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의 문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탄의 문>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게 정말인가 싶었다. 미미여사의 귀환이라니!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신작.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을 손에 안아 드는 순간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얼마나 기다렸던지. 각 500페이지가량의 두툼한 벽돌 2권을 쓰다듬으며 오래전에 읽었던 <모방범>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에 만났던 그 소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밤을 무서워 뒤척였던가. 그 스산하고 서늘한 느낌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 지금까지도 심장을 욱신거리게 한다. <비탄의 문>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너무나 설레고 살짝 긴장까지 한 상태로 첫 장을 펼쳐 들었다. 현실을 잊고 미미여사의 세계에 온전히 빠져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 

 비가 세차게 내리치는 날, 다섯 살인 꼬마 마나는 춥디추운 방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등을 돌리고 누워 폐렴으로 콜록대며 서서히 생의 불꽃을 잃어가는 엄마. 홀로 남게 될 마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원통 빌딩의 옥상을 주시한다. 그곳엔 괴물이 있다. 그리고 그 괴물이 곧 죽음을 의미함을 마나는 직감한다. 한편, 19살 고타로는 선배의 추천으로 '쿠마'라는 회사에서 사이버패트롤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데, 그 시기에 살인사건이 터진다. 발가락이 손실된 살인 피해자. 몇 달 전에도 이와 비슷한 두 건의 살인사건이 있었지만 세 번째 사건이 터진 후에야 연쇄 살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수사가 이뤄진다. 또 다른 연쇄 살인 사건일까? 주변 지역에서 노숙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수상한 냄새를 맡은 '쿠마'의 모리나가는 의문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다 사라진다. 바람처럼 사라진 모리나가를 찾다가 둥근 원통 모양의 '차통 빌딩'에 도달한 고타로는 전직 형사 쓰즈키와 마주치게 되는데, 이 노인은 움직이는 조각상을 수사하던 중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데... 과연 이 살인사건의 범인은 누구이며 움직이는 조각상은 무엇일까? 사라진 모리나가의 행방은? 그리고 고타로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미미여사의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이번 신작 <비탄의 문>은 조금은 어리둥절한 작품일 수도 있다. '미스터리면 미스터리지, 웬 판타지람?'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워낙에 판타지도 좋아하는 미미여사이기에 이번 책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랄까? 판타지와 미스터리 그리고 적어도 한 번쯤은 깊게 생각해봐야 할 사회문제까지. 미미여사는 어느 토끼도 놓치지 않은 채로 또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했다. <비탄의 문>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말의 '업보'에 관해 꽤 묵직하고 엄하게 다룬다. 재미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걸,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말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


 "고이고 쌓인 말의 무게는 언젠간 그 말을 쓴 사람을 변화시켜. 말은 그런 거야.
어떤 형태로 꺼내놓든 절대로 자신과 떼어놓을 수 없어. 반드시 자신도 영향을 받지.
닉네임을 몇 개씩 번갈아 쓰며 아무리 교묘하게 정체를 감춰도, 글을 쓴 사람은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아.
스스로에게서 달아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167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던 <비탄의 문>. 늦은 밤,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만 켜놓을 채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새벽까지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현실과 걸맞지 않은 판타지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왜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해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던 상황. 그 정도로 이 세상은 질서 없이 어지럽고 인간의 이기심과 질투심을 그 어떤 칼과 맹독보다도 치명적이기에! 미미여사가 남긴 진한 여운과 깊은 울림은 <모방범>의 충격만큼이나 오래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다. 마음이 좀 진정되면 머지않은 시일에 꼭 다시 읽고 싶은 <비탄의 문>.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닥토닥, 숲길 - 일주일에 단 하루 운동화만 신고 떠나는 주말여행
박여진 지음, 백홍기 사진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안타깝게 주말이 지나버린 월요일 저녁이면 늘 다짐하곤 한다. '우리 이번 주말엔 꼭 놀러 가자. 가까운 곳이라도 좋아.' 하지만 책벌레인 내가 외출보다 달콤한 개인 시간을 택해버리면 신랑, 나 그리고 두 살 꼬마는 각자 혹은 함께 뒹굴뒹굴 뒤엉겨 주말을 보내기 일쑤. 월화수목금금금인 우리 집은 누적된 피로와 만만찮은 육아에 허덕이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말해놓고도 다시 보니 우리 집 참 안쓰럽네. 그러다 문득 눈에 띈 책이 바로 <토닥토닥, 숲길>. '토닥토닥'과 '숲길'의 조화라니, 이런 취향 저격이 있나! 갑자기 숲의 푸르른 향기가 코끝에 감도는 것 같다. '어서 와, 이 책은 처음이지?'라는 다정한 목소리에 이끌려 펼친 책날개에 쓰여 있는 작가 소개. 글을 쓴 박여진 작가는 번역가고 사진을 찍은 백홍기 작가와 부부라고 한다. 작가의 직업이 번역가라서일까? 이 책 정말 끌린다.

