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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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은이: 질 볼트 테일러

옮긴이: 장호연

펴낸 곳: 윌북


 표지 색상이 참 곱다. 가만히 손을 올려 쓰다듬어보니 홀로그램처럼 파란색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와 거부감 없이 세련되게 표현된 뇌 모양에 절로 감탄. 파스텔 색조 연분홍와 반짝이는 파란 음각 글자에 마음을 뺏긴 채 찬찬히 눈에 제목을 담아본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제는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세상에, 뇌를 전공한 사람이 뇌졸중을 앓았다? 그래, 의사도 아프고 병에 걸리는데 그럴 수 있지. 뇌과학자라고 뇌졸중에서 완벽하게 안전할 순 없다. 하지만 질 볼트 테일러는 여느 뇌졸중 환자와는 달랐다. 증상을 자각한 순간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8년에 걸쳐 후유증을 극복하기까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여 책으로 내다니! 과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특별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저자의 오빠는 31살에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그 전부터 이상 징후를 보였던 터라 그런 오빠를 보며 저자는 인간의 뇌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버드대 뇌과학자이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위해 창설된 NAMI라는 비영리 단체의 최연소 임원으로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둔 저자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는 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난 저자는 안구 뒤쪽에서 찌를듯한 통증을 느낀다. 운동하면 고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의식은 명료하지만, 몸은 따로 노는 이상한 느낌. 어렵사리 욕실로 이동하여 샤워를 시도했지만, 어느 순간 따끔거리는 통증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그 순간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챈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좌뇌에서 일어난 출혈로 인해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엉망이 된 저자는 가까스로 생각해낸 직장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고(이때 이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지만)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한 후, 병원 명함을 꼭 쥔 채로 구조를 기다린다. 뇌졸중을 깨닫기까지 45분, 무사히 연락하기까지 35분. 민첩한 대처 덕분에 저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치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저자는 자신을 멍청한 사람 취급하며 막 대하고 크게 소리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자신은 멍청한 게 아니라 다친 사람이며 꼭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말로 제대로 표현 못 하고 행동이 굼뜰 뿐이지 머릿속으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느끼고 어느 정도 인지는 다 할 수 있었던 상황. 머리의 3분의 1을 밀고 뇌를 여는 대수술을 마친 후 눈을 뜨자 저자에겐 총명함이 돌아와 있었고 행복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차츰 회복해간 저자는 8년이란 세월을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흔히 발병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거라곤 병명뿐인 뇌졸중. 딱딱한 의학서로 뇌졸중의 증상과 향후 치료 방향을 읽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유익했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과정과 어떤 마음으로 그 병을 극복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 이 책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뇌졸중이라는 병이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며 발생 지점에 따라 언어와 수리 능력 같은 지적 능력을 어떻게 저하하고 인지력에는 어떤 영향일 미치는지 일반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진행 과정을 빠짐없이 담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학술서는 없을 거라는 생각. 병을 완치하고 TED 강연은 물론 타임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산 증인이자 희망의 증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가치 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혹은 내 가족이 뇌졸중이라면? 수많은 생각과 불안이 머리를 스쳤지만, 저자가 용기 있게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며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부디 모두에게 그런 힘든 병이 닥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혹여 병마가 찾아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믿음.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메시지는 누구나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의지와 믿음일 것이다. 눈물 날 만큼 괴롭고 힘겨웠던 투병 생활을 꼼꼼하고 재치있게 전한 저자의 노고에 큰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길 소박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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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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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은이: 질 볼트 테일러

