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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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손에 쥐었을 때 전해지는 감촉이 참 좋았다. 반들반들 부드러워서 만지면 만질수록 빠져드는 느낌. 이 감촉은? 그래, 맞다. 창비 출판사에서 출간한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표지와 같은 재질. 그때도 부드러운 감촉이 너무 좋아 한참 쓰다듬었는데, <아이 러브 디스 파트> 역시 예전 그 느낌을 떠올리며 몇 번을 매만졌다. 이윽고 눈에 들어온 표지 속의 두 사람. 사이 좋게 이어폰을 나눠 끼고 머리를 맞댄 다정한 분위기가 영락없이 연인이다. 흑인 소년과 백인 소녀라고 생각했기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약간의 착오를 거쳤다. 이런... 두 사람 모두 여학생이었구나.

 가정사, 음악, 공부 등 공통분모를 찾아가며 점점 가까워진 두 소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우정을 넘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고층 빌딩, 높은 산, 주택가, 학교, 공업지대, 언덕, 고원 등 여러 장소에서 펼쳐지는 이들의 시간은 배경이 무색할 만큼 서로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두 소녀 뒤로 작은 장난감처럼 펼쳐지는 세상이 증명하듯 그 둘은 오직 서로만 바라보며 각자의 인생이 아닌 '함께'라는 추억을 쌓아간다. 아무것도 바랄 것 없이 그저 서로이기에 좋은 순수한 사랑. 아직은 철이 없고 어리기에 가능했던 그 특별한 사랑은 세상의 눈을 두려워한 한쪽의 이별 통보로 끝나버린다.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세상을 설득할 자신이 없던 두 소녀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같은 노래를 들으며 그저 눈물만 주룩주룩.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들의 한여름 밤 꿈같던 사랑은 비록 끝났지만, 추억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영원히 기억되겠지? 너와 나, 그저 우리 둘이면 충분했던 그 시간은 어쩌면 인생에 다시 없을 소중한 선물일 테니 말이다. 물리적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들쑥날쑥 펼쳐지는 두 소녀의 이야기는 이별 후의 회상인지 아니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한 것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이는 어쩌면 답을 정하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지 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두 소녀가 속삭였던 사랑 노래는 이젠 슬픈 이별 노래가 되었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잔잔하게 맴돌 것 같은 <아이 러브 디스 파트>. 이 책은 모두의 마음속에 추억으로 숨 쉬는 가슴 시린 첫사랑을 문득 떠올리게 할 그런 작품이다. 내가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그 친구는 잘살고 있을까? 우후죽순처럼 샘솟는 옛 추억에 오늘만큼은 잠시라도 흠뻑 취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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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어, 이게 나인 걸! - 조금은 뾰족하고,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지만
텅바이몽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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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나, 귀여운 선인장! 안녕? 반가워.
너 참 귀엽다, 어느 별에서 왔니? 근데 왜 이렇게 시무룩해?
뭐? 가면을 쓰고 사는 게 힘들다고?
이런...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 네가 힘들다면 힘든 거지!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기대로 싶으면... 자, 여기 내 어깨 빌려줄게!


 이제 좀 괜찮아졌니? 넌 이름이 뭐야? <어쩌겠어, 이게 나인 걸!>이구나. 이름 한번 특이하네. 넌 누가 만들었니? 텅바이몽? 중국 사람인가? 아니면 대만 사람? 이상하다. 그림체랑 감성은 딱 한국인인데... 뭐야, 역시 한국 사람이네! 윤주형과 전효빈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 듀오의 팀이름이구나. 신이 내린 손인가? 그림이 너무 예뻐. 거기에 이런 감성 돋는 글이라니! 대체 너의 매력은 어디까지니?

 근데 아까 가면을 쓰고 사는 게 힘들다고 했잖아, 괜찮으면 그 얘기 좀 더 해봐. 우리는 모두 원치 않은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고? 음... 그래 맞는 말인 것 같아. 사회에서 온전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면을 써야 하지. 있는 그대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괜찮지 않아도 싫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속만 타들어 가잖아. SNS는 또 어떻고? 고르고 골라 SNS에 올린 사진은 과연 누굴 위한 건지. 정말 행복한 건지, 행복한 척하는 건지... 어느 순간 마음이 헛헛하고 공허해져서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버리곤 해. '좋아요'는 왜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거니? 무슨 곤약 젤리야?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것도 아닌 이런 가면. 대체 왜 쓰고 있어야 하는 거야? 원만한 인간관계, 사회생활? 내가 안 괜찮으면 무슨 소용인데?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젠 그딴 가면 과감히 벗어 던지고 '나'란 사람을 당당하게 드러낼 때가 됐어. 본격 ME밍아웃 프로젝트라고? ㅋㅋㅋ 어디서 들은 건 있네. '커밍아웃' 따라 한 거지? 센스 만점인데?