 

 

 

 

 

 오랜 친구였기에 부부가 된 후에도 여전히 친구 같은 두 작가. 두 사람이 가는 길마다 봄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가을날 곱디고운 단풍이 고개 숙여 쓰다듬어 줄 것만 같은 따스함이 묻어난다. 물론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어째 이건 그저 한쪽의 투정으로 끝나버리니 그마저도 귀엽다. 부부가 새벽에 훌쩍 어딘가로 떠나 맞이하는 해돋이와 맛있는 아침 식사는 대체 어떤 느낌일까? 올빼미족인 우리 신랑과 나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새해 다짐으로 몇 년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 되기를 빌지만, 아직도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 안타깝도다.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동안 조금씩 습관을 들이면, 2019년엔 아침형 인간과 주말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작가 부부가 다녀온 여행지를 되짚어 보자. 강화 교동도, 춘천, 파주, 횡성, 영월, 태백, 정선, 하동, 공주, 구례, 화순, 안동, 괴산, 청도, 거제도, 남해까지 총 16곳. 각 장소에서 방문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와 자세한 팁, 추천 일정과 먹거리,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곳 등등 친절하고 세세한 정보에 감탄하며 이 정도까지 알려주는데 꼭 가봐야겠다 몇 번을 다짐했더랬다. 딱 하나 아쉬웠던 건 지도가 없다는 것. 작게나마 여행지가 지도상에서 어디쯤인지 실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외엔 전부 만족!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생기 넘치고 아늑한 사진에 따스하고 유쾌한 글이 더해져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던 책. 아직 운동화 끈도 매지 못했지만, 마음은 훨훨 날아 숲길을 거닐고 있던 행복한 순간. 급하게 서둘지 말고 느긋하게 다녀오자. 이 소중한 감성을 고이 간직한 채, 숲길에 바스락 첫발을 디디는 그 순간 아낌없이 뿜어내리라. 숲길, 기다려. 내가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 All-Star - 꼬박꼬박 하루 하나씩 클래식 영어 읽기 열두 달 멋진 영어 시리즈 1
이충호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잠들기 30분 전, 내일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깨끗이 씻은 후에 곧 하루를 마무리할 이 순간은 굉장히 소중하다. 보통 두꺼운 책을 읽다 잠들곤 하는데, 가끔 필사하거나 어두운 방에 스탠드만 켜고 앉아 간단한 일기를 쓰기도 한다. 요즘은 새로운 과정 하나 추가!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덕분에 하루에 하나씩 짧고 간단한 영문을 살펴보고 영어 실력을 점검하고 있다. 1년 12달, 각 4주, 주말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문장분석과 어휘 정리가 같은 페이지에 실려 있어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참 편하다. 공부도 게으르면 자꾸 멀리하게 되는 법! 영어로 잘 차려준 매일의 밥상이 담긴 이 책은 하루에 잠깐이라도 영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책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총 5개의 짧은 글을 공부하고 나면, 그 주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어휘 총정리에서 일주일의 기억을 더듬으며 단어를 잘 기억하는지 최종 점검! 뇌는 한 번 습득한 정보를 잊기 전에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보존 기간을 늘리다가 마침내는 절대 잊히지 않도록 각인한다고 한다.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이 제시한 대로 1년 동안 매일같이 공부하면, 과연 이 책을 마무리했을 때 내 영어 실력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사실 이미 어느 정도 영어를 정복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큰 차이가 있겠냐마는 영어를 잘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엄청난 성장을 이루지 않을까 싶다. 톡톡 떨어지는 한 방울이 모여 결국 거대한 바위를 쪼개듯이 매일 수고한 하루 10분의 노력이라면 영어라는 큰 바위에 적어도 구멍은 뚫겠지! 이 책을 벗삼아 노력해보자.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쭉 읽다가 발견한 마음에 든 문장. "Be Classy & Fabulous - 품격이 있고 매혹적일 것", 코코 샤넬이 남긴 명언이다. '유행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나는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 인생을 창조했다.' 등등 참으로 당당한 문장. 'I don't think about you at all', 한 마디로 '난 너 눈곱만큼도 신경 안 써' 인데... 역시 코코 샤넬답다. 책에 실린 해석은 아무래도 점잖은 편이니 영문을 적어보고 내 식대로 해석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본업으로 인해 늘 구어체에 목말라 있는 내가 번역하면 전부 드라마나 영화 대사 같을 듯. 노트를 하나 정해서 1년간 차곡차곡 적어 연말에 보면 굉장히 뿌듯하지 않을까? 열심히 영어 공부하는 지인이 있다면 올 연말 선물을 이 책으로 결정! 다음 시리즈도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
남편을 사랑하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내 이름은 레이첼이다. 물론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은 따로 있지만, 영어를 인생에 받아들인 순간부터 내 이름은 레이첼이었다. 나와 레이첼이란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입안에 감도는 '레이첼'이라는 그 발음이 달콤하게 톡 터지는 체리처럼, 때로는 쌉싸래하게 맴도는 쓴 커피처럼 점점 더 애착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알게 된 청천벽력 같은 소식!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내 이름은 '레이첼'이 아닌 '레이철'로 표기해야 옳다는 것. 내 이름 내놓으라고 국립국어원에 쫓아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레이철'이라니. 무슨 철의 여인도 아니고. 내 이름 돌려달라! 아직도 '철'자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쨌든 지금은 레이철일 수밖에 없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의 모든 레이첼 여러분 잘 있나요? 우리는 이제 레이철이랍니다. 이름으로 한풀이할 곳이 없어 딴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오늘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건 내가 만난 또 다른 레이철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추락한 이유>라는 데니스 루헤인의 신작을 통해 나와 이름이 같은, 심지어 나이도 비슷한 레이철을 만났다. 데니스 루헤인이 누구던가?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원작인 <살인자들의 섬>을 쓴 작가라고 하면 아마 얘기가 제일 빠를 것이다. 누군가 깊은 곳에 숨겨 둔 고통과 일말의 부끄러움까지 철저하게 꿰뚫는 심연의 눈을 가진 작가. 그가 전하는 레이철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 당신이라면 거부할 수 있을까?

