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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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글쓴이: 곽미경

펴낸 곳: 자연경실


 조선 후기의 여류학자이자, 한·중·일 3국을 통틀어 유일한 여성 실학자인 빙허각 이씨의 삶을 재조명한 책,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그 찬란하면서도 애잔했던 한 여인의 인생이 300여 년이 흐른 지금 슬그머니 찾아와 가슴을 두드린다. 빙허각이라... 이름 한 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뜻을 알고 나니 절대 잊을 수 없었던 그 세 글자...


 빙허각 이씨의 명민함을 알아본 건륭제가 이름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 그녀.

"부모님이 내려 주신 성은 전주 이李가이고 지어 주신 이름은 착할 선善 곧을 정貞, 이선정이옵고..."

- "부모가 준 이름이 이선정이면 네가 지은 이름도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제가 지은 이름은 빙허각이옵니다."

- "오! 빙허각! 빙허각이라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구나. 무슨 뜻이냐?"

"기댈 빙?, 빌 허虛, 집 각閣 빙허각이온데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입니다" (p106-107)


 오직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오롯이 삶을 꾸려가고자 했던 조선의 여인, 빙허각. 세속적인 율법과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비록 여느 남성 실학자만큼 길이 이름을 알리진 못했지만, 『규합총서』, 『청규박물지』를 집필하고 자동 약탕기를 개발하는 등 당시로써는 독보적인 행보를 보였던 그녀의 삶이 곽미경 작가의 손가락 끝에서 새롭게 태어나 눈부시게 때로는 가슴 시리게 독자에게 다가선다. 과연 내가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빙허각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 기회가 있었을까? 운명의 장난 같았던 순간의 인연으로 그녀를 만난 나는 내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품고 응원하고 함께 울었다.


 남자를 뛰어넘고 이기려는 마음이 아닌 서로 존중하며 함께 나아가길 바랐던 그녀의 넓고 깊은 마음 덕분에 여성을 얕잡아 보던 사회에 대한 원망을 조금은 삭혔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가슴에 묻을 때는 까마득한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아픔에 나 역시 가슴이 욱신거렸다. 4남 7녀의 자식 중 8명을 잃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이란...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어 숨을 쉴 수도 침을 삼킬 수도 없이 그저 괴롭고 또 괴로웠던 순간. 조선의 여인이라는 숙명 속에서 그저 한 사람의 뚜렷한 인격체로 살아가며 훌륭한 어미가 되고자 했던 그녀의 삶은 충분히 감동적이고 가슴이 먹먹했다. 화려했지만 어찌 보면 쓸쓸하고 헛헛했던 그녀의 인생사를 다 읽은 후에도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시절 그녀의 삶을 되뇌고 또 되뇌었던 시간. 미세먼지 자욱한 잿빛 하늘을 올려보며 빙허각이라는 세 글자를 나지막이 소리 내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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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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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워터십 다운

지은이: 리처드 애덤스

옮긴이: 햇살과 나무꾼

펴낸 곳: 사계절 출판사


 쫑긋한 귀, 거칠지만 복슬복슬한 털, 앙증맞은 꼬리! 먼 곳 어딘가를 응시하는 토끼들의 사랑스러운 뒷모습에 홀려 집어 든 『워터십 다운』.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제목, 표지 그리고 '넷플릭스 화제의 미니시리즈'라는 문구만 보고 선택한 책이지만 결과는 성공적! 76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벽돌을 손에 들고 잠시 당황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토끼들과 함께 떠난 모험은 즐겁고 유쾌했다. 작가 리처드 애덤스가 두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하고 살을 붙여 완성한 이 장편 소설은 1972년에 출간된 이래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이라고 한다. 2003년 5월에 1쇄를 찍었던 『워터십 다운』의 개정판! 이 책을 왜 이제야 만났는지...


