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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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외로운 도시

지은이: 올리비아 랭

옮김이: 김병화

펴낸 곳: 어크로스

 

 


 '당신은 고독했던 순간이 있나요?' 돌아올 대답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소중한 이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복잡 미묘한 심정.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인 순간에도 외롭고, 때론 속내를 떨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와 있다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우리는 고독을 달고 산다. 고독은 가벼운 우울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런 마음의 지침은 약물이나 상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쩌면 고독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처방전은 특별한 유대감과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런 고독함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책을 만났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사랑의 약속을 믿고 뉴욕으로 날아갔지만, 이별이란 지독한 늪에서 헤매게 된 그녀. 그 고독을 사유하며, 뉴욕을 거닐던 예술가들에게서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심스레 탐닉한다.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

도시는 외로운 곳일 수 있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p11 중에서...

 

 

 

 

 

 

 이런,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위험했다. 올리비아 랭 특유의 고독한 결이 담긴 문장은 순식간에 나를 잠식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물에 빠진 듯 허우적대며 괴로웠다면 책을 단숨에 덮어버렸을 텐데, 그녀의 쓸쓸함이 서린 문장엔 분명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아 덥석 그녀의 손을 잡은 나는 뉴욕 거리를 이리저리 활보하며 그간 몰랐던 예술가들의 삶에 오롯이 스며들었다. 인터뷰를 싫어해서 평생 자신의 삶에 관한 문자 기록을 최소한으로만 남겼다는 호퍼, 그는 왜 그토록 아내의 능력을 폄하하려 했을까? 가깝게 지냈던 여류 작가, 솔라나스의 총에 맞아 1분 30초 넘게 생명을 잃었던 앤디 워홀. 불우하고 괴로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에 랭보를 끼워 넣어 강력한 무언가를 표출한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세상을 떠난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헨리 다거, 그는 그 긴 세월 무슨 생각에 잠겨 작품을 완성했을까?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얼굴과 몸을 캠버스로 사용했던 행위예술가 클라우스 노미 등등. 몇몇은 이름마저 낯선 그들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있노라니, 표출 방식은 다르지만 그 기저에 깔린 깊은 고독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고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일으킨 미묘한 유대감 덕분이었을까? 그간 숨기고 싶었던 나의 고독. 올리비아 랭의 시선을 따라 마주한 그 고독을 용기 있게 인정하며 괜찮다고 조심스레 토닥이고 또 토닥였다.

 

 

 

고독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인 것이다.

고독은 집단적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시이다.

...

우리는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너무나 자주 지옥의 모습을 보이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천국을 함께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p370 중에서...

 

 

 

 

 

잘못된 소통으로 고통을 겪는 게 싫어 침묵하게 되는 딜레마와 지독하게 해소되지 않는 고독한 상실감에 시달리던 올리비아 랭. 그녀는 뉴욕 거리를 거니는 순간만큼은 잠시 한심한 자신을 잊고 도시의 흐름에 유쾌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걸었던 거리를 나 역시 수년 전에 거닐었다. 한날한시는 아니지만, 우리는 분명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이 흥미롭고 특별한 인연이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마다 몰입감을 높이며 하염없이 나를 끌어들였다. 우리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고독이란 도시. 이 물리적이며 심적이기도 한 공간에서 살아가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어쩌면 정말 그녀의 말처럼 소박한 요소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정함을 잃지 말고 서로 연대하며 언제나 깨어 있고 열려 있을 것.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드라마틱한 말은 좀 과장이라 생각하지만, 이 책 《외로운 도시》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며 문득 고독한 순간에 다정한 위로를 건넬 듯하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책! 어쩌면 그 따스한 손길이 그리워서, 나는 고독한 순간이 다가오길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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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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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 가족, 행복! 따스한 감동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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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강의 - 개정판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 1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임홍빈.홍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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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신분석 강의

글쓴이: 지크문트 프로이트

옮긴 이: 임홍빈, 홍혜경

펴낸 곳: 열린책들

 

 

 

 인문학, 심리학, 소설, 심지어 에세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워낙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분에 관해 아는 거라곤 정신분석학자라는 사실 정도였다. 얕은 지식에 안타까워하며 언젠가는 꼭 읽어보자 다짐했던 그의 저서. 2020년 12월,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17년 만에 출간한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 열린책들이기에 가능했던 이 대장정의 보석 같은 결과물에 감탄하며 총 15권의 전집 중에서 『정신분석 강의』를 택했다. 고군분투하며 읽었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독서 모임 친구들과 서로 이끌어주고 함께 토론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뜻깊은 독서를 이어갔다. (열심히 참여한 그대들, 모두 고맙습니다!)