 특별히 관리하진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손톱 아래로 주름진 손가락과 조금 굵은 손마디가 이어진다. 그 손 뒤에 한 여인의 절망 가득한 눈망울이 깔려 있다. 모든 걸 포기한 듯 희망은 사치라고 말하는 얼굴. 하지만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니 여인의 눈은 간담이 서늘할 만큼 차갑고 경멸과 분노라는 감정마저 떠오른다. 맙소사, 레이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누군가에게 낚아채 깊고 깊은 구렁텅이로 추락하듯이 난 그렇게 표지 속 여인, 레이철의 인생으로 빠져들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며 늘 아빠를 그리워한 레이철. 워낙 어렸을 때 헤어진 터라, 기억에 남는 아빠와의 추억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나마 생각나는 거라곤 아빠의 이름이 '제임스'였다는 것 정도다. 아빠의 성을 끝내 알려주지 않은 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엄마를 원망하며 레이철은 사설 조사 기관에 아빠를 찾아달라고 의뢰하고 그때 브라이언을 처음 만난다. 너무나 정직했던 사설 조사 기관 직원 그리고 너무나 절박했던 의뢰인. 브라이언과 레이철의 만남은 이렇게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 끝난 듯했다. 결국 아빠를 찾지 못하고, 일상에 전념한 레이철. 그녀는 언론사 기자로 이름을 날리며 더 큰 성공을 위해 자연재해와 폭동으로 아수라장이 된 아이티의 특파원으로 나서는데, 세바스찬과의 행복하지 않았던 결혼생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긴장된 나날, 아빠를 찾지 못했다는 실망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티에서 살해당한 여자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방송 도중 돌이킬 수 없는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레이철의 인생은 실패자라 낙인찍힌 채 그렇게 끝나버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오래전에 만났던 브라이언과 재회하며 레이철은 공황 발작을 극복하고 새로운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이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끝이라면 너무 시시하지 않은가? 역시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거부할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모두를 빨아들인다. 이제 됐구나, 행복하구나 싶은 순간부터 진짜 이야기는 시작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참 신기한 경험을 했다. 레이철의 감정과 상태에 따라 소설의 속도는 더디 흐르거나 빨리 흐르며 이야기에 집중할수록 심장이 널을 뛰더라. 아빠를 찾다 좌절하고 경력에 타격을 입은 레이철이 이혼 도장을 찍고 자포자기하는 순간은 시간이 너무나 더디 가서 이렇게 지겨운 제자리걸음이 있을까 싶었다. 제발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레이철만큼이나 나도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지! 그 순간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난 브라이언에게 반하고 마음을 내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레이철과 브라이언에겐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연결해준 가는 끈이 있었기에 사랑이란 운명은 더디 왔을 뿐 원래 정해져 있던 상황. 브라이언이라는 완벽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순간에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이라는 석연치 않은 의심이 역시나 사실로 벌어지는 순간, 나는 '대체 왜!'라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왜 불행은 이미 방문한 곳에 또 찾아오는가! 하지만 우리의 레이철은 약하지 않았다. <툼레이더>급 여전사는 아니지만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처럼 놀랄만한 액션을 선보인다. 마무리는 한국 영화 <도둑들>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비록 브라이언으로 인해 꼬일 대로 꼬여버렸지만, 레이철은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이 멋진 한탕의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거듭난다. 불과 몇 문장 차이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게 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히든카드에 대체 이 소설의 끝은 어디일지 식은땀을 흘리며 책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긴 하지만, 그 안에 알알이 박힌 분노, 절정, 탐욕, 복수, 살인, 사기, 폭동, 공황 장애, 파탄 등의 요소를 생각하면 그저 단순히 범죄 소설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골자는 사랑! 도서 띠지에 담긴 AP의 세 줄짜리 감상평이 정말 딱 들어맞는 소설이었다. 같은 인물일까 싶을 정도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레이철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는 과연 몇 명의 자아가 존재할지 궁금했던 시간. 다중인격이 아닌, 여러 감정에서 나타나는 자아 말이다. 줄다리기처럼 팽팽하게 펼쳐졌던 <우리가 추락한 이유>는 이제 끝났지만, 손끝까지 전해지던 그 깊은 절망과 분노, 놀람과 환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내 가슴을 뛰게 할 것만 같다. 레이철, 가던 길 무사히 가고 있니? 부디 이번엔 진짜 행복을 찾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1~2 세트 - 전2권
케빈 콴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억' 소리 나는 부자를 보았나!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선보이는 세계 0.01% 갑부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어디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주인공은 누구? 29살, 대학교수인 레이철 추! 레이철이 '억' 소리 나는 부자? 아니, 레이철의 남자친구인 니컬러스가 바로 억만장자! 세상에, 그냥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던 애인이 세계 최고의 갑부라면? 이런 동화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케빈 콴 작가가 실존하는 지인들을 바탕으로 쓴 좌충우돌 로맨스 소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휘황찬란한 '부'의 세계에 아무 준비 없이 풍덩 빠져버린 레이철의 고군분투 연애 원정기. 그 무대로 여러분은 초대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어서 오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꼴로 호텔 로비를 누비는 아시아인 무리. 이런 고급 호텔에 중국인이라니! 도도한 영국 호텔 매니저는 가장 비싼 스위트 룸을 예약했다는 이 영 가문(니니컬러스의 집안) 사람들의 말을 무시하고 어떻게든 쫓아낼 궁리만 한다. 드디어 쫓아냈다는 후련함도 잠시, 세상에 왜 아까 그 중국인들이 호텔 소유주와 함께 들어오는 거지? 저 중국인이 이 호텔을 샀다고? 그럴 리가! 맙소사. 밑도 끝도 없는 인종차별의 대가로 매니저가 해고당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십분! 이것이 바로 크레이지 리치의 위세다!