 11명의 토끼가 모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 모험은 '파이버'라는 연약한 토끼가 원래 고향인 샌들포드 마을이 온통 피로 물드는 끔찍한 예언을 체험하고 사촌 형제인 '헤이즐'에게 살아남으려면 떠나야 한다고 애원하며 시작된다. 덩치 크고 힘센 '빅윅', 이야기꾼 '댄더라이언', 영리한 '블랙베리', 믿음직한 '홀리'를 주축으로 길고 긴 여정을 이어가는 토끼들. 작가는 동물 문학의 대가인 시튼의 영향을 받아 동물을 인간화하지 않고 동물 그 자체를 관찰하려 애썼다는데 그 노력의 흔적을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굴을 파고 적을 감지하는 기본적인 행동부터 암토끼와 수토끼의 관계나 서열 정리 등등 그간 미처 몰랐던 토끼의 다양한 습성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끼를 의인화하진 않았다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 토끼 세계는 인간의 세계와 소름 끼칠 만큼 비슷하기도 하다. 목숨을 담보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다 도살되는 무리와 비록 배고프고 힘들지라도 토끼로서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 나아간 '워터십 다운' 원정대의 극명한 차이. 결국 이 소설은 토끼의 생태와 습성에 인간 세상을 더한 또 하나의 작은 세계가 아닐까?

 

 

 

 총 4부로 나뉘어 이어지는 토끼들의 대장정에 독자가 혹여 길을 잃을까 걱정한 출판사의 배려 덕분에 책에 동봉된 지도를 따라 토끼들을 부지런히 쫓을 수 있어 더욱더 흥미진진한 『워터십 다운』. 영락없는 토끼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이들의 여정에는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과 수천 수만 가지의 감정이 담겨 있어 우리의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다. 산 넘어 산이라고 불만을 터트리며 포기할 법도 하건만 그때마다 빛을 발하는 헤이즐의 리더십과 빅윅의 묵직한 활약 그리고 댄더라이언의 토끼 전설 속 영웅, 엘-어라이라의 이야기 덕분에 마지막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듯. 내용은 재미있는데 진도가 더디 나가 며칠을 고생하면서도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토끼 녀석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 토끼들아, 부디 더는 고생 말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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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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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글: 이창현

그림: 유희

펴낸 곳: 사계절 출판사

 

  진짜 독서광들이 나타났다! 이상한 멤버들이 모인 수상한 독서 모임. 가입 조건이 뭔지 명확히 알 순 없지만, 호기롭게 '자기개발서에 빠져 살고 있다!'라고 외친 청년은 쫓겨나고 삶에 찌든 고독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모임에 합류하게 된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모였을까?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는 멤버들. 디저트 식당을 운영하는 '슈', 불혹의 스나이퍼인 '고슬링', 사회 부적응자인 듯한 '사자', 모임을 이끄는 안경 쓴 '선생', 전설 속의 거인 '예티'와 경찰보다 뒤늦게 들어온 작가 지망생 '로렌스'까지 도무지 정상인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경찰'. 범죄 조직의 간부로 잠복근무하고 있는 경찰은 답답한 마음을 이 모임에서 털어놓는데 다들 시큰둥한 반응! 대체 이 조합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초반부터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B급 감성이 짙게 깔린 만화지만 내용까지 B급은 아니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라는 제목답게 책날개 내용으로 책을 고르는 법, 책 제목과 목차는 원서와 대조해 보면 좋다는 팁, 서문에 장별로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 압축적으로 제시한 책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읽으라는 조언, 아는 내용이면 주석 무시하기, 독서 중독자들은 완독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사책을 읽기로 했다면 기본적인 통사와 지도책을 읽어두면 좋다는 점과 같은 주옥같은 팁과 책 속 여러 구절이 등장하여 배경지식을 한 단계 높여준다. 이런 고급 지식을 전달하며 중간중간 펼쳐지는 로렌스의 황당한 소설 두 편. 그리고 범죄 조직에서 정체가 들통나 위기에 처한 '경찰'을 구하기 위해 합동 작전을 펼치는 독서 모임 멤버들의 활약을 보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듯하다가도 묘하게 유쾌, 상쾌, 통쾌한 그 매력에 빠져 B급 개그 감성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마성의 책. 맙소사, 뭐 이런 책이 다 있담!

