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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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은이: 질 볼트 테일러

옮긴이: 장호연

펴낸 곳: 윌북


 표지 색상이 참 곱다. 가만히 손을 올려 쓰다듬어보니 홀로그램처럼 파란색 음각으로 새겨진 글자와 거부감 없이 세련되게 표현된 뇌 모양에 절로 감탄. 파스텔 색조 연분홍와 반짝이는 파란 음각 글자에 마음을 뺏긴 채 찬찬히 눈에 제목을 담아본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제는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세상에, 뇌를 전공한 사람이 뇌졸중을 앓았다? 그래, 의사도 아프고 병에 걸리는데 그럴 수 있지. 뇌과학자라고 뇌졸중에서 완벽하게 안전할 순 없다. 하지만 질 볼트 테일러는 여느 뇌졸중 환자와는 달랐다. 증상을 자각한 순간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8년에 걸쳐 후유증을 극복하기까지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여 책으로 내다니! 과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특별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


 저자의 오빠는 31살에 정신 분열증 판정을 받았다. 그 전부터 이상 징후를 보였던 터라 그런 오빠를 보며 저자는 인간의 뇌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하버드대 뇌과학자이자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의 권익을 위해 창설된 NAMI라는 비영리 단체의 최연소 임원으로서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둔 저자의 인생은 탄탄대로인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는 때와 다름없이 잠에서 깨어난 저자는 안구 뒤쪽에서 찌를듯한 통증을 느낀다. 운동하면 고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러닝머신에 올라 달리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의식은 명료하지만, 몸은 따로 노는 이상한 느낌. 어렵사리 욕실로 이동하여 샤워를 시도했지만, 어느 순간 따끔거리는 통증이 가슴을 지나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그 순간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챈다.


'맙소사, 뇌졸중이야! 내가 뇌졸중에 걸렸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와, 이거 멋진데!'


 좌뇌에서 일어난 출혈로 인해 언어 능력과 계산 능력이 엉망이 된 저자는 가까스로 생각해낸 직장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동료에게 도움을 청하고(이때 이미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지만) 주치의에게 연락을 취한 후, 병원 명함을 꼭 쥔 채로 구조를 기다린다. 뇌졸중을 깨닫기까지 45분, 무사히 연락하기까지 35분. 민첩한 대처 덕분에 저자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치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저자는 자신을 멍청한 사람 취급하며 막 대하고 크게 소리치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자신은 멍청한 게 아니라 다친 사람이며 꼭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존중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말로 제대로 표현 못 하고 행동이 굼뜰 뿐이지 머릿속으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느끼고 어느 정도 인지는 다 할 수 있었던 상황. 머리의 3분의 1을 밀고 뇌를 여는 대수술을 마친 후 눈을 뜨자 저자에겐 총명함이 돌아와 있었고 행복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차츰 회복해간 저자는 8년이란 세월을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갔다.


 주변에서 흔히 발병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거라곤 병명뿐인 뇌졸중. 딱딱한 의학서로 뇌졸중의 증상과 향후 치료 방향을 읽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유익했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어떤 과정과 어떤 마음으로 그 병을 극복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 이 책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뇌졸중이라는 병이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며 발생 지점에 따라 언어와 수리 능력 같은 지적 능력을 어떻게 저하하고 인지력에는 어떤 영향일 미치는지 일반인은 절대 알 수 없는 진행 과정을 빠짐없이 담았기에 이보다 더 훌륭한 학술서는 없을 거라는 생각. 병을 완치하고 TED 강연은 물론 타임스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힐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는 산 증인이자 희망의 증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말 가치 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혹은 내 가족이 뇌졸중이라면? 수많은 생각과 불안이 머리를 스쳤지만, 저자가 용기 있게 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며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부디 모두에게 그런 힘든 병이 닥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혹여 병마가 찾아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겠다는 의지와 믿음.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를 통해 저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메시지는 누구나 병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 그리고 그 의지와 믿음일 것이다. 눈물 날 만큼 괴롭고 힘겨웠던 투병 생활을 꼼꼼하고 재치있게 전한 저자의 노고에 큰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길 소박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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