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3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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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악의 여왕

지은이: 에밀리 킹

옮긴이: 윤동준

펴낸 곳: 에이치

 

 

 칼린다, 그녀가 돌아왔다! 오직 살아남고자 그 수많은 결투를 이겨내고 데븐과의 사랑을 확인했던 『백 번째 여왕』, 라자 타렉에게서 벗어났다는 기쁨도 잠시, 아스윈 왕자의 신부를 정하기 위해 벌어진 동맹국 간의 싸움에 휘말렸던 『불의 여왕』에 이어 『악의 여왕』으로 귀환한 칼린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백 번째 여왕』에서는 악의 화신 라자 타렉과 싸웠다면 『불의 여왕』에서는 동맹국과 반란군을 상대로 싸웠지만 『악의 여왕』에서는 대결할 상대의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인간이 아닌 절대 악과의 싸움! 라자 타렉의 모습을 한 악마, 보이더의 차디찬 한기에 맞서는 칼린다의 불꽃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데븐을 향한 마음과는 달리 유일하게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아스윈 왕자의 품으로 파고들게 된다. '아이고, 이것아! 대체 너의 마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이냐!' 이 남자, 저 남자 다 놓지 못하는 모습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로맨스 빠진 판타지는 팥소 없는 찐빵이기에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맞장구쳐주며 칼린다의 장단에 함께 춤추었다. 전편에서부터 신경 쓰이던 아스윈도 멋있지만, 원래 연인인 데븐도 멋지기에 누구의 편을 들기가 참 어려운 상황. 그 선택은 오로지 칼린다에게 달렸다.

 

 한층 긴박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따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성숙해진 칼린다. 이제 그녀에게서 수도원 소녀 시절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불을 부리는 칼린다의 능력이 일취월장하면 할수록 점점 대범하고 화려해지는 결투 장면. 보는 나는 즐겁지만 대체 이 지독한 운명의 굴레는 언제 벗어던질 수 있단 말인가!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어오르는 로맨스와 희망은 칼린다를 놓아주지 않고 다음 편인 『전사의 여왕』을 약속하며 막을 내린다. 과연 이 싸움의 끝은 어디 일지, 그리고 칼린다가 선택할 단 한 명의 남자는 누가 될 것인지 흥미진진하다. 칼린다, 조금만 기운을 내! 고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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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은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져 - 행복한 개인주의자의 누가 있지 않아도 되는 일상
야오야오 마반아스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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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어떤 마음은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져

글 & 그림: 야오야오 마반아스

펴낸 곳: 문학테라피 / 도서출판 아름다운사람들


 예전에 독신 여성의 생활을 그리는 작가라며 소개글과 함께 몇몇 그림을 실은 포스트를 본 적이 있다. 마우스 스크롤 바를 굴리며 화면을 내리던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마음을 뺏겼던 그림. 차에 앉아 혼자 우는 모습,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 씻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마감에 치여 밤샘 작업하는 모습. 누군가의 인생을 오롯이 화폭에 옮긴 것처럼 온갖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가 스쳐 지나갔다. '이 작가 대단하다. 정말 보통이 아니야!' 이번 만남이 마지막은 아니겠구나 직감했다.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작가라는 강한 예감. 역시 여자의 촉은 용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료한 일상을 지내던 어느 날, 문득 눈에 띈 그 그림! 『어떤 마음은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져』 세상에, 한국에 출간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어쩐지 포카혼타스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디즈니 애니메이터라는 작가. 미국 느낌, 디즈니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행복한 개인주의자의 누가 있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란 부제도 완전 취향 저격!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나지만, 가끔 그리운 혼자였던 시절을 추억하며 한 장, 한 장 아끼는 마음으로 읽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반려견을 키우며 산다는 야오야오 마반아스 작가, 여러 대기업과 굵직한 작업을 진행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워커홀릭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자신의 외로움, 슬픔, 무력함 등의 약한 모습은 물론 행복, 따스함, 충만한 감성 등의 기분 좋은 순간까지 전부 이 책에 담아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혼자인 순간들을 작은 이야기로 그렸다는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니 그녀의 글과 그림엔 확실히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한국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하여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첫 책을 출간했다는 작가. 그래, 우리 인연은 우연이 아닌 운명임이 확실! 이렇게 날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도와주는 사람 없이 홀로 밤샘 작업하며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하는 바쁜 일상이지만, 짬을 내어 강아지와 산책하고 때론 쇼핑도 하는 소박하고 소중한 일상. 호박 속을 싹싹 파내어 핼러윈 호박등을 만들고 추수감사절 만찬을 차리는 즐거운 순간, 굳이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아도 혼자만의 행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물론 혼자라서 외로울 때도 있지만, 늘 곁에 있어 주는 강아지의 따스한 온기면 에너지 충전! 힘들어서 눈물이 핑 도는 날엔 펑펑 울고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집을 싹 청소하고 배가 고플 때는 면 요리를 준비해 후루룩 면치기로 흡입한다. 분명 '내'가 아닌 '너'의 일상임에도 너와 내가 하나인듯 손끝에서 눈빛에서 표정에서 그리고 분위기에서 오롯이 전해지는 순간의 감성과 진심에 가슴에 찡한 시간.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고 마침내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 자꾸만 붙잡게 되었던 '너'와 '나'의 파노라마 같은 소중한 순간들. 행복하다. 