 그래서 네가 해주고 싶은 말은 뭐야? 강한 척, 있는 척, 착한 척, 괜찮은 척하지 말라고? 맞아. 나도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한 적 많아. 솔직하게 행동하기가 참 쉽지 않더라고. 속내를 드러내면 뭔가 큰일 날 것 같아서 말이야. 나보다 남들이 신경 쓰이면 스위치를 내려 버리라고? 그거 좋은데! 천재다! 좋아, 앞으로는 누가 싫은 소리 하면 그냥 한 귀로 흘려보낼게. 근데 남도 남이지만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너무 많아. 대체 무슨 변덕인지. 변덕스러운 모습 모두 나라는 거야? 신기하네. 내 안의 어떤 모습도 전부 나니까 아끼고 인정하고 사랑해주라는 거지? 그렇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은 숨기고만 싶었는데 이제부터는 나부터 자신을 보듬어줄게. 너랑 이야기하니 뭔가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알록달록 귀엽고 예쁜 그림을 한참 봤더니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해. 네가 전해준 진심 어린 공감과 조언 덕분에 적어도 며칠은 끙끙대지 않고 나답게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알지? 나 소심한 거. 내가 겁먹고 다시 가면 쓰려고 하면 네가 찾아와서 날 응원해줘야 해. 알았지? 고마워. 너랑 만난 건 행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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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감 -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창비청소년문고 31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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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 감>. 사실 이 책의 첫인상을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다. 목적지를 향해 무심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커피를 들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혹은 피곤한지 눈도 못 뜬 채로 축 처져 길을 오가는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참이나 지난 후에 신호등에 서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책을 읽기 전이었기에 무슨 사연인지 알 길이 없었고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첫 장을 펼쳐 들었다. 김중미 작가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래, <괭이부리말 아이들>! 책을 사랑하는 이의 취향을 저격했던 그 시절 그 예능,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선정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도서 아니던가! 드디어 기억났다.

 <존재, 감>은 김중미 작가가 여러 학교를 방문하며 강연했던 이야기보따리다. 가기 귀찮고 힘든 곳일수록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발품을 팔며 아이들이 숨 쉬는 공간에 뛰어들었다는 작가.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지 정말 궁금했다. 내가 보는 세상보다 훨씬 따스할까? 살맛 나는 인생 열심히 살라며 응원해주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애써 뒤로 한 채, 난 그렇게 작가의 이야기보따리에 슬며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었는데, 1부에는 작가가 지난 2년 동안 강연에서 소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2부에는 강연 때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글은 기록으로 남는 것이기에 말로 전달할 때보다 부담감이 컸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소중하고 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존재, 감>에서는 힘을 합쳐 겨울을 나는 작은 새, 불법 체류자로 이리저리 쫓기는 신세인 이주 노동자, 보육원 출신이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인생을 개척한 민우, 시각 장애를 딛고 로스쿨에 진학한 진영이, 학대받고 버려진 동물, 바다에서 눈을 감은 영욱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의 농업 이야기, 인종 차별과 편견,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 등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겠지만, 그냥 흘려넘겼을 사회 약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그 관심과 사랑을 작가는 담담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우리가 달라져야 비로소 모두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음을 전한다.
 

평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그저 함께 사는 것이지요. - p50

"진짜로 잠든 사람을 깨우는 건 쉽다. 그러나 잠든 척하는 사람을 깨우는 건 어렵다" - p125

청소년기 때 저는 늘 불만에 가득 찬 아이였어요. 쉽게 예 하지 못했고, 항상 비딱하게 세상을 봤죠.
어른들은 그걸 그저 반항이라 여겼지만 제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어요.
저는 그런 것이 작은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작은 용기들이, 그 용기가 내는 작은 균열들이 견고해 보이는 이 세상을 조금씩 바꾼다고 생각해요. - p162

 눈물을 펑펑 흘리며 후회하거나 뉘우칠 정도의 큰 울림은 아니었지만, 가슴 속의 무언가가 꿈틀하고 찌릿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이기에 어떤 반박도, 예외도 허용할 수 없었던 그런 순간. 그저 작가의 이야기에 끄덕이며 '맞아, 그렇지'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마음이 좁고 생각이 짧은지 조금은 부끄러웠다. 내가 달라진다고 대번에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가 손을 잡고 따스한 마음을 전하면 분명 오늘처럼 작은 무언가가 꿈틀하고 찌릿할 그날이 오겠지?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고 따스했기에 어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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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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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눈을 감고 앞으로 3, 40년 후를 상상해본다. 지금 산 만큼만 더 살면 맞이하게 될 70대. 내가 그리는 70대란 대체 어떤 모습일까? 여러분도 생각해보시길! 70대라면 어쩐지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심심하고 적적한 삶을 보낼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돈다. 100세 시대라는 요즘 70이면 중년이건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밀려오는 배신감! 그러나, 이 책을 보니 그런 생각은 'No, No!'. 이런 멋진 70대라면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에서 만난 귀엽고 매력적인 70대 노인 다섯 분은 말 그대로 유쾌, 상쾌, 통쾌! 재미없게 사는 나보다 이 노인 강도단이 백 배, 아니 천 배는 더 재밌게 사는 것 같다. 결국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구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에 이어 세 번째이자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너무 재밌어서 다음 편을 기대했건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다. 혹시 번외편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꼭 부탁드립니다, 순드베리 작가님. 하여튼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노인 강도단의 리더이자 천재와 약혼한 사이인 메르타, 노인 강도단의 브레인 담당인 천재, 은행원 출신으로 금융과 컴퓨터 쪽을 꽉 잡고 있는 안나그레타, 전직 선원이자 정원 가꾸는 걸 좋아하는 갈퀴, 문학과 미술을 사랑하는 막내 스티나.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이 노인 다섯 명이 모여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파라다이스인 '환희 마을' 조성을 꿈꾸며 돈을 모으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멋지게 은행을 털고 아지트로 돌아와서는 작은 실수로 범행에 사용했던 쓰레기 수거 트럭을 옆집 수영장에 빠트리고는 방법을 고심하다 아예 시멘트로 수영장을 메워버리는 등 이 노인 강도단의 통통 튀는 행보는 너무 창의적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은행 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탈세범의 재산을 회수하는 일에 눈을 돌린 노인 강도단은 범행을 계획하며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잠시 도피했다가 더 큰 한탕을 노리며 호화 요트에 접근한다. 과연 노인 강도단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다섯 노인의 유쾌한 범죄 행각에 626페이지의 벽돌 같은 이 책의 두께가 무색하리만큼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 재밌어도 정말 너무 재밌다!

