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한시 - 사랑의 예외적 순간을 붙잡다
이우성 지음, 원주용 옮김, 미우 그림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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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의 제목이 [로맨틱 한시]인데 책 자체가 로맨틱 하다. 표지부터 회화적인데 펼치는 쪽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하다. 마치 채색 수목화 화집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가 왼쪽으로 책을 넘기는 대부분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오른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돼 있다. 오래전 한자로 책을 쓰던 시절 책을 오른쪽으로 넘겼던 것처럼.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걸까?


 이우성은 패션매거진 [아레나 옴므+] 피처 에디터 겸 시인이다. 2012년에 시집을 낸 적도 있다. 이 책에서는 에세이를 담당했다. 모든 한시 뒤에 붙은 짤막짤막한 에세이는 모두 이우성의 글이다. 덕분에 지난 연애사가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데 음... 여자 입장에서 보면 좋은 남자 같지는 않다. 책에 실린 에세이로 만나는 이우성은 그런 거 같다는 뜻. 모든 사람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글에서 만나는 이우성이나 오프라인의 이우성은 또 다른 얼굴이겠지. 채색 수묵화 같은 그림을 그린 사람은 미우다. 에니메이터로 일한 적도 있고, 작게 전시회를 한 적도 있고, 온라인 사이트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며, [월간 객석]의 삽화도 그렸고, [THE MOUNTAIN RATS] 표지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색연필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느낌이 있다. 한시를 번역한 원주용은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안동대, 원광대, 상지대 등에서 강사를 역임한 뒤, 현재 성균관대 겸임교수, 전통문화연구원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이 첫 책은 아니다. 벌써 5권의 책을 낸 적이 있는 경험자다.


 책은 크게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뉜다. 사랑을 하며 겪게 되는 과정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눴다고 보면 된다. 첫사랑, 사랑의 기쁨, 변심, 그대를 원하고 원망해요, 이별 후에도 사랑은 끝나지 않아, 사랑의 슬픔, 사랑을 추억하다. 일곱 개 장의 제목만 읽어도 사랑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보인다. 각 장의 구성은 단순하다. 작가 세 명이 각자 장기를 살렸다. 원주용 작가가 한시 원문을 옮기고, 번역을 한 글을 쓰고, 이우성 시인이 시의 내용에 맞는 에세이를 붙였다. 바탕은 미우 작가가 맡았다. 채색 수묵화 같은 그림 위로 옛 사람들의 사랑과 슬픔과 절망이 담긴 한시와 요즘 젊은 사람의 사랑과 슬픔과 아픔이 펼쳐진다.


 한시는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고등학생 때는 교과 과정이라서 그냥 읽었고, 대학생 때는 고전문학 수업 때 살짝 본 거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자는 한자 약한 건 비슷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시간의 힘인지 옛 사람들이 시에 담은 마음이 조금은 읽어진다. 제일 야한 게 보일 듯 말 듯한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보일 듯 말 듯한 감정이라 더 애잔하고 애틋하다. 특히 지금과는 달리 신분제도가 있던 시대라 그런가 신분 때문에 포기하고, 감추는 마음이 많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남정네들보다는 여인네들의 입장이라 같은 여자로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하게 된다. 물론 드문드문 당돌한 시도 있어 의외이기도 했다. 그때도 이렇게 대담하게 속을 내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니. 책은 여름 한가운데에 나왔지만 깊어가는 가을이나 겨울에 읽으면 더 좋을 거 같다. 마음 가는 사람이 있는데 표현을 하지 못했다면 이 책에 나오는 한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내 마음인 듯 슬쩍 보여줘도 멋스러울 듯.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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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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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름은 데이지, 아버지는 데이지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사망. 엄마는 데이지가 사는 곳에서 차로 90분 걸리는 곳에서 혼자 산다. 데이지의 엄마는 오래전에 남편을 읽고 딱 한 번 진지하게 연애를 한 걸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귄 적이 없다. 형제는 없다. 데이지는 무남독녀다. 지금 나이는 스물 일곱으로 지역사회 상담 전공 석사과정 2학기의 대학원생이다. 4년 전, 그러니까 데이지가 스물 세살 때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그후 방사선 치료 등의 항암치료를 받아 2월 12일에 공식적으로 유방암 치료 진단을 받았다. 며칠 후면 유방암 치료 공식 선언 4주년이라 남편인 잭과 1박 2일로 여행을 갈 계획이다. 차는 현대 쏘나타를 몬다.