 

 

 

 프로이트 입문서이자 프로이트 이론의 결정체라는 『정신분석 강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실수 행위들>, <제2부: 꿈>, <제3부: 신경증에 관한 일반 이론>. 제목만 봐도 '나 어렵지?'라고 기세등등한 주제들이라 마음 단단히 먹고 읽기 시작! 프로이트가 1915~1916년과 1916~1917년의 두 번에 걸친 겨울 학기에 의사들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를 그대로 옮긴 책이라 다른 책과 느낌이 사뭇 달랐다. 넘치는 의욕으로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맨 앞줄에 앉은 의대 신입생이 된 기분이랄까? (물론 나는 의대 문턱도 못 넘어봤지만, 어쩐지 그 마음을 알 것 같기에...) 프로이트는 청중이 지닌 지식과 상관없이, 모두 가장 기초적인 강의부터 필요한 사람이라 간주하고 강의하겠노라 표명한다. 천생 문과인 나에게 이보다 더 감사한 말이 있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집중하기 시작한 프로이트 박사님의 강의는 때론 아리송할 정도로 어려워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지만, 감탄을 연발하며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설득력 있고 기발한 주장이 가득했다.

 

 

 

 


 

 

 

 

 

제1부: 실수 행위들 - 우리가 저지른 행동, 정말 실수일까?

 

 다양한 실수 행위의 근저에는 망각이 있지만, 이는 일시적이다. 실수나 망각은 정상 상태에서도 발생하니, 건강한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 행위를 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게 이 연구의 첫걸음이다. 실수에는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다. 여러 실수 행위의 사례에는 그 자체의 고유한 의미가 담겨 있다. 실수 행위의 반복은 집요함을 드러내고 그 집요함은 우연적인 일이 아닌 '의도'에나 잘 어울리는 것이기에 이건 의도의 문제다! 그렇다면 망각은 무엇인가? 망각, 즉 어떤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은 그에 적대적인 어떤 반대 의지를 시사하는 것이라고 한다. 고로, 모든 실수는 의도적이다! 이런, 이런... 그럼 우리가 살면서 저지른 실수는 모두 마음의 소리였을까? 피하고 싶은 일을 홀딱 잊어버리고, 갑자기 배가 아프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착각을 일으켰던 그 순간들이 전부 '하기 싫은' 진짜 속마음이었다니. 프로이트의 말이 절대적 진실이라 볼 순 없지만, 상당히 근거 있는 주장이라 '실수란 의도적인 것이다'라는 그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절대 공감!

 

 

 

 


 

 

 

 

 

제2부: 꿈 - 욕망의 실현인 꿈, 당신은 오늘 어떤 꿈을 꾸시겠습니까?

 

요즘 초등학생들은 어떤 꿈을 꿀까? 예전엔 과학자, 대통령, 선생님 등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했는데, 요즘은 아이돌이란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야기가 잠시 딴 길로 샜지만, 다시 프로이트 강의로 돌아오자! 이번 강의의 주제는 꿈이었다.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 노노!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은 우리가 잠자며 꾸는 그 꿈이다. 3부에서 이어질 신경증 연구를 위한 준비 단계로 꿈의 의미를 증명하는 게 목표다. 꿈은 실수 행위처럼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현상이다. 그럼 꿈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본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수면은 무엇이고, 정신 활동은 왜 잠들지 않는지 알아보며 꿈의 실체를 파헤친다. 프로이트는 꿈꾼 이가 자신의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다만, 인지하지 못하거나 모르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왜 우리는 그런 보호막으로 꿈을 부정하고 한걸음 멀어지려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숨겨진 욕망에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 즉 리비도는 대상을 아무런 제약 없이 선택하고 금지된 것을 가장 열렬히 선택한다고 한다. 꿈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하는 성적 상징물에 얼굴을 붉히며, 인간의 이 원초적인 본능이 꿈으로 나타난 여러 사례를 통해 꿈의 본질에 성큼 다가간 시간이었다. 꿈은 타협의 산물이자 소원 성취의 장이며, 이성적 검열을 피해 자유를 손에 쥔 일탈 행위다. 그렇다면, 오늘 밤엔 무슨 꿈을 꿔볼까나? 상상만으로 흐뭇!

 

 

 

 

 

 

 

 

 

3부: 신경증에 관한 일반 이론 - 신경증의 원인이 리비도라니!