옮긴이: 장호연

펴낸 곳: 윌북


 표지 색상이 참 곱다. 가만히 손을 올려 쓰다듬어보니 홀로그램처럼 파란색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와 거부감 없이 세련되게 표현된 뇌 모양에 절로 감탄. 파스텔 색조 연분홍와 반짝이는 파란 음각 글자에 마음을 뺏긴 채 찬찬히 눈에 제목을 담아본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제는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세상에, 뇌를 전공한 사람이 뇌졸중을 앓았다? 그래, 의사도 아프고 병에 걸리는데 그럴 수 있지. 뇌과학자라고 뇌졸중에서 완벽하게 안전할 순 없다. 하지만 질 볼트 테일러는 여느 뇌졸중 환자와는 달랐다. 증상을 자각한 순간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8년에 걸쳐 후유증을 극복하기까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여 책으로 내다니! 과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특별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저자의 오빠는 31살에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그 전부터 이상 징후를 보였던 터라 그런 오빠를 보며 저자는 인간의 뇌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버드대 뇌과학자이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위해 창설된 NAMI라는 비영리 단체의 최연소 임원으로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둔 저자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는 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난 저자는 안구 뒤쪽에서 찌를듯한 통증을 느낀다. 운동하면 고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의식은 명료하지만, 몸은 따로 노는 이상한 느낌. 어렵사리 욕실로 이동하여 샤워를 시도했지만, 어느 순간 따끔거리는 통증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그 순간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챈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좌뇌에서 일어난 출혈로 인해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엉망이 된 저자는 가까스로 생각해낸 직장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고(이때 이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지만)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한 후, 병원 명함을 꼭 쥔 채로 구조를 기다린다. 뇌졸중을 깨닫기까지 45분, 무사히 연락하기까지 35분. 민첩한 대처 덕분에 저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치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저자는 자신을 멍청한 사람 취급하며 막 대하고 크게 소리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자신은 멍청한 게 아니라 다친 사람이며 꼭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말로 제대로 표현 못 하고 행동이 굼뜰 뿐이지 머릿속으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느끼고 어느 정도 인지는 다 할 수 있었던 상황. 머리의 3분의 1을 밀고 뇌를 여는 대수술을 마친 후 눈을 뜨자 저자에겐 총명함이 돌아와 있었고 행복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차츰 회복해간 저자는 8년이란 세월을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흔히 발병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거라곤 병명뿐인 뇌졸중. 딱딱한 의학서로 뇌졸중의 증상과 향후 치료 방향을 읽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유익했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과정과 어떤 마음으로 그 병을 극복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 이 책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뇌졸중이라는 병이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며 발생 지점에 따라 언어와 수리 능력 같은 지적 능력을 어떻게 저하하고 인지력에는 어떤 영향일 미치는지 일반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진행 과정을 빠짐없이 담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학술서는 없을 거라는 생각. 병을 완치하고 TED 강연은 물론 타임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산 증인이자 희망의 증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가치 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혹은 내 가족이 뇌졸중이라면? 수많은 생각과 불안이 머리를 스쳤지만, 저자가 용기 있게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며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부디 모두에게 그런 힘든 병이 닥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혹여 병마가 찾아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믿음.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메시지는 누구나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의지와 믿음일 것이다. 눈물 날 만큼 괴롭고 힘겨웠던 투병 생활을 꼼꼼하고 재치있게 전한 저자의 노고에 큰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길 소박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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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나는 자기 발견의 심리학
미리암 프리스 지음, 박지희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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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돌아볼 시간

지은이: 미리암 프리스

옮긴이: 박지희

펴낸 곳: 비즈니스북스


 스물에서 서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서 아쉬웠는데, 서른을 넘어서니 시간은 더 빨리 간다. '어? 어어? 어!' 하는 사이에 어느덧 마흔이 멀지 않은 시기가 왔으니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마흔은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물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머릿속을 까맣게 물들인다. 오늘의 내가 가장 예쁘지만, 내일의 나는 더 나은 사람이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중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만난 책,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 일단 제목부터가 나를 위한 맞춤 도서 같았고, 일만 하며 살다가 알게 모르게 놓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은 무엇일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책을 받고 읽기까지 평소보다 시간이 좀 걸렸는데, 개인적인 일로 다소 복잡했던 심경을 다스리느라 회복의 시간이 좀 필요했다. 드디어 만난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이 책의 저자 미리암 프리스 박사는 자신을 찾아오는 30, 40대 내담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괴로워하면서도 정작 진짜 원인을 알지 못하며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문제점을 간파했다. 자신과의 관계가 깨져 있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수 없다는 건데, 그 첫 원인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거절을 경험하며 상처받기 싫은 마음에 생긴 거짓 자아가 진짜 인생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는데... 어린 시절 때때로 짜증 내고 다정하지 않았던 부모님에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지금 우리 꼬마에게 문득 짜증내는 내 모습을 깨달을 때면 상당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후회로 인해 두 번 괴롭다. 내 코가 석 자인 이 상황에서 내 자식한테 거짓 자아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는 걸 보면 역시 엄마란 존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시 요점으로 돌아가서, 저자는 흔들리는 중장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관계의 주체인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 문제의 절반 이상이 풀린다."