 남편인 잭은 현재 수의사 과정과 수의학 박사 과정을 동시에 밟고 있다. 몇 달 뒤면 졸업이다. 일에서는 굉장이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이지만 다른 건 허술한 데가 많은 사람이다. 뭘 고치는 것도 잘 못 하고, 커피를 마신 컵도 아무 데나 두고, 양말은 꼭 침대에서 벗어서 바닥에 떨어뜨려놓고 절대 치우지 않고, 정리라고는 영 서툴러서 서재의 책상은 문서의 산을 이루고 있다. 수의사 과정과 수의학 박사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너무 바빠서 모든 걸 뒤로 미뤄놓고 있다. 아이도 그 중 하나. 몇 달 뒤 졸업하면 아기를 가지고 싶다. 차는 포드 익스플로러를 몬다.


 둘은 데이지가 스무 살 때 처음 만났다. 잭은 데이지가 어른이 돼서 제대로 연애한 첫 번째 남자다.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데이지가 몰라서 그렇지 잭은 몇 주 전부터 데이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벌은 핑계일 뿐이었다. 벌이 데이지 근처에서 날아다니고 있어서 잭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덕분에 데이지에게 말을 걸 수 있었으니까. 둘은 지금 정식 부부로 스페인식 방갈로 같은 집에서 아비시니안 기니피그 퀸 거트루드와 한 쪽 다리가 없는 테리어 베니랑 같이 애선스에서 산다.


 데이지의 제일 친한 친구는 케일리로 유치원 교사다. 주로 19살, 21살의 연하를 사귄다. 케일리는 의리가 있는 친구다. 4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을 때도 평소랑 똑같이 대해준 친구다. 데이지는 케일리의 남자 보는 안목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의리가 있고, 솔직하고, 단순한 케일리가 좋다. 오죽했으면 서른이 되기도 전에 유방암이 재발한 소식을 전했을 때도 케일리는 "지랄 같네"라고 말했을 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인 데이지는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신이 살 날이 4개월에서 6개월밖에 남지 않을 걸 알게 되자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을 남편을 위해 남편에게 잘 어울리는 새 아내를 구해주려고 한다. 그러다 막상 자신이 생각하기에 잭에게 완벽한 아내감인 패멀라

(캐일리가 일하는 유치원 동료 교사로 캐일리는 항상 패멀라 흉을 본다)를 알게 되고 패멀라랑 남편이 이미 아는 사이이며 남편이 패멀라에게 호감을 가지는 거 같자 말할 수 없는 질투를 느끼는데 과연 잭과 패멀라는 데이지의 바람대로 데이지가 죽은 후 결혼하게 될까? 그건 스포일러니까 비밀로, ㅎㅎ.