 오랜 시간 수중고고학자로서 연구하며 여러 박물관에서 근무했던 순드베리 작가님의 특이한 이력과 더불어 어쩜 이렇게 유쾌한 소설을 쓸 수 있는지 그 능력과 재치가 질투 날 정도로 부러웠다. 한국에서도 한때 <마파도>와 같이 노인이 활약하는 영화가 큰 흥행을 거뒀듯이 우리가 이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쩌면 노년에 대한 불안감과 색안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깔린 '노인네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무시와 조롱이 반비례로 작용하며 노인의 멋진 활약상에 더욱 감탄하고 놀라게 하는 것이리라. 나 역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노인 강도단이기에 더 즐겁고 스릴 넘쳤다.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팬클럽이 있다면 가입하고 싶은 심정! 이 앙증맞고 순수한 노인 강도단에게 과연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단 한 편의 이야기로 노인 강도단의 열렬한 팬이 되어 버렸다. 혹시 뵙는다면, 레몬 비스킷과 북극산 오디주 한 잔 대접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디엔가 정말 있을 것만 같은 노인 강도단의 건강을 기원하며 부디, 제발, 꼭 번외편으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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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진가
모데라타 폰테 지음, 양은미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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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진가>, '여성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초기 페미니즘 사상의 촛불 같은 고전'. 책 표지에 새겨진 문구만 봐도 이 책의 대략적인 분위기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여성의 우월함을 앞세운 '페미니즘'에 관해 말하겠구나! 하지만 특이한 건 이 책이 50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16세기 후반, 베네치아의 여성이 생각했던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남성을 보는 여성의 관점과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는데, 읽다 보면 지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성의 진가>는 어떤 책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책의 저자 모데라타 폰테는 어린 시절부터 명석한 두뇌와 문학적 재능을 뽐내며 주변 사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차린 사라체니라는 인물의 제안과 지원으로 폰테는 시를 쓰고 글을 쓰게 되었다. 비록 오빠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학교에 다녀온 오빠에게 라틴어를 배우고 수업 내용을 전해 들으며 학식을 높여 훗날 거의 모든 방면에서 걸출했다고 한다. 이 시대로 치자면 한마디로 '난사람' 즉, '난여자'였다. 부유한 남편과 결혼하여 총 네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막내를 출산하다 안타깝게 사망하였고 이 <여성의 진가>라는 작품은 그녀가 막내를 출산하기 하루 전, 즉 사망하기 하루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작가의 일생에서부터 느껴지는 범상치 않음. 역시나 <여성의 진가>는 굉장히 특별하고 대담했다. 노동자나 평민도 아닌 이름 있는 명문가의 일곱 여성이 멋진 저택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들은 두 무리로 나누어 여성 편에서 그리고 중립 혹은 남성을 옹호하는 편에서 대화를 이어간다(결국 여성 편이긴 하지만). 여자친구끼리 모이면 흔히 오가는 '이놈의 세상은...', '하여튼 남자들이란...' 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의 대화가 오가는데 좀 더 고급스럽고 예의 바른 버전이라고나 할까? 500년도 넘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어쩜 이리 같을 수가 있는지 사회적 분위기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신기하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나는 남자와 여자는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니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측이라, 뭐가 옳다, 아니다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진가>를 읽으며 느낀 바로는 여성이 분노하는 대상은 남성이라기 보단 여성을 옳아매고 조이는 '사회적 분위기와 체제'가 아닐까 싶다. 그걸 만든 장본인이 남성이기에 여성은 분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게 되는 그런 상황. 여성으로서 상당히 이해되고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성별을 떠나 한 명의 독자로서 '페미니즘'의 고전을 접한 흥미로웠던 시간. 현재와 놀랍게 일치하는 16세기 말, 여성의 목소리가 궁금한 독자님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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