"인생은 관계다. 관계는 만남이고 만남은 대화니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예전 같지 않은 부부 사이, 서먹해진 친구 관계, 고통스러운 사회생활 등등의 문제로 고민하는 중장년이 인생의 노선을 변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런 인식이 우선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게 싫다. 내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치료의 열쇠 역시 나에게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인생 노선을 성공적으로 변경하고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거짓 자아에서 벗어나기, 본성과 직접 소통하기"

 

 

 

 

 

 

 

 『서른과 마흔 사이 나를 되돌아볼 시간』은 그간 살면서 미처 보듬어주지 못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화해하고 자존감을 확립하며 건강한 정신을 깃들도록 응원하고 유도하는 책이다.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무심코 '내가 그럼 그렇지', '잘될 리가 있나' 등의 말로 스스로 기를 죽인 적이 없는지? 뜻대로 안 되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지쳐 다 포기하고 싶진 않았는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자신을 알고 아껴주어야 비로소 눈앞의 상대와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반듯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괴로운 우리, 부디 자신을 보듬어주고 살면서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주자. 책에서 제시해주는 다양한 단계별 해결책을 따라 명상도 하고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자신을 마주하며 난 오늘부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생각이다. 부디 찬찬히 나누는 그 대화를 통해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 더 나은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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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어도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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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 날개가 없어도

글쓴이: 나카야마 시치리

옮긴이: 이정민

펴낸 곳: 블루홀6


 요즘 정말 핫한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신작 『날개가 없어도』. 일본 추리 소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도 시치리, 저기서도 시치리. 이 작가를 모를 수가 없다. 작가의 이름에서 이미 상당한 기대를 깔고 시작하기에 이 책 역시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그렇게 난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날개가 없어도』의 주인공은 스무 살인 사라. 사라는 세계 선수권 대회 메달을 거머쥘 목표로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한껏 물이 올라 남다른 기량을 선보이던 터라 오직 핑크빛 미래만 펼쳐질 것 같았는데, 악마의 심술일까?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만다. 옆집에 사는 소꿉친구 다이스케가 졸음운전 하던 트럭에 치여 사라는 왼쪽 다리 일부를 잃게 된다. 육상이 인생의 목표이자 삶 그 자체였던 사라에게 왼쪽 다리를 잃은 사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절망으로 다가오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를 낸 다이스케의 엄마는 보상할 마음이 없다며 큰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지만 사라 가족의 분노와 원통함이 극에 달한 순간, 다이스케가 살해당하고 여러 사건 정황이 사라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과연 다이스케를 죽인 범인은 사라일까? 날개를 잃고 그대로 주저앉았던 사라는 몇천만 원에 달하는 큰돈을 들여 달리기 경주용 의족을 두 차례 제작하고 장애인 올림픽 대표 선수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고, 경찰은 그런 사라의 행보에 주목하며 수사망을 좁혀가는데... 다이스케, 대체 너를 죽인 범인은 누구니?

 

 이 책은 추리 소설 마니아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연쇄 살인마나 미치광이 살인광은 등장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다이스케 한 사람뿐. 사건 현장에 붉은 선혈이 낭자하긴 했지만, 그 또한 여느 책과 달리 그렇게 잔인하거나 섬뜩하지 않다. 소설의 흐름은 다리를 잃고 재기를 꿈꾸는 사라에게 집중되어 어떤 과정으로 의족을 업그레이드하고 어떻게 훈련하여 꺾여버린 날개를 다시 펴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영화 <킹스맨>에서 칼처럼 날카로운 의족을 찼던 가젤도 생각나고 얼마 전에 읽었던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책도 생각나면서 사라의 의족이 어떻게 생겼을지 계속 상상하게 되더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라의 고군분투와 희망이라는 두 글자가 이 책의 던지는 주요 메시지! 살인 사건은 거기에 친 맛있는 양념이랄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이라면 반가울 미코시바 변호사와 이누카이 형사도 등장하여 깊은 풍미를 더해준다.