 

 

 

『정신분석 강의』의 하이라이트 신경증. 약 1년의 시간 차를 두고 진행된 마지막 강의에서 실수 행위와 꿈에서 다른 다양한 요소들이 대거 등장한다. 망상은 다른 증후에서 예측할 수 있는 무의식적 정신 과정에 관한 필연적 반응이다. 외상성 신경증 환자들은 꿈속에서 규칙적으로 외상적 상황을 반복한다. 신경증은 외상적 질환과 동일하게 볼 수 있으며, 통제력이 약해진 무기력한 상황에서 발행할 수 있다. 증상을 일으키는 무의식적인 사전 조건을 의식화할 수만 있다면 증상이 사라질 수도 있다. 환자의 증상들은 동일한 의도에 봉사하는데, 그 의도는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다. (응?) 사람들이 신경증에 걸리는 이유는 쾌락을 향한 욕망인 리비도를 만족시킬 가능성을 박탈당했을 경우라고 하는데... 이게 정말 기승전 성에 관련된 증상이란 말인가! 대체 성이라는 원초적 본능은 어디까지 인간을 지배하는 걸까? 쾌락 원칙에서 현실 원칙으로의 전환은 자아 발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라고 한다. 환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술이다. 자아가 약해지면 리비도의 요구가 거세지며, 결국 신경증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다. 치료 메커니즘 또한 리비도 이론 형식으로 완결짓는다. 억압을 새롭게 만들어진 갈등에서 배제하는 것이 핵심. 음... 뜻밖의 원인과 결과에 깜짝 놀라 이게 정말 옳은 말인가 몇 번이나 의심했는지... 한 노인의 장광설로 치부하기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으니 지금까지 정설이자 진리로 인정받겠지? 그래, 이번 강의도 인정!

 

 

 

 

 '그래? 그럼 내 심리를 파악해봐!' 심리학과를 졸업한 지인은 전공이 밝혀질 때마다 심리를 파악해보라는 무례한 요구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디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던가? 심리학보다 더욱 깊숙이 인간의 정신세계에 파고든 프로이트 박사의 정신분석 강의. 짙은 안개가 깔린 듯 막연하고 모호했던 미지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체계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인물이기에 프로이트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은 존재다. 솔직히 7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재밌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임은 틀림없다. 분명 눈으로는 읽고 있지만, 머리에 남지 않아 소리 내 다시 읽고 필기하기를 반복한 순간도 있었고 독서 모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토론한 재밌는 순간도 있었다. 한마디로 희비가 수없이 교차했던 책. 고생 끝에 얻은 깨달음은 달콤하고 귀했다. 가장 공감하고 재밌었던 이론은 실수가 의도적 행위라는 점. 지난밤 꾼 꿈을 떠올리며 숨겨진 내 욕망을 찾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주변인을 떠올리며 원인을 파악하는 등 당분간은 프로이트 박사의 강의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학구열을 불타오르게 할 듯하다! 함께 읽기와 완독의 기쁨을 안겨준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나의 인생 도서로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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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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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시선

글: 김시선

그림: 이동명

펴낸 곳: 자음과모음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화보다 좀 더 좋아하는 책에 관심이 쏠린 탓일까? 나의 유튜브 구독 채널 주제는 책, 좋은 습관 형성 (특히 미라클 모닝), 음악 정도였다.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정작 영화 유튜브 채널은 왜 눈여겨보지 않았는지, 좀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이번 책과의 만남을 통해 그쪽 세계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100만 구독자가 선택한 영화 관련 유튜브 '김시선' 채널. 그 채널의 주인장인 김시선 씨의 시시콜콜한 영화 생활이 담긴 에세이 『오늘의 시선』. 인기와 유명세에 힘입어 책을 내는 유튜버가 많아지면서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마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이 책 『오늘의 시선』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영화에 관한 자기 생각과 인생관 그리고 영화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을 정성 들여 담아낸 글에서 진심과 성실함이 엿보이는 책!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글을 잘 쓰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데, 김시선 씨의 글을 뭐랄까... 그와 대화하는 느낌이다. 조곤조곤 차분하게 생각을 전달하고, 과격한 주장이나 비판은 하지 않는다. 덕분에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문장들이 '안녕'하고 수줍게 손을 흔든다. 이분, 글 잘 쓰시네! (부럽다) 우연히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는 시선 씨는 무언가 좋아하는 느낌은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주고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기고, 그 용기와 믿음은 다음 행동의 근거가 된다며, 믿음직한 말로 읽는 이의 마음을 훔친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말이란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듯 영화를 본다. 그리고 누군가 결말을 미리 스포일러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영화의 끝을 알고 보면, 결말에 끌려가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며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재미는 조금 덜 할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급히 질주할 때 놓친 멋진 장면을 되찾을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프랑스의 감독이자 유명한 영화 평론가인 프랑수아 트뤼포가 제시한 영화와 가까워지기 위한 3단계!

1) 많은 영화를 본다

2) 극장을 나설 때 감독 이름을 적어라

3)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생각해보라.