 책은 철저히 주인공인 데이지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시점 자체가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데이지의 유방암 재발은 소설의 도입에서부터 전재로 딸고 데이지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고, 결국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으며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고, 남편에게 새 아내감을 구하며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아주 세세하게 다룬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여자고 읽은 나도 여자라 데이지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읽으면서 자꾸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용이 재미있고 재미없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읽는 내가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이 돼야 몰입이 되는데 데이지의 감정에 공감이 되지 않으니 자꾸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읽게 됐다. 이건 아마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데이지의 선택이나 행동, 감정에 공감이 된다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내가 남편을 위해 새 아내가 될 사람을 미리 고른다는 아이디어만은 흥미롭다. 영화로 만들어도 될 소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책의 겉표지랑 띠지도 훌륭하다. 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번역서 겉표지랑 띠지는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참신하다. 띠지가 있는 상태로 겉표지를 보고, 띠지를 떼어내고 겉표지를 보면 책의 설정 자체가 그림 하나로 설명이 되는 게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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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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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는 장르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책은 분야 가리지 않고 읽는 잡식성이지만 에세이는 일부러 찾아서 읽는 분야는 아니다. 수식어가 넘치는 것도 별로고, 그 수식어들이 작가 혼자만의 것이라 공감이 안 되는 것도 그렇고 별로 당기지가 않았다. 특히 20대나 30대 초반의 작가들이 쓴 예쁜 그림을 곁들인 달달하기만 한 글은 진짜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카피라이터란 말이지? 지금까지 잡지사 기자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다들 수식어가 너무 많아서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는데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래서 결론? 기대 안 하기를 잘했다. 이 책 재미있다!


 작가 김민철은 카피라이터다. 이름만 보면 남자 같은데 엄연히 여자다. 2005년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11년째 박웅현 CCO 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직업이 카피라이터이면서 자신이 쓴 카피도 외우지 못한다는 거다. 작가가 책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한 걸 보면 태어날 때부터 암기라는 능력 자체는 탑재를 안 하고 태어난 거 같다. 자신이 쓴 카피를 못 외우는 건 기본이고, 자신이 읽은 책의 제목과 작가도 기억 못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 때마다 새로울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뭐 어떤가. 구체적인 내용이나 제목, 줄거리, 등장 인물, 작가, 노래 제목 같은 걸 못 외워도 그 경험만은 몸으로 체득해서 카피라이터로 잘 살고 있고 이렇게 책까지 썼는데. 더구나 재미있게.


 책은 작가가 읽고, 듣고, 가보고, 쓰고, 찍고, 배운 것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라는 토양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토양을 풍요롭게 해야 카피라이터로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나라는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외국어 6가지를 비롯해 도자기 만드는 걸 배우고,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어 보니까 그렇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책을 읽고 나면 작가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뭔가를 배우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싶어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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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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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신 치바]를 시작으로 다섯 번째로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단편, 장편 모두 읽어봤는데 둘 다 잘 쓰고 재미있다. [마왕]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 인연이 닿아 읽게 됐다. 분량이 많은 편도 아니고 워낙 흡입력 있게 글을 잘 써서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세 시간 정도만에 다 읽은 거 같다. 자기 전에는 늘 책을 읽는 편인데 새벽 1시쯤 '어떤 내용인지 잠깐 맛만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덮을 수가 없어서 1장을 다 읽고, 그 다음날 나머지 2장을 다 읽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있는 이사카 코타로 책은 다 찾아서 봐야겠다.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책의 주인공은 안도와 준야 형제.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죽고 형제만 살아남았다. 형의 이름은 안도로 1부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안도는 평소 미국 드라마 [멕가이버]의 주인공 멕가이버처럼 자신에게 '생각해, 생각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을 만큼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안도에게는 초능력이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초능력은 초능력인데 사용에 제한이 있다. 안도가 직접 볼 수 있는 사람, 그것도 30보 안에 있는 사람한테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 30걸음보다 멀리 있는 사람이나 TV에 나오는 사람, 직접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도는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는 평소의 믿음대로 아무 생각 없이 우루루 움직이는 대중과는 달리 교묘하게 대중을 조정하는 정치가 이누카이에게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2부의 주인공인 준야는 안도의 동생으로 형과 달리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지만 기억력과 직감이 굉장히 발달했다. 안도가 살아있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살았던 여자친구 시오리와 결혼해 센다이에서 살고 있다. 형인 안도가 죽은 후 동경을 떠났다. 준야는 형이 왜 이누카이의 연설장 근처에서 죽었는지, 형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형처럼 자신만의 생각을 믿고 세상과 싸워나가기로 마음 먹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준야도 형인 안도처럼 초능력이 있는데 내기를 하면 무조건 이긴다. 대신 역시 약간 제약이 있는데 이길 확률이 10분의 1인 내기에서만 무조건 이기고 이길 확률이 10분의 1을 넘어가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초능력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준야는 그 초능력을 이용해 경마에서 돈을 따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한다.