 

 

 

 

"7월의 크리스마스 라이트

마음속에 오래 꿈꿔온 순간이 있다.

반짝이는 건 다 좋아하는

파커를 데리고

다큐멘터리에서 본 반딧불 섬으로

단둘이 캠핑을 가고 싶다.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손전등 하나 들지 않고

작은 빛무리를 따라 하염없이 걷고 싶다.

그 전에 극복해야 할 것 한 가지.

벌레 공포증."

 

 

 까만 밤을 반짝반짝 수놓는 반딧불의 영롱한 불빛을 나도 볼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편한 신발에 가볍게 꾸린 배낭 하나만 들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어 혼자 출발한 '너'의 발걸음을 급히 쫓아가고 싶다. 행복해서 폴짝거리는 파커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코를 맞대고 '착하다' 칭찬해주고 혼자여서 좋다는 '너'의 일상에 슬그머니 물들어 그 순간을 함께하고픈 욕심. 작가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내 친구로 삼아버린 나를 열렬한 독자이자 인생의 친구로 여겨주기를. 진심이 묻어나는 따스한 그림에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그동안 많은 책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 책만은 꼭 끌어안고 절대 놓치기 싫은 그런 마음. 콩닥콩닥 따스함을 뿜어내는 이 온기가 오래도록 식지 않고 내 마음에 머물러 주기를. 모두 잠든 야심한 밤. 나는 그렇게 바라도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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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 조선일보 편집자의 현장 기록
주영훈 지음 / 가디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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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지은이: 주영훈

펴낸 곳: 가디언


 내일 자 조간신문 편집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철컹철컹, 윤전기는 우렁찬 기합을 뿜으며 내일 새벽 전국으로 배달될 기사를 종이에 박아 넣는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마음처럼 되던가? 갑자기 터진 뉴스 속보에 편집실 야간 근무팀은 비상사태에 돌입한다. 정확한 정보라면 기계를 잡기라도(윤전기 가동 중지!) 할 것을, 모호한 한 줄짜리 외신 속보에 편집실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사를 수정할지 말지 고민을 거듭한다. 이미 찍어낸 부수는 어쩔 수 없어도, 속보가 들어오면 남은 부수는 새롭게 찍어내야 하는 상황. 그렇게 신문 편집부는 발 빠른 소식을 전하려 24/7 불철주야로 달린다.


 며칠 전에 『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이란 책을 읽으며 영화 잡지에 실을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생생한 현장을 맛보았는데, 이번엔 신문 편집실을 만났다. 2002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2006년부터 1면 편집을 맡은 주영훈 작가의 편집 일지,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늘 폭풍전야 상태인 신문 편집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 책 덕분에 마치 편집부 신입 사원 교육이라도 받는 양 나도 덩달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평소 신문을 잘 챙겨보진 않지만, 신문 편집실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작가가 피나는 노력으로 일군 편집 실력과 글솜씨 덕분이었을까? 웬만한 소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재밌는 이 책, 마성의 매력을 지녔다.