 

 

 

영화를 좋아하는 척이 아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 3단계가 즐겁고 행복한 과정이리라! 내가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방법과 상당히 유사하여 역시 문화와 예술이란 일맥상통함을 다시 한번 공감. 책과 영화를 고르는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별점에 관한 이야기도 마음에 훅 와닿았다. 별점은 괜찮은 작품을 쉽게 고를 수 있는 수단이긴 하지만, 그 작품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장면을 차마 담아낼 수 없는 무색무취의 수단이며 영화가 가진 어떤 맛도 전해주지 못한다는 말. 한 출판사 사장님은 신간을 낼 때마다 출산하는 느낌이라고 말씀하셨다. 만든 이가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을 견디며 완성한 결과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 별점을 꼭 체크해야 하는 상황이면 제발 한 번 더 신중하게! 흥미로운 영화 이야기와 더불어 거기서 뻗어 나온 시선 씨의 속 깊은 이야기와 인생 철학까지 엿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유튜브 채널 구독 신청하러 가겠습니다! 아차차, 새해를 맞아 더 와닿았던 문장 기록을 잊었다.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이 글에 살포시 공유합니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멈춰 있으면 우연은 생기지 않는다.

《오늘의 시선》 - p24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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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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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디, 얼지 않게끔

글쓴이: 강민영

펴낸 곳: 자음과모음

 

 

 

 새해를 맞아 이틀이나 소복하게 내린 눈이 살얼음 코트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던 어느 오후, 겨울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소설을 만났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새소설 시리즈 신간, 강민영 작가의 『부디, 얼지 않게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소설에서 시시각각 흘러가는 계절이 사뭇 새롭게 느껴진다. 출간 시기가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는지, 창밖에 펼쳐진 새하얀 세상과 시기적으로 굉장히 잘 어울리는 소설. 음... 뭐랄까, 이 작품은 아름답거나 희망적인 내일을 그리기 보다는 따스한 마음과 간절함 그리고 삶을 향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덥고 습한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예고하는 뉴스와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제목에서 물씬 느꼈던 겨울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색해져 당황했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이 왜 여름을 앞둔 순간인지 책장을 넘길수록 고개를 끄덕끄덕. 여행사 직원인 주인공 인경은 더위를 탄 적이 없다. 사회생활의 틀 안에서만 각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직장에서 인경의 인생에 성큼 들어선 인물이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희진. 여행사 경리 직원을 꼭 동반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더위에 쥐약인 희진은 인경과 함께 베트남에 가게 된다. 서먹한 사이였지만, 자신을 관찰하는 희진의 불쾌한 시선을 느낀 인경. 습하고 더운 베트남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인경은 희진 덕분에 자신의 이상한 몸 상태를 깨닫게 된다. 더위를 즐기고 추위에는 약한 변온 인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몸 상태가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인경은 차분하게 생존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그 곁엔 늘 희진이 함께한다. 운동, 영양제, 방수 제품, 월동 준비. 여름이 지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가을이 오고, 그리고 매섭게 추운 겨울이 도래하며 인경은 손가락 하나 들기 힘들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이제 때가 됐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는 겨울잠. 자신을 돕느라 땀이 송골송골 맺힌 희진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무거운 눈꺼풀을 감은 인경은 따스한 봄이 오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녀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처음 무엇을 보게 될까?

 



 

 

 

 

 

하지만 부디, 다시 눈뜰 수 있기를.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겨울을 버터낸 이유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우리가 만난 행복한 여름을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

《부디, 얼지 않게끔》 - p200 중에서...

 

 

 

 처음엔 인경과 희진이란 인물이 동성이 아닌, 남녀 관계였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별난 상황에 처한 남자를 여자가 도우며 사랑이 싹트고 봄이 오면 다시 함께하자고 서로를 꼭 끌어안는...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인경과 희진의 독특하지만 특별한 우정이 빚어낸 매력이 살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비를 맞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인경. 인경의 목덜미를 타고 들어와 온몸을 잠식한 그 서늘한 냉기가 내 손끝과 발끝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몸이 마비될 정도의 추위. 소설 속 인경이 그랬듯이 나 역시 희진과 함께일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미약하나마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칫 너무 처절했을 수도 있는 인경의 겨울 준비를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려내어 더 가슴이 뭉클했던 이야기. 인경과 희진 두 사람이 함께여서 다행이고, 봄이면 꼭 깨어날 인경을 기다리며 두 사람의 다음을 꿈꿔본다. 어쩌면, 지치고 힘든 우리의 마음도 겨울잠이 필요할지 모른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테니, 부디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힘겨울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사계절은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인생에 봄날은 또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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