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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ㅣ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평점 :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을 기억하는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민음사가 출간한 국내 판본의 표지 그림에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인 에곤 실레의 독특한 자화상이 프린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반에 에곤 실레의 작품들을 직접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 등에서 감상하면서 그의 일생에 대해 잘 알게 되었는데, 에곤 실레와 다자이 오사무는 여러모로 닮은 곳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가 써 내려간 다양한 소설 속 문장들을 통해 그의 작품과 인생을 되돌아보도록 구성되었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소설은 "사양"인데, 몰락한 귀족 가문의 삶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와 상실, 그리고 극복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혁명도 사랑도,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달콤한 것이라서,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고의로 그것을 '신포도'라고 거짓말하며 우리에게 가르쳐 왔음에 틀림없다고 믿게 되었다."라던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쨌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면, 이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보이는 모습도 미워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와 같은 문장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이 소개되고 있는데, "신에게 묻는다, 저항하지 않는 것은 죄인가? 인간, 실격, 이제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핵심 문장과 함께 소설 속 주인공을 다자이 본인과 동일시하는 여러 모습들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겉으로는 유머러스하고 사교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지만, 내면적으로는 타인과 자신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불안에 휩싸여 있는데, 이러한 광대의 모습은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지적한다. 이 주인공은 스스로를 죄인처럼 살면서도 죽을 용기를 내지 못한 자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타인에게 보이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의 간극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면서, 이 때 느끼는 불안과 고통은 사회적 규범과 기대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감추고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그의 소설 "어쩔 수 없구나"가 소개되고 있는데, 매우 짧고 위트 있는 문체로 전쟁 중 피난민과 농민의 대립을 묘사하면서 당시 시대상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쨌든, 일본도 이제 새로운 발명을 해야 해. 남자도 여자도 힘을 합쳐 새로운 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거에요. 시골 농민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훌륭하게 갱생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와 같은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인간관계와 사회적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깊은 절망감과 함께 체념과 허무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다음으로 "여학생"이라는 소설을 소개해주고 있는데, 한 소녀의 하루를 통해 인간관계와 내면의 갈등, 그리고 정체성의 성찰을 잘 다루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여학생은 자신이 가족과 세상에서 기대 받는 좋은 딸과 자신의 솔직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내면의 고통과 방황이 그저 지나가는 한순간일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려고 애쓰면서 이 모든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 다음에 소개된 소설이 "직소"였는데, 처음부터 예수와 유다 사이의 갈등 관계가 등장해서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속 내용을 보는듯 싶었다. 이 소설 안에서 유다는 단지 배신자로 묘사되지 않으며,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절망과 분노 속에서 비틀리고, 흔들리며, 끝내 파멸로 예수를 이끈 인물로 묘사된다. 유다의 예수를 향한 진심은 순수했지만, 그 순수함이 외면당할 때 증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감정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할 때 어떤 파멸에 이르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어서 소개되는 "달려라 메로스"의 경우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시 "인질"에서 영감을 받아 재구성한 내용이라 어디서 많이 본 약간은 뻔한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소개되고 있는 다자이의 소설들은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실감하게 했다. 소설 "앵두"의 경우 부모의 책임감과 아울러 무력감을 다루고 있는데,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 사이에서의 혼란을 "아이들보다 부모가 더 약하다."는 언급으로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설 "어머니"의 경우 전쟁 후 피난 생활이라는 배경에서 지방문화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탐구하면서, 전쟁에서 귀환한 청년의 일화를 통해 우리가 타인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셋째 형 이야기"나 "비용의 아내" 같은 경우 가족 간의 유대, 희생과 독립 사이의 복잡성과 같은 문제를 절묘하게 다루고 있는데, 특히 "비용"은 15세기 프랑스 시인 프랑수아 비용을 가리킨다고 소개되고 있다. 시인 비용은 방탕한 범죄자이면서도 인간의 죄와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한 인물인데, 다자이는 그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겼다면서 말이다. "비용"은 다자이 자신이고, 그가 그려낸 여주인공은 그를 끝까지 이해하려 한 세상의 마지막 사람이라면서, 마지막 대사인 "인간답지 못하면 어떠냐"는 소설 "인간 실격"의 "나는 인간으로서 실격되었다."라는 문장과 대조적이라 언급한다. 그 밖에 소설 "사랑과 미에 대하여"를 읽으면서 예전에 TV드라마로 유명했던 "환상특급" 같은 것을 보는듯 했다. 다섯 남매가 노수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이야기 짓기에서 시작해서, 남매들 각자의 개성과 시각을 반영하여 수학자라는 인물을 세밀하게 구축해 나갔는데, 그러다가 가상의 이야기가 끝난 순간, 예상치 못한 사건(밖에 노인이 서 있다)이 벌어지며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분위기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라는 소설가가 단순히 인생의 파멸과 허무를 그리지 않고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각도에서 탐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