동을 주선하는 사람을 임명하는 방안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눈길을 끌었던 이야기는 중학교 때 학업 성적과 학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동기인 소속의 욕구가 이 때 제대로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옮겨가고 과목별로 교사가 다르게 환경이 변화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이해를 촉진하는 심리화 체계가 가장 활발한 청소년기 초반에 아이들을 교실에 일방적으로 묶어두기만 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세계에 관한 것이며, 사회적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지 등이라 설명한다. 이를 위해 학과목들을 배울 경우 사회적 내용과 함의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역사 수업은 무슨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제한된 논의로부터 학생들이 갈구하는 "왜"에 대한 훨씬 풍성한 논의로 옮겨갈 필요가 있으며, 국어수업 역시 문법을 가르칠 때 왜 그런 규칙들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지, 그리고 언제 그러한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또래 교습이나 수업 중에 학생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증진시켜야 한다고도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fMRI보다 더 간편한 기능적 근적외선 분광법 머리띠의 확산이 점점 더 많은 연구 집단들에게 점점 더 실생활에 가까운 맥락에서 사회적 뇌를 연구하게 만들어 더욱 풍성한 결과들을 이끌어 낼 것이라 점치고 있다. 이 책이 주는 함의는 다양하겠지만 특히 사회형태를 규정하는 조직은 우리 뇌의 사회적 본성에 적합하게 발전해오지 않았다는 것이 손에 꼽힌다. 현 사회제도들은 우리에게 활력을 부여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간과한 채 우리의 지능지수나 소득수준에만 주의를 기울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앞으로 관련된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런 부분들이 많이 변화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곁다리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었는데, 1910년대 미국에서는 남자는 분홍색, 여자는 파란색이 더 적합하다고 사람들이 인식했다는 사실과 함께 가위바위보를 처음 하는 남성들은 게임을 시작할 때 보자기나 가위보다 바위를 더 자주 내는 경향이 있다는 언급이 그렇다. 이 가위바위보에 대한 또 다른 경향은 두 번 연달아 똑같은 것을 낸 다음에는 손동작을 바꾼다는 것이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읽어내야 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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