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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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디, 얼지 않게끔

글쓴이: 강민영

펴낸 곳: 자음과모음

 

 

 

 새해를 맞아 이틀이나 소복하게 내린 눈이 살얼음 코트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던 어느 오후, 겨울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특별한 소설을 만났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새소설 시리즈 신간, 강민영 작가의 『부디, 얼지 않게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 소설에서 시시각각 흘러가는 계절이 사뭇 새롭게 느껴진다. 출간 시기가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는지, 창밖에 펼쳐진 새하얀 세상과 시기적으로 굉장히 잘 어울리는 소설. 음... 뭐랄까, 이 작품은 아름답거나 희망적인 내일을 그리기 보다는 따스한 마음과 간절함 그리고 삶을 향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덥고 습한 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예고하는 뉴스와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제목에서 물씬 느꼈던 겨울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색해져 당황했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이 왜 여름을 앞둔 순간인지 책장을 넘길수록 고개를 끄덕끄덕. 여행사 직원인 주인공 인경은 더위를 탄 적이 없다. 사회생활의 틀 안에서만 각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직장에서 인경의 인생에 성큼 들어선 인물이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희진. 여행사 경리 직원을 꼭 동반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더위에 쥐약인 희진은 인경과 함께 베트남에 가게 된다. 서먹한 사이였지만, 자신을 관찰하는 희진의 불쾌한 시선을 느낀 인경. 습하고 더운 베트남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인경은 희진 덕분에 자신의 이상한 몸 상태를 깨닫게 된다. 더위를 즐기고 추위에는 약한 변온 인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몸 상태가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인경은 차분하게 생존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그 곁엔 늘 희진이 함께한다. 운동, 영양제, 방수 제품, 월동 준비. 여름이 지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가을이 오고, 그리고 매섭게 추운 겨울이 도래하며 인경은 손가락 하나 들기 힘들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이제 때가 됐다.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는 겨울잠. 자신을 돕느라 땀이 송골송골 맺힌 희진의 얼굴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무거운 눈꺼풀을 감은 인경은 따스한 봄이 오면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녀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처음 무엇을 보게 될까?

 



 

 

 

 

 

하지만 부디, 다시 눈뜰 수 있기를.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그래서 내가 겨울을 버터낸 이유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우리가 만난 행복한 여름을 다시 경험할 수 있기를.

《부디, 얼지 않게끔》 - p200 중에서...

 

 

 

 처음엔 인경과 희진이란 인물이 동성이 아닌, 남녀 관계였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별난 상황에 처한 남자를 여자가 도우며 사랑이 싹트고 봄이 오면 다시 함께하자고 서로를 꼭 끌어안는...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인경과 희진의 독특하지만 특별한 우정이 빚어낸 매력이 살지 않았으리라. 어쩌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비를 맞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인경. 인경의 목덜미를 타고 들어와 온몸을 잠식한 그 서늘한 냉기가 내 손끝과 발끝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몸이 마비될 정도의 추위. 소설 속 인경이 그랬듯이 나 역시 희진과 함께일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미약하나마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칫 너무 처절했을 수도 있는 인경의 겨울 준비를 묵묵하고 담담하게 그려내어 더 가슴이 뭉클했던 이야기. 인경과 희진 두 사람이 함께여서 다행이고, 봄이면 꼭 깨어날 인경을 기다리며 두 사람의 다음을 꿈꿔본다. 어쩌면, 지치고 힘든 우리의 마음도 겨울잠이 필요할지 모른다. 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테니, 부디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힘겨울 겨울이 지나면 우리의 사계절은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인생에 봄날은 또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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