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 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톨스토이의 말
이희인 지음 / 홍익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지은이: 이희인

펴낸 곳: 홍익출판사

 

 오늘은 유난히 힘들었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이가 실수로 날린 박치기 한 방에 턱을 맞고 종일 참았던 눈물을 펑펑 흘려버렸다.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기분. 이 힘든 나날을 누군가에게 이해해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누군가 악의 없이 무심히 툭 던지는 말에도 속상하고 괴로운 요즘 나는 많이 약해져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렇게 힘들 날 톨스토이를 만났다. 대학 시절 러시아 문학 수업에서 분명 만난 적이 있을 텐데, 러시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이름만 머리에 새긴 채 찾아 읽을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오늘, 유난히 힘들고 괴로운 날 톨스토이를 만나 큰 위로를 받았다. 스스로 채울 수 없던 그 지독하고 괴로웠던 혼자만의 고독을 마치 그가 다 알아주기라도 한 듯 한 번 풀린 마음의 빗장은 닫힐 줄을 모르고 펑펑 모든 걸 쏟아냈다. 『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를 그 많은 날 중에 하필 오늘 읽게 된 건 어쩌면 오늘 무너질 나를 알고 있던 또 다른 내가 내민 손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 <바보 이반>,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하느님은 진실을 보지만 바로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체르 소나타>, <부활>, <인생이란 무엇인가> 등의 톨스토이 작품을 분석하며 그 안에 담긴 간단명료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톨스토이의 인생 철학에 작가의 감상을 더한 멋진 글을 선보인다. 톨스토이의 진정성은 가슴에 새기되 그의 생각과 사상에 대해선 비판적 독해가 필요하다고 당부하는 작가는 부의 밀집을 비판하고 농노 편에 섰던 그의 따스함을 칭찬하고 남녀평등에 대해선 고지식할 정도로 남성 편이었던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은 꼬집어 지적하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톨스토이라는 인물을 속속들이 파헤친다. 하지만 작가도 독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우리는 톨스토이의 팬이기에 결국 그의 편에 서고 만다.


 토지는 매매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무정부주의자이자 깨이지 않은 농부 계층을 일깨워주고자 쉬운 동화를 썼던 대문호 톨스토이. 모스크바에서 툴라로, 거기서 또 야스나야 폴라나 영지로 2번의 실패 끝에 겨우 톨스토이의 묘지를 방문했다는 작가의 힘든 여정을 통해 톨스토이는 눈을 감았지만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 여전히 뜨거운 불로 타오르고 있음을 실감했다. 저작권조차 포기하며 몸을 낮췄던 그는 무덤마저 작고 단출하다는데, 이제라도 톨스토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탐구할 기회를 얻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토록 톨스토이의 작품이 읽고 싶었던 적이 있던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알처럼 덧없이 낭비한 인생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진한 후회가 밀려왔던 시간. 더 늦기 전에 톨스토이의 작품을 차근차근 다시 읽어봐야겠다. 오늘의 심심한 위로와 내일을 살아갈 기운을 얻은 건 『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라는 책 덕분이다. 눈물 나게 힘든 날에 나를 찾아와 하염없이 약해진 못난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이 책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자,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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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사탕 내리는 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 별사탕 내리는 밤

지은이: 에쿠니 가오리

옮긴이: 신유희

펴낸 곳: 소담출판사


"별사탕을 묻으면 그게 일본 밤하늘에 흩어져서 별이 된다고 상상했어.