 

 모든 사건 정황과 진실을 알고 나니 찹찹해지는 마음. 과연 이 사건 관계자 중 누구를 욕할 수 있단 말인가. 밝혀진 진실 앞에서 마음이 아리고,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는 사라의 모습에 가슴이 시큰했던 시간. 날개를 펴고 멋지게 비상할 사라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다이스케를 떠올리며 두 청춘에게 심심한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숨 막히는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매력 있는 이 책 『날개가 없어도』! 시치리의 팬이라면 혹은 시치리라는 작가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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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 페미몬스터즈에서 믿는페미까지― 우리는 어떻게 만나고 싸우고 살아남았는가
김보영.김보화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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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글쓴이: 김보영, 김보화

펴낸 곳: 서해문집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땐 살짝 당황했다. 표지에 떡하니 서 있는 여자 셋. 정말 한 성깔 할 것 같은 '센 언니들'. 솔직히 호감은 아니었다. '페미니즘'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터뷰 책이라는데 페미니즘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그들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선택했다. 대체 그녀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남녀평등과 성 개념의 재정의를 외치는 것일까?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단체 10팀의 인터뷰를 담은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이 책을 손에 쥐며, 페미니즘이란 무엇이고 페미니스트가 바라는 세상은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부디 그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기를...


 지난 2016년에 벌어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당시 피해 여성이 화장실에 가는 장면과 범인이 범행 후 유유히 화장실에서 나오는 장면이 인터넷상에 떠돌았다. 그 CCTV 영상을 보며, 24시간, 365일 여성은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 왜 죽인 거야? 그냥 여자라는 이유로? 그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메갈리아가 기폭제 역할을 하며 전국 곳곳에서 성난 페미니스트들이 들고일어섰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를 위한 자유 발언대를 진행했던 '페미몬스터즈', 강남역 거울 행동을 진행했던 '페미당당', 천하제일 겨털 대회와 나쁜 여자들의 밤길 걷기 등 흥미로운 행사를 주최한 '불꽃페미액션',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쁜페미니스트', 영화판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와 잘못된 성 의식에 맞서고자 고군분투하는 '찍는 페미', 귀여운 굿즈로 큰 호응을 이끌었던 '펭귄프로젝트', 소라넷을 비롯한 불법 영상을 근절하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여성 중심의 정보 집합체를 만든 '페미위키', 게임계 내 여성 혐오를 고발하는 '페이머즈', 교회 성폭력 근절과 피해자 회복을 위해 힘쓰는 '믿는 페미'. 이렇게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여성을 위한 세상을 꿈꾸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온갖 외모 비하와 적나라한 성희롱에 '꿘충'이라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녀들은 스스로 해일이 되어 끊임없이 이 나라를 두드리고 뒤덮고 쓸려나가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기사에서 단편적으로 만났던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이야기는 멋지고 꼭 해야 할 활동이라는 느낌보다는, 성난 여성들의 과민반응 혹은 일부 과격 주의자들의 한탄 정도로 느껴지는 경향이 짙었다. 그들이 왜 이토록 화가 났는지,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이 사회는, 이 나라 남자들은 그리고 같은 여자들조차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 그렇게 그들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럼 대체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는 것인가?


'뒤늦은 알아차림'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뒤늦음이 없었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롭고

서로가 평등한 관계를 맺으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곳이 되었을 텐데.

p118-119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 中에서...>


 '뒤늦은 알아차림'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구절은 페미니스트의 애타는 마음과 더불어 어렵게만 느껴지던 페미니즘이 친숙하게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여자가 어디서...', '여자 주제에...'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고 이런 활동이 별난 개성이 아닌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임을 그리고 더는 불안이 대물림되지 않고 여성이기 이전에 '나'라는 존재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그들은 꿈꾼다. 이유 없는 분노와 헛된 트집이 아닌 페미니스트의 이런 움직임. 우리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해주면 어떨까? 역차별은 원하지 않기에 남녀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다음 세상을 꿈꿔본다. 책을 덮자 아까 만났던 표지의 '센 언니들'이 다시 보인다. 굵다고 생각했던 다리가 이제는 튼튼하게, 별로라고 생각했던 이미지는 듬직하고 멋지게,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외모는 세련되고 개성 있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내 마음에도 어떤 동요가 이는 모양이다. 소신껏 활동하는 그대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기를 이 소심한 여인이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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