 

 

 

 

 

 이 책은 '1부, 편집국 이야기', '2부, 제목 이야기'와 '3부, 신문 편집 이야기' 그리고 짧은 에필로그와 감사의 말로 구성되었다. '편집국 이야기' 편에서는 마감이 지난 후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으로 인해 피 말리는 눈치작전을 펼치며 1면을 수정하는 편집실 상황을 묘사한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급박감에 흥미진진하다 못해 전율이 일 정도! 당사자들을 속이 타들어 갔겠지만 독자인 나는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글이기에 생동감 넘치고, 수정 전후의 신문 1면을 비교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제목 이야기'에서는 구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제목을 정하려 선택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와 패러디 제목 그리고 의도치 않게 독자에게 상처를 준 씁쓸한 제목까지 다양한 사연을 접한다. '신문 편집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어진 신문 편집에 관한 모든 요소가 접목하여 다양한 신문 1면을 살펴보며 편집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신문 편집자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허공에도 활자가 둥둥 떠다닐 것 같은 답답한 편집실에서 오늘도 최고의 한 줄을 뽑아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끙끙댈 편집자들, 그 노력의 결실로 발간된 종이 신문을 우리는 너무 당연한 듯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쉽게 마시는 커피 한 잔, 쓱 닦고 버리는 티슈, 종이 쓰레기 분류함에 던져 넣는 신문까지 사람의 노력 없이는 어느 하나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짜릿한 편집실 상황과 더불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저런 생각에 푹 빠졌던 시간. 최고의 한 장면을 꼽으라면 북미 싱가포르 회담을 돌연 취소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하루 만에 다시 조정 중이라고 말을 뒤집어 이틀간 마감 직전 30분 동안 종합면 전체를 바꾼 아찔한 순간을 꼽겠다. 발등에 불 떨어진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는 신문 기자 혹은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어두운 밤, 한 줄기 등불처럼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좋은 책이다. 신문 편집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게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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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페포포 리멤버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심승현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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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페포포 리멤버

글 & 그림: 심승현

펴낸 곳: 허밍버드 출판사 / (주)백도씨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였던 2002년, 슬그머니 나타나 내 마음을 두드린 책, 『파페포포 메모리즈』. 파페와 포포 그리고 나, 모두가 아직 덜 여물어 청춘이라 아프고, 청춘이라 행복했던 그 시절. 그 소중했던 나날을 나도 모르게 마음에 묻고 살았나 보다. 다 잊고 살았다. 그런데 파페와 포포는 잊지 않았구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내게 다가와 톡톡 문을 두드린 녀석들. "안녕, 친구야. 잘 있었니?" 16년 만에 찾아온 파페와 포포에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가슴이 먹먹했다. '난 이렇게 나이 들었는데, 너희는 그대로구나! 못된 것들!' 농담 삼아 볼멘소리를 하며 맞잡은 두 손이 참으로 따뜻했다. 『파페포포 리멤버』, 잊지 않고 다시 돌아와 줘서 기뻐. 고맙다.


 『파페포포 리멤버』는 기존 파페포포 시리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50편의 에피소드와 5개의 스페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살짝 서운하긴 했지만,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서운함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리움과 반가움만 남았다. 신기하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내 기억 속에 너희는 그대로인 거니? 하나하나 새록새록 다시 떠오르는 이야기들.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좀 더 자세히 담아보자.


 

 

 

 

"어떤 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에게 시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떤 날은 목이 타도록 사람이 그립다.

인간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건 항상 숙제다.

세상은 내게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한다."

 

 


 

 

 

"조금 쑥스럽더라고,

기회가 왔을 땐

박차고 일어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품을 것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그 시절 우리는 왜 그토록 『파페포포 시리즈』에 열광했을까. 수없이 거절당하며 실패의 고배를 마시더라고 포기라는 단어보다는 희망을 꿈꿨던 우리. 그런 우리에게 파페포포 시리즈는 위안이자 응원이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한 날 혹은 기분 좋은 설렘에 유난히 두근거리던 날, 이불 속에 파고들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읽었던 그 시절 그 느낌 그대로 파페와 포포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나만 늙어버려 속상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변치 않는 것도 있어야 또 살맛 나지 않겠는가? 파페, 포포! 너희는 절대 늙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어 주렴. 오랜 세월을 지나 이렇게 다시 만났 듯이, 이번이 정녕 끝은 아니라고 믿을게. 새로운 이야기도 좋고 추억도 좋으니 편히 잘 쉬다가 기분 좋고 화창한 날 우리 또 만나자. 반가웠어,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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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도요새 이야기 - 기 드 모파상 단편집 새움 세계문학 2
기 드 모파상 지음, 백선희 옮김 / 새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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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멧도요새 이야기

