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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은 언젠가부터 온전한(?) 정신병을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무슨 소리라고 웃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 자신도 알게 모르게 하나씩 강박증이나 초초함 그리고 스트레스 잘환등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병이라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참 우습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하나하나 캐릭터들을 보고 있으면 만화책속에서 나오는 인물들처럼 이상할 정도로 뭔가 나사가 풀려있고 모자란 듯한 성격들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들이 코미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멍청하고 바보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읽다보면 과연 누구를 비웃고 있는지 안다면 뒷맛이 씁쓸함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바로 그 대상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의 2탄이라고 책표지 쓰여있을만큼 동일 인물인 이라부 종합병원의 신경과 전문의사 이라부가 또한번의 폭소과 재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언제나 그의 등장은 이런 식이다. '1인용 소파에 앉은 뚱뚱하고 허여멀끔한 중년 남자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요시오를 맞이해 주었다.(P262)' 여기서 환자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들이 감미될뿐 5가지 에피소드속에서 주인공 이라부 정말 엽기적이고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희한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환자들을 치유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 장난으로 환자들을 돌보는 것이지? 커다란 주사 한방을 환자에게 놓아주는 것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환자보다 더한 엉뚱한 생각과 행동으로 오히려 그를 환자로 생각해야하는 진짜 환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거기에 그의 간호사 마유미짱은 알 수 없는 묘한 옷차림에 환자들을 넋나가게 하고 환자들 앞에서 서슴없이 담배를 피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이런 의사와 간호사가 현실속에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다른 병원에서 원인을 파악할 수 없거나 쉽게 병원을 출입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치유해주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의사다. 사실 그가 저지르는 엽기적인 행동과 모습들은 어찌보면 환자들이 본인 자신을 보게하는 하나의 거울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현실이라는 벽속에서 제대로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그는 대신 나서서 우리의 방패막이 되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착각에 빠진 도우미, 남들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음경강직증에 시달리는 회사원, 스트레스성 컨디션 불량증에 걸린 잡지사의 편집부 직원, 휴대폰중독증에 빠진 학생, 무언가를 수시로 확인해야하는 강박신경증을 가지고 있는 논픽션 작가. 어찌보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찾아온 알 수 없는 심리적 병들은 도저히 스스로가 병의 근원을 찾지 못한채 이라부에게 찾아온다. 그의 치료방법은 자신 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피하지도 판단하지도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라는 물음 그 자체에서부터 병은 점점 심각하게 빠져들고 도저히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가버린 그들에게 명쾌한 치료는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 상처를 인위적으로 도려내고 치유하는 것이 아닌 병의 근원을 찾아 그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 그의 치료의 큰 포인트인 것이다. 감기약처럼 일순간에 호전되는 약의 처방이 전부가 아닌 서서히 자신이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의사 이라부 능력은 오히려 일시적인 상처 치유에서 급급한 현대의학에 또다른 대안을 주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찌보면 극단적이 모습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조금씩은 있는 병이 아닐까? 바보같이 숨긴 채 병을 점점 키우다 끝내는 알 수 없는 폭력과 사건들이 어느새 매스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속에서 역자가 말미에 밝혔듯이 지하 음침한 곳에 있는 의사 이라부와 간호사 마유미의 존재는 우리는 굽어보는 대상이 아닌 스스로 낮추어 환자들이 진정 돌봐주고 있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천사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다시 생각해 보게한다.
오쿠다 히데오 3번째 작품으로 이 책을 읽었다. 정말 그의 빠른 이야기 전개와 흥미, 유쾌함은 어떤 일본작가와도 비교될 수 있는 그만의 장점인 것 같다. 다소 이 책의 환자들의 극단적 모습에 짜증이 나기도 했디만 현실속에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쉼없이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그에게 달려가 치료받고 싶어진다. 영혼을 치료하는 그의 치료방식이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서 이 책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