 갑부들이 벌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놀랍고 상상 초월이라 그때마다 의도치 않게 배경음이 깔리더라. 한때 팝의 요정이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크레이지'! 그 킬링 파트가 갑부들이 까딱이는 손가락, 말 한마디, 고갯짓에 따라 수도 없이 반복됐던 소설. 무슨 이런 부자가 다 있담?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니 분명 성공한 삶이건만, 그런 레이철이 상대하기엔 너무 벅찬 상대들.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같이 가자며 본가인 싱가포르에 놀러 가자는 애인 닉(니컬러스)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도착한 그곳은 듣도 보도 못한 별천지였다. 세계 최고의 신랑감인 자기 아들을 절대 내줄 생각이 없는 엘리너의 눈에는 평범하다 못해 늙고 못난 레이철. 과연 레이철은 이 미친 갑부들을 상대로 닉과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는 엄청난 재산으로 벌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가 담겨 있다. 전용기와 요트를 타고 통째로 빌린 혹은 사들인 섬에서 파티를 하고 마카롱 사듯이 명품 쇼핑을 하는 미친 부자들의 일상. 지금도 세계 어디에선가 카드를 긁고 있을 그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쏟아낸다. 그리고 작가가 절대 놓지 않는 한 가지! 바로 사랑. 새 가족을 맞아들이는 것조차 철저한 계산 하에 사업이라 여기는 이 미친 부자 가문에서 순수하고 따스한 가족애를 꿈꾸며 온전히 사랑만을 택한 닉과 아스트리드의 소박한(?) 로맨스는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마치 눈앞에 차려진 듯 생생하게 묘사되는 싱가포르 진미는 독자를 위한 덤! 보여주기에 집중한 나머지 인물 간의 세밀한 심리 묘사가 살짝 아쉽고 눈물 펑펑 쏟을 감동을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삼박자가 어우러져 발하는 매력은 쉽사리 거부할 수 없었다. 현실과의 괴리감에 조금 허탈하면서도 나름 유쾌하고 즐거웠던 소설. 근데 어째 책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 기대되는 건 나 뿐일까? 갑부들이 펼치는 부의 향연을 직접 보고 싶어서 일지도...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깊어가는 가을 로맨스에 목마르거나 '억' 소리 나는 갑부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