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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에세이라는 장르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책은 분야 가리지 않고 읽는 잡식성이지만 에세이는 일부러 찾아서 읽는 분야는 아니다. 수식어가 넘치는 것도 별로고, 그 수식어들이 작가 혼자만의 것이라 공감이 안 되는 것도 그렇고 별로 당기지가 않았다. 특히 20대나 30대 초반의 작가들이 쓴 예쁜 그림을 곁들인 달달하기만 한 글은 진짜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카피라이터란 말이지? 지금까지 잡지사 기자들이 쓴 책을 몇 권 읽었는데 다들 수식어가 너무 많아서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는데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그래서 결론? 기대 안 하기를 잘했다. 이 책 재미있다!
작가 김민철은 카피라이터다. 이름만 보면 남자 같은데 엄연히 여자다. 2005년 카피라이터로 입사해 11년째 박웅현 CCO 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직업이 카피라이터이면서 자신이 쓴 카피도 외우지 못한다는 거다. 작가가 책에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한 걸 보면 태어날 때부터 암기라는 능력 자체는 탑재를 안 하고 태어난 거 같다. 자신이 쓴 카피를 못 외우는 건 기본이고, 자신이 읽은 책의 제목과 작가도 기억 못 하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 때마다 새로울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데 뭐 어떤가. 구체적인 내용이나 제목, 줄거리, 등장 인물, 작가, 노래 제목 같은 걸 못 외워도 그 경험만은 몸으로 체득해서 카피라이터로 잘 살고 있고 이렇게 책까지 썼는데. 더구나 재미있게.
책은 작가가 읽고, 듣고, 가보고, 쓰고, 찍고, 배운 것에 대한 기록이다. 작가는 자신이라는 토양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토양을 풍요롭게 해야 카피라이터로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나라는 뿌리를 잘 내리고 살 수 있으니까 그동안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외국어 6가지를 비롯해 도자기 만드는 걸 배우고, 여행을 다니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어 보니까 그렇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 책을 읽고 나면 작가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뭔가를 배우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싶어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