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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평점 :

제목: 외로운 도시
지은이: 올리비아 랭
옮김이: 김병화
펴낸 곳: 어크로스
'당신은 고독했던 순간이 있나요?' 돌아올 대답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소중한 이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혼자 있고 싶은 복잡 미묘한 심정. 수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인 순간에도 외롭고, 때론 속내를 떨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와 있다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우리는 고독을 달고 산다. 고독은 가벼운 우울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이런 마음의 지침은 약물이나 상담으로 치료할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다. 물론 개중에는 효과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쩌면 고독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처방전은 특별한 유대감과 깊은 공감이 아닐까? 이런 고독함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책을 만났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사랑의 약속을 믿고 뉴욕으로 날아갔지만, 이별이란 지독한 늪에서 헤매게 된 그녀. 그 고독을 사유하며, 뉴욕을 거닐던 예술가들에게서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조심스레 탐닉한다.
사람은 어디서든 고독할 수 있지만,
도시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면서 느끼는 고독에는 특별한 향취가 있다.
...
도시는 외로운 곳일 수 있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p11 중에서...
이런,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위험했다. 올리비아 랭 특유의 고독한 결이 담긴 문장은 순식간에 나를 잠식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물에 빠진 듯 허우적대며 괴로웠다면 책을 단숨에 덮어버렸을 텐데, 그녀의 쓸쓸함이 서린 문장엔 분명 따스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 그 느낌이 싫지 않아 덥석 그녀의 손을 잡은 나는 뉴욕 거리를 이리저리 활보하며 그간 몰랐던 예술가들의 삶에 오롯이 스며들었다. 인터뷰를 싫어해서 평생 자신의 삶에 관한 문자 기록을 최소한으로만 남겼다는 호퍼, 그는 왜 그토록 아내의 능력을 폄하하려 했을까? 가깝게 지냈던 여류 작가, 솔라나스의 총에 맞아 1분 30초 넘게 생명을 잃었던 앤디 워홀. 불우하고 괴로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에 랭보를 끼워 넣어 강력한 무언가를 표출한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세상을 떠난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헨리 다거, 그는 그 긴 세월 무슨 생각에 잠겨 작품을 완성했을까?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고, 얼굴과 몸을 캠버스로 사용했던 행위예술가 클라우스 노미 등등. 몇몇은 이름마저 낯선 그들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있노라니, 표출 방식은 다르지만 그 기저에 깔린 깊은 고독을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 고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일으킨 미묘한 유대감 덕분이었을까? 그간 숨기고 싶었던 나의 고독. 올리비아 랭의 시선을 따라 마주한 그 고독을 용기 있게 인정하며 괜찮다고 조심스레 토닥이고 또 토닥였다.
고독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정치적인 것이다.
고독은 집단적이다. 그것은 하나의 도시이다.
...
우리는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너무나 자주 지옥의 모습을 보이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천국을 함께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 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p370 중에서...
잘못된 소통으로 고통을 겪는 게 싫어 침묵하게 되는 딜레마와 지독하게 해소되지 않는 고독한 상실감에 시달리던 올리비아 랭. 그녀는 뉴욕 거리를 거니는 순간만큼은 잠시 한심한 자신을 잊고 도시의 흐름에 유쾌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걸었던 거리를 나 역시 수년 전에 거닐었다. 한날한시는 아니지만, 우리는 분명 같은 공간에 존재했다. 이 흥미롭고 특별한 인연이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마다 몰입감을 높이며 하염없이 나를 끌어들였다. 우리의 상처가 켜켜이 쌓인 고독이란 도시. 이 물리적이며 심적이기도 한 공간에서 살아가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어쩌면 정말 그녀의 말처럼 소박한 요소들일지도 모르겠다. 다정함을 잃지 말고 서로 연대하며 언제나 깨어 있고 열려 있을 것.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드라마틱한 말은 좀 과장이라 생각하지만, 이 책 《외로운 도시》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며 문득 고독한 순간에 다정한 위로를 건넬 듯하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책! 어쩌면 그 따스한 손길이 그리워서, 나는 고독한 순간이 다가오길 기다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