 

 

 

 

 

 

 

 책은 읽고 싶은데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분, 종이에 가득한 활자에 지친 분, 뭔가 색다른 책으로 기분전환 하고 싶은 분, 어려운 책을 읽고 멘탈이 붕괴된 분, 오늘은 B급 감성이 당기는 분, 그냥 재밌는 만화를 읽고 싶은 분...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을 선택하시길!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괴짜 책벌레들의 대향연.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팔던 이 약만 먹으면 없던 병도 낫는다는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이의 가슴에 없던 답답함까지 확 풀어줄 이 책,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합니다! 정말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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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상 수집 에세이
하람 지음 / 지콜론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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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글 & 그림 : 하람

펴낸 곳: 지콜론북


 막연히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 한 이웃님은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그 짧은 글이 모여 한 권의 에세이 책이 될 수 있다고. 정말 맞는 말이라며 공감하면서도 쉽사리 실천하기 힘들어 늘 지지부진했던 일상의 기록. 글을 쓰고 싶은 마음과 실천하지 않는 현실의 괴리감이 가슴 속에 체기처럼 남아있던 어느 날, 이 책을 만났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시각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하람 씨의 일상이 담긴 에세이. 한 번에 써 내려간 글이 아닌 순간의 호흡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짧은 글. 그중 일부를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작품. 거의 모든 에세이가 이렇게 완성되겠지만 이 책에 담긴 글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단상과 특유의 진지함이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보다 어린 작가의 따스한 일상을 훔쳐보는 기분. 우리는 어쩐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예쁜 잔에 커피믹스를 마시는 게 주부의 낙이자 유행이었던 그 시절, 엄마의 커피 타임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추억. '어른이 되면 마실 수 있어'라는 엄마의 나직한 속삭임에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 90년대 로맨틱 코미디를 눈물 날만큼 좋아하고 심야 라디오를 벗 삼아 밤늦도록 책을 붙잡고 있던 기억까지. 작가와 나 사이의 나이 차가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비슷한 순간을 때론 같은 길을 걸었더랬다. 물건을 정말 버리기 싫어하는 맥시멀리스트인 난 '버리는 연습은 곧 소중한 것을 남기는 연습'이라는 데 크게 공감하며 뜨끔했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이야기에 이 어렵다는 책을 읽어봐야 할까 고심했다. 초등학교 시절 우표를 수집하고 여행 가면 여지없이 기념품을 사 오던 성격까지 비슷한 작가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오랜 친구 혹은 나의 분신처럼 친근하고 따스한 느낌에 어찌나 포근하던지!


 여행 중에 적은 메모가 한 편의 글이 되고 소중한 순간을 담아 써낸 짧은 글이 여럿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으니 이 책은 작가의 아름답고 눈부시고 때론 부끄러웠던 기억을 조각 케이크처럼 떼어내 독자에게 내어준다. 이 순간을 함께 추억하고 같이 오늘 또 하루를 살아보자는 듯이... 꿈이라고 소리 낼 때 맞닿는 입술 모양과 그 발음이 좋다는 작가. 어쩐지 우리는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아 친구로 지내면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봤던 시간...



 

"완벽히 게으른 하루를 보내 본 사람은 안다.

 온전한 쉼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보다 더 근사하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中에서..."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며 평범하지만, 보석 같은 일상을 수집한 작가의 소중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 상냥한 목소리로 묻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나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기억을 꺼내 본다. 책, 초콜릿, 문구, 식물, 운동화, 맥주, 그림, 음악, 푸른 하늘, 맑은 공기, 속이 뻥 뚫리는 산 정상, 좋아하는 사람과 걷기, 우리 꼬마랑 신랑, 소중한 지인들... 생각해보니 나도 좋아하는 게 참 많구나! 문득 떠오른 궁금증.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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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뇌과학자의 뇌가 멈춘 날, 개정판
질 볼트 테일러 지음, 장호연 옮김 / 윌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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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을 겪은 뇌과학자의 생생한 기록! 상당히 흥미롭고 가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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