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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로
이인화 지음 / 해냄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숨가쁘게 읽은 소설인 것 같다. 특히, 역사와 추리를 적절히 조화시켜 보는 이에게 다음에는 무슨 내용이 기다릴까라는 조바심과 흥분감 그리고 재미에 한껏 발휘한 책이기도 하다. 소위 팩션이라고 하는 기법을 통해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소설의 가공적 스토리를 덧붙임으로써 읽는 이에게 진짜같은 가상의 현실을 시도한 작가의 역량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작품인 것 같다. 배경 역시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1937년 상하이에 실재하는 하비로를 배경으로 프랑스 조계의 조선인 형사 이준상이 조선인 청년예술가 집단인 '보희미안 구락부'의 박서진의 죽음으로 시작된 연쇄살인을 추적하면서 겪게 되는 충격적인 사건과 사실을 다룬 이야기이다.
범죄와 살인 그리고 마약이 아무런 행해지고 중국의 상하이에서 6년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자아를 상실한 채 살다 우연치 않는 기회에 형사가 되어 이준상에게 다가온 연쇄살인의 굴레. 기억하려 기억할 수 없는 해리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아내의 실종조차 희미한 기억속 저편속에 두어야 했던 그에게 박서진의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아내의 손수건과 희대의 살인마인 일명 '상하이 넥타이 '를 나타내는 표시(▽)의 발견은 그에게 이 사건에 대한 강한 집착과 무모한 열정을 이끌고 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 상하이를 주름잡고 있는 한, 중, 일 범죄집단의 이해 관계까지 엮어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처음에는 과거 태평천국운동 세력에 의해 상하이 오송항 앞바다에 가라앉는 조조시대의 보물지도인 '발구도'를 차지하기 위한 조직폭력간 대결구도로 그려지지만 갑자기 주인공 이준상이 스스로가 기독교의 한 종파인 사교의 우두머리인 초혼사(박서진 이름으로 불렸던)에 의해 조정된 살인마였고, 모든 연쇄살인의 한 꼭지점을 자신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혼돈과 분노를 일으킨다. 하지만, 잘못된 악은 선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논리처럼 사교의 대모로 불리었던 아내의 도움으로 모든 사건을 종결된다는 처음의 시작과는 달리 다소 썰렁한 결말로 끝나고 만다. 이야기의 출발점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독자에게 극적인 반전을 통한 더 큰 재미와 만족을 주려했던 작가의 시도는 이 부분에서 논리적 모순에 빠진다고 할 수 있다.
보물지도를 찾는 악당간 다툼에서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도한 사교의 포교의 한 부분에 주인공 이준상이 연구했던 학문이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고,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초혼사의 농간에 의해 잔인무도한 살인을 저질렀으며, 그조차 기억 못하는 주인공 모습은 다소 억지에 가까운 설정이 아닌가 싶다. 특히, '다빈치코드'이후 일어난 역사추리소설의 붐이라는 연장선 위에 이 책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의도된 작품은 아닌지 궁금하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부활의 증거에 대한 학문적 접근과 논쟁은 더욱더 그런 기우를 짙게 하고 있다. 작가 이인화씨가 7년만에 내놓은 작품인만큼 많은 조사와 시간을 통해 나온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다소 걸맞지 않는 소설적 시도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 작가들이 즐겨쓰는 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참으로 아쉬움을 많이 주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