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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했다. 어떠한 이성도 윤리도 인정도 사라져버린 채 서로가 아둥바둥 살기 위해 남들에 대한 이해도 배려도 자취를 감춰버린 그곳에 살았던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들은 이 한권을 통해 이해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시절 우리집은 잘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끼니는 거르지 않고 먹었다. 이에 비해 우리 부모님들은 몇끼니 정도 굶는 것은 당연한 일상사처럼 겪으면서 사셨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편식을 하거나 밥맛이 없다고 하면 늘상 말씀하신다. "아직 덜 배고팠다고" 말이다. 그때는 그렇게 듣기 싫었던 그말이 이 책을 보는 내내 눈물처럼 내 맘속에서 각인되었다.
마당 깊은 집에 살았던 네식구들. 서로 출신도 달랐고, 성격도 달랐지만 전쟁이라는 폐허속에서 그나마 살아나마 좀 더 배불리 먹고 따듯한 방안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힘든 가난을 버텨 나갔는지 모른다. 주인공인 길남. 떨어져있던 가족의 품에 왔지만 홀어머니밑에 장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강인하게 커가야했던 그에게 현실은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었는지 모른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 살의에 가까운 분노와 공포속에서 살아가야했던 시대의 그림자속에서 평양댁 아들 정태의 빗나간 세상에 대한 비난과 조소 그리고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에서 살아남았지만 그에게 남겨진 건 전쟁의 상흔과 고통이었던 준호아버지, 아메리카 드림에 빠져 미군대위와 결혼해 미국으로 간 미선누나 그리고 끝끝내 전쟁이 남긴 상처과 외로움에 못이겨 자살을 택한 문자이모. 이에 비해 전쟁특수에 떼돈을 번 주인댁과 그 자녀들의 모습들이 대조적으로 그려지면서 더욱더 그 시대의 모순과 아픔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통일이 되지 않는 현재의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은 진행중인지 모른다. 언제쯤 이 긴장과 위험에서 벗어나 서로가 벗이 되고,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레드컴플렉스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이 책속에서 그려진 편견과 오해는 우리가 풀지 못한 숙제가 아닐런지? 이젠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에 맞혀 세상의 풍요로움 빠져버린 우리세대에게 이 책이 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작지만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마당 깊은 집속에서 이 시대가 한번쯤 되돌아보고, 반성해보고 다시끔 일어설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주려 한 것은 아닌지?
TV에서 처음 이 작품을 접하고 꼭 한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좋은 작품을 읽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누구나 어릴때 한번쯤 시도해고픈 가출의 느낌과 서러움에 한동안 공감이 되어 눈시울을 젖게 했던 책인 것 같다. 꼭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