 이 책에서 안도, 준야 형제가 싸우는 대상은 아무 생각 없이 TV나 인터넷이 전달하는 내용만 믿고 움직이는 대중, 대중들 본인들이 깨닫지 못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번역돼서 나온 게 2006년이니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고, 원서는 더 빨리 출간이 됐을 텐데 작가가 보여준 세상은 요즘의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와 너무나 일치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소식이 전달, 확산, 재생산 되는 속도는 정말 눈깜짝할 사이로 빠른데 사람들은 사실 여부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TV에서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누가 그렇다고 하니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의심하지를 않는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걸 혼동하고 '~카더라' 통신의 말은 모두 기정 사실이 된다. SNS가 발달할수록 더 그런 거 같다. 이사카 코타로가 책을 쓸 때 최소한 2~3년, 보통 10년 앞을 내다보며 책을 쓴다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소설 자체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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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첫 번째 이야기 -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깨우는 일상의 질문들 문득, 묻다 1
유선경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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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방송하는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의 작가가 인기 코너인 '문득, 묻다'에서 다뤘던 것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1년 정도 하다 말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1년마다 피디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했지만 2011년 1월 1일 처음 시작해 어느덧 5년째인 코너라고 한다. 급하게 기획하고 마땅히 생각나는 코너 이름도 없어서 그냥 '문득, 묻다'로 지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코너 이름을 '문득, 묻다'로 한 것도 작가가 평소 호기심이 많아서 정말 갑자기 문득 묻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참 잘 지은 이름 같다. 작가가 지어서 그런가? 우리도 문득 뭔가 갑자기 궁금해질 때가 있지 않나? 나만 그런가?


 제목에 '첫 번째 이야기'라고 달린 거 보니 앞으로 최소한 한 권은 더 같은 이름으로 책이 나오려나 보다. 하긴 5년째 진행하고 있는 코너이니 이야기거리가 얼마나 많을까. '첫 번째 이야기'는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 장은 '꽃을 보다', 두 번째 장은 '먹고 마시다', 세 번째 장은 '말을 하다'이다. 각 장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첫 번째 장은 꽃에 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 장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 장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별 생각 없이 쓰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목차를 쭉 봤는데 그전에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들이 목차를 보며 궁금해졌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꽃은 정말 무슨 꽃일까? 외롭고 우울하면 왜 더 많이 먹는 걸까? 삼천갑자 동방삭은 정말 어떻게 죽었을까? 왜 덕수궁 돌담길을 연인이 같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나온 걸까? 등등등. 목차를 보다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예루살렘에는 치즈버거가 없다는 것,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가 맞는 말이라는 것.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아는 게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튤립이 어쩌다 투기의 대상이 됐는지, 거리의 화단에 피는 양귀비꽃이 진짜 양귀비꽃인지 아닌지, 갈대랑 억새가 어떻게 다른지, 말짱 도루묵에서 도루묵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거.


 한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한참 유행했던 적이 있다. 몰랐을 땐 그냥 그러려니 넘겼던 것들이 알게 되면 새롭게 보이고, 다르게 보이는데 호기심은 세상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작가처럼, 나처럼 호기심이 많은 사람,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한 것도 많고 그래서 질문도 많은 사람, 갑자기 문득 뭔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부작용이라면 호기심이 더 늘어나는 거? 반대로 좋은 점은 일상의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 발렌타인 데이가 왜 2월 14일이고, 왜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날인지, 어쩌다 발렌타인 데이에 초컬릿을 선물하는 풍습이 생긴 건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따끈따끈한 여름 오후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시원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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