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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신 치바]를 시작으로 다섯 번째로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단편, 장편 모두 읽어봤는데 둘 다 잘 쓰고 재미있다. [마왕]은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 인연이 닿아 읽게 됐다. 분량이 많은 편도 아니고 워낙 흡입력 있게 글을 잘 써서 책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세 시간 정도만에 다 읽은 거 같다. 자기 전에는 늘 책을 읽는 편인데 새벽 1시쯤 '어떤 내용인지 잠깐 맛만 봐야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덮을 수가 없어서 1장을 다 읽고, 그 다음날 나머지 2장을 다 읽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 있는 이사카 코타로 책은 다 찾아서 봐야겠다.
줄거리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책의 주인공은 안도와 준야 형제.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죽고 형제만 살아남았다. 형의 이름은 안도로 1부의 주인공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안도는 평소 미국 드라마 [멕가이버]의 주인공 멕가이버처럼 자신에게 '생각해, 생각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을 만큼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안도에게는 초능력이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초능력은 초능력인데 사용에 제한이 있다. 안도가 직접 볼 수 있는 사람, 그것도 30보 안에 있는 사람한테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 30걸음보다 멀리 있는 사람이나 TV에 나오는 사람, 직접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안도는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는 평소의 믿음대로 아무 생각 없이 우루루 움직이는 대중과는 달리 교묘하게 대중을 조정하는 정치가 이누카이에게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2부의 주인공인 준야는 안도의 동생으로 형과 달리 공부를 잘한 편은 아니지만 기억력과 직감이 굉장히 발달했다. 안도가 살아있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살았던 여자친구 시오리와 결혼해 센다이에서 살고 있다. 형인 안도가 죽은 후 동경을 떠났다. 준야는 형이 왜 이누카이의 연설장 근처에서 죽었는지, 형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형처럼 자신만의 생각을 믿고 세상과 싸워나가기로 마음 먹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준야도 형인 안도처럼 초능력이 있는데 내기를 하면 무조건 이긴다. 대신 역시 약간 제약이 있는데 이길 확률이 10분의 1인 내기에서만 무조건 이기고 이길 확률이 10분의 1을 넘어가면 무용지물이다. 이런 초능력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준야는 그 초능력을 이용해 경마에서 돈을 따 세상을 바꿀 준비를 한다.
이 책에서 안도, 준야 형제가 싸우는 대상은 아무 생각 없이 TV나 인터넷이 전달하는 내용만 믿고 움직이는 대중, 대중들 본인들이 깨닫지 못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 이 책이 번역돼서 나온 게 2006년이니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고, 원서는 더 빨리 출간이 됐을 텐데 작가가 보여준 세상은 요즘의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와 너무나 일치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소식이 전달, 확산, 재생산 되는 속도는 정말 눈깜짝할 사이로 빠른데 사람들은 사실 여부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TV에서 그러니까, 인터넷에서 누가 그렇다고 하니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의심하지를 않는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걸 혼동하고 '~카더라' 통신의 말은 모두 기정 사실이 된다. SNS가 발달할수록 더 그런 거 같다. 이사카 코타로가 책을 쓸 때 최소한 2~3년, 보통 10년 앞을 내다보며 책을 쓴다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닌 거 같다. 소설 자체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