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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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MIT 학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인재답다. 또한 이 책을 번역한 이는 그를 지도교수로 모셨다고 한다. 사실 경제의 문외한이 보더라도 빚은 위험하다. 그걸 정작 경제학자들은 잘 모르나 보다. 이 책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꼼꼼한 이론적 지식들과 많은 통계자료 및 연구논문들을 바탕으로 빚의 무서운 파괴력과 빚과 거품경제, 그리고 그로 인한 경제적 대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역사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대공황과 대침체 직전 모두 가계 부채가 급증했고, 가계 지출이 매우 급감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대출이 많은 경제에서 집값이 폭락하면 순자산이 적은 채무자들이 손실의 가장 큰 부분을 감당하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이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도 언급되고 있다. 어쨌든 집에 대한 레버리지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집값이 떨어졌을 때 가계는 소비를 더욱 적극적으로 줄인다는 사실 하나가 이 책의 중심 키워드가 된다.

 

이렇게 한계 소비 성향이 큰 사람들에게 손실이 집중되기 때문에 경제 내 모든 사람들에게 손실이 균등하게 배분되는 경우보다 소비 지출의 감소가 더 크게 일어나는 현상을 레버드 로스(levered losses)라 일컫고 있다. 이 레버드 로스로 인한 수요감소가 가져오는 연쇄효과 중 가장 무서운 효과는 대규모 실업현상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의 경제 위기를 몰고 온 주택 시장 붕괴 때 이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지역의 근로자들도 수요 감소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를 채무자 섬과 채권자 섬을 예시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호황일 때 아무런 빚이 없던 가계도 불황과 함께 수요가 감소하면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사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 위기에 대해 서술한 책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 책은 이 위기에 대한 후속 연구논문들을 주로 소개하면서 분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소득 증가율이 낮았던 지역에서 더 많은 모기지 대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지리적 요인에 따른 주택 공급의 탄력성으로 대출 증가와 거품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주택시장 거품이 모기지 대출 증가의 원인이 아니며 오히려 신용확대로 인해 집값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결국 한계 대출자에 대한 대출 증가가 소득이나 생산성의 증가, 심지어 집값 상승 때문이 아니라면서, 그 이유를 1990년 대 초 미국의 대출 붐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태국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설명한다. 말하자면 1990년대 말 아시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IMF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외환 시장의 급격한 자본 유출과 은행 부문의 예금 인출 사태 가능성 때문에 대규모 달러화를 각국의 중앙은행이 보유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에 쏟아져 들어온 엄청난 자금이 주택 시장 붐과 맞물리면서 민간 부문의 증권화 쪽으로 흘러간 게 그 원인이라 말한다.

 

사실 이러한 증권화 때문에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하고 감독하려는 동기가 감소했고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결국 간과된 위험이 발생할 때만 손실이 커지는 증권을 투자자에게 판매하게 되어 거품이 터지자 다 같이 망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빚이 거품을 더 크게 키우는지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그리고 집 100채를 가지고 역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후반부로 가면서 어떻게 이런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 정책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이렇게 거품이 터진 상황에서 은행을 보호하는 것이 좋은 정책일지에 대해 저자들은 전혀 아니라고 답변한다. 예금주와 지급 결제 제도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행의 장기 채권자와 주주들을 지원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가계에 대한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는 것은 마치 숙취 해소를 위해 해장술을 마시려는 것과 같다는 멋진 설명이 덧붙여진다.

 

저자들은 이렇게 은행을 구제하는 것보다 가계 부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더 나은 접근법이라 설명한다. 사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채무자들을 이렇게 돕는 것 역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주택 소유자들은 집값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순진한 채권자를 이용한 주도 면밀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채무자와 채권자 간 보다 공평한 손실 부담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레버드 로스로 인한 재앙은 항상 채권자들이 대출을 쉽게 해줌으로써 발생한 자산 가격 거품의 결과로서, 이런 맥락에서 채권자들도 경제적 파국의 결과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며 이들에게 손실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정책적으로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고 인플레이션을 유지할 수 있다면 채무로 인한 불황의 부정적 효과들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부의 재정 지출을 통한 단기적 경기 부양책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책들보다 채무 재조정이 더 효과적이라 저자들은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들이 내놓은 최상의 해법이 바로 책임 분담 모기지라는 것이다. 레버드 로스로 인한 재앙을 아예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 이득이 발생할 때는 이득을 나누고, 손실이 발생할 때는 손실을 나누는 금융시스템인 셈이다. 즉, 모기지 상환 일정을 살고 있는 지역의 주택 가격 지수에 연동하여 정하고 채무자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득의 5퍼센트를 채권자에게 지불한다는 조건의 모기지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책의 맨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해결책은 분명해 보이나 현실적으로 현 기득권층이 빚의 사용을 권장하는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 조심스레 언급하고 있다. 어쨌든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다각도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구성되고 잘 번역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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