글쓴이: 기 드 모파상

 옮긴이: 백선희

 펴낸 곳: 새움 출판사

 

 단편 소설의 대가, 기 드 모파상.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시절이었다. 모파상의 대표작이라는 『비곗덩어리』도 인상 깊었지만 사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소설은 『목걸이』. 예쁘게 꾸미고 파티에 가고 싶어 목걸이를 빌린 주인공이 그만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새로 사서 돌려주기 위해 남편과 함께 몸이 닳고 닳도록 일해 겨우 새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에 빌렸던 목걸이가 모조품이었다는 사실. 목걸이를 갚으려고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했건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지! 그때의 충격으로 모파상이라는 이름은 내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잊히지 않았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국내 최초 완역본으로 다시 만난 그의 단편 작품집 『멧도요새 이야기』!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이기에 어찌나 기대되던지!

 

 총 1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멧도요새 이야기』. 그 시작은 이렇다. 늙은 남작이 집에 온 여러 손님에게 멧도요새 요리를 대접하며 몸통만 먹게 한 후, 그 새의 대가리를 룰렛처럼 돌려 채택된 한 사람에게 대가리 전부 몰아주고, 진미를 혼자 즐긴 보상으로 재밌는 얘기를 한 편씩 하도록 한다는 내용. 두 장짜리 이 짧은 단편의 제목이 바로 『멧도요새 이야기』고, 나머지 16편의 시작을 알린다. 기차에서 한 아가씨를 추행했다가 신세를 망친 모랭과 그 사건을 해결해주겠다며 나섰다가 피해자인 아름다운 아가씨와 동침한 라바르브의 이야기, 온 가족을 잃고 오랜 세월 미친 채로 지내다가 적군에게 험한 꼴을 당한 미친 여자, 젊은 시절 발레의 세계를 주름잡던 두 노인의 슬픈 미뉴에트, 개를 우물에 던져 넣고 다시 꺼내고 싶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돈 때문에 포기하는 대책 없는 부인, 멍청한 딸을 돈 많은 노인네와 붙어먹게 한 비정한 아버지 등등 모파상이 전하는 단편은 상당히 현실적이며 인간의 추한 본성을 불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건 그저 소설일 뿐이야!'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났을 법한 안타깝고 씁쓸한 이야기들. 물론 연민을 자극하는 따스한 이야기도 있지만, 막장에 가까운 스토리 전개가 충격적이어서 감동보다는 척박하고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마음을 외면하고 싶어진다.

 

 모파상 소설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바로 치밀한 묘사력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주옥같은 문장 중에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따금 큰 술통처럼 배가 불룩한 회식자가

밖으로 나가 근처 나무에다 속을 비우고는

다시 이빨에 새로운 허기를 장착하고 돌아오곤 했다.

아낙들은 코르셋 때문에 몸이 둘로 잘려

상체와 하체가 부풀대로 부풀고

블라우스는 공처럼 팽팽해져서 숨이 막혀

얼굴이 진홍빛이 되어도 정숙을 지키며 식탁에 남아 있었다"

- p75, 노르망디식 장난

 

 130여 년 전에 쓴 소설이라 시대의 괴리감을 피할 수 없지만, 지금 읽어도 상당히 세련되고 문장의 맛이 살아 있는 건 전부 모파상의 글솜씨 덕분이리라!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자살 시도까지 했던 그이지만 글에 대한 열정만은 최선을 다해 지켰던 프로 정신을 보며 절로 경외심을 느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모파상의 다른 단편도 완역본으로 만날 날을 꿈꾸며 그가 민낯으로 담아낸 인간의 본성과 연민을 되새겨 본다. 참, 이 책에는 모파상의 데뷔작인 『비곗덩어리』가 특별 수록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고 또 하나의 명작을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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