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바늘 찾기

바늘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1년 11월

요근래 나온 <명랑>이라는 작품집에서 처음 접한 작가 천운영.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그가 처음 낸 작품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성작가로서 드물게 아주 우울하고 음습한 기운이 가득한 분위기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엽기적인 표현들은 남성작가들에게서도 잘 볼 수없는 것이기에 그녀에 대한 강한 이끌림과 그녀의 다른 작품집들을 읽고 싶다는 유혹을 이끌어 냈는지 모른다. 또한, 문신시술소, 마장동 축산시장, 횟집등같이 쉽게 소설 소재로서 쓸 수없는 내용의 이야기를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과 세밀한 표현으로 묘사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누군가가 옆에서 직접 보여주는 것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리얼리티가 살아있게 표현하고 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그녀는 단순한 상상이 아닌 직접 보고, 체험하는 도전의 과정속에서 빚어진 이야기들이라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가 묻어있는 것 같았다.

우선, 이책은 보면서 난 여기에 그려진 여자들이 무서워졌다. 도무지 여성으로서의 나약함과 순정만화 같은 것은 고사하고, 영화[미저리]와 같이 항상 남자들을 향해 무엇가를 악심과 욕망을 품고 있고, 곧 후려칠듯한 자세로 응시하는 듯한 공포와 충격에 읽는 내내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 피가 섞인 쇠고기를 좋아하고(바늘), 소골을 선 채로 아귀아귀 집어먹고(숨), 곰장어의 껍질을 무심히 벗겨내고(당신의 바다), 남편을 정기적으로 폭행하는(행복고물상) 모습속에서 여자들은 자신의 性을 포기하고, 욕망의 이끌려 행동하는 동물처럼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남성위주의 사회속에서 말도 안되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상처받으며 자신을 존재를 상실하고 더이상 물러설 곳을 잃어버린 약자인 여성들의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아니 발악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곱추 장애인였던 여자(포옹),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여성으로서의 성장을 멈춰버린 여자(월경)에서 더더욱 각인되어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처럼 상처받은 것에, 희생당함을 체념하거나 잊는 것이 아닌 것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어 항거하는 여자들처럼 그녀들은 이 책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여자들의 저항속에서 남자들은 위축되어지고 거세되어버린 것처럼 자신감과 용기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오히려 그녀에 대한 부재때문에 한없는 고통을 당하는 모습(등뼈)으로 그려지고 있다.

내가 남성이기에 이러한 작품집에 흥미를 갖는 다는 자체가 다소 의외일 수 있지만, 오랜동안 남성의 틀속에 갇혀 제대로 된 숨을 쉴 수 없도록 여성들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부각시키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작가는그들의 분노와 욕망이라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또다른 여성의 일탈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의 내면안에 숨겨진 차가운 바늘같은 섬뜩함과 공포를 찾아내고 그려낸 작가의 능력에 다시한번 감복하며 이 책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