여기서 보는 별은 이를테면 일본에 사는 누군가가, 어쩌면 우리 같은 아이가

일본 땅에 묻은 별사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p236"


 멀고 먼 남미, 아르헨티나에 부모님을 따라 정착한 사와코와 미카엘라 자매는 신비로운 동양인이자 낯선 이방인이다. 어린 시절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상태로 학교에 다니며 고생하던 자매에게 서로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분신이었다. 가장 든든한 반쪽이었던 자매는 급기야 사랑, 아니 정확히는 남자마저 공유하기로 하는데... 언니인 사와코에게 고백한 남자를 동생인 미카엘라가 꼬시거나 혹은 반대로 유혹하며 남자란 지조 없는 바람둥이란 걸 증명하고는 비웃곤 한다. 낄낄거리며 가차 없이 응징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자매.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데, 10대 시절에 어쩌면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벌어질 것 같은 비툴어진 일탈이었다고나 할까? 한데, 영원할 것 같던 이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다. "확인하지 마, 닷 짱은 건들지 마. - p380" 어떤 남자든 함께 공유하며 성관계까지 번갈아 맺던 그 터무니 없는 동맹이 사와코의 한 마디로 쩍하고 금이 가버린 것. 결국 닷 짱(다쓰야)은 언니와 결혼하여 미카엘라의 형부가 되고 방황하던 미카엘라는 방탕한 생활 끝에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아 홀로 기른다. 이 자매 이야기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지고 이해가 안 되건만, 이 소설엔 죄다 범상치 않은 인물만 등장한다. 사와코와 결혼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다쓰야. 할아버지뻘 남자인 파쿤도와 바람을 피우는 미카엘라의 딸, 아젤렌. 심지어 파쿤도는 미카엘라의 상사다. 설상가상으로 사와코에게도 내연남이 있으며 미카엘라는 형부인 다쓰야를 흠모하는데... 어찌 이런 막장이! 말세로구나!


 도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다간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아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저 관찰자로서 철저하게 지켜보기로. 내용은 분명 막장 드라마인데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다가 이내 동화되어 당황스러웠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조근조근 풀어놓는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 문체에 흠뻑 취해 어떤 잣대로 들이대지 않고 그저 사와코와 미카엘라의 삶에 그림자처럼 함께했던 시간. 분명 정상이 아닌 그녀들이지만 알면 알수록 밉거나 싫지는 않았다. 이 또한 작가가 계산한 부분이라면 이 작품 뭔가 상당히 특이하고 견고하다. 과연 작가가 정말 전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 거리낌 없이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에 '어? 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다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리게 되는 소설. 이 느낌을 어찌 표현해야 할꼬!


 세상엔 상상 못 할 다양한 사랑이 있다지만 『별사탕 내리는 밤』에서 만난 사랑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더럽거나 엽기적인 행위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혀를 쯧쯧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될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사와코, 미카엘라, 다쓰야, 아젤렌, 다부치란 청춘을 만나 그저 들어주는 입장으로 한참을 귀 기울였다. 주인공은 사와코와 미카엘라지만 각 인물의 시점으로 돌아가며 진행되기에 독자는 그 청춘들에 빙의하여 오롯이 그 인물로 분하게 된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이렇다 할 급반전 없이 끝을 향해 달린 이 특별한 여정은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자리 잡았다. 문득 바라본 밤하늘에서,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사탕을 떠올렸던 순진한 어린 자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아쉬움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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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프리퀄
마리사 마이어 지음, 김지선 옮김 / 에이치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 하트리스

지은이: 마리사 마이어

옮긴이: 김지선

펴낸 곳: 에이치

 

'달콤한 레몬 타르트 세 개가 캐서린을 향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타르트가 담긴 트레이를 집어 든다. 흠 하나 없이 반짝이는 타르트 위로 돌돌 말린 레몬 껍질을 장미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한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소녀는 아침을 몽땅 바쳐 만든 타르트를 흡족하게 바라본다. 그야말로 완벽한 레몬 타르트를 보며 슬며시 피어오르는 미소. 하트 왕국 최고의 제빵사를 꿈꾸는 소녀, 캐서린이 빵을 대하는 태도에는 흡사 어린아이를 어르고 귀한 신줏단지 모시듯 온갖 정성과 애정이 담겨 있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이 여린 소녀 캐서린이 그 곱디고운 손끝으로 '저자의 목을 쳐라!'라고 명령하는 무시무시한 여왕이 될지 말이다. 그렇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하트 여왕. 그녀가 바로 캐서린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꿈 많고 상냥한 이 소녀는 심장 없는 냉혈한이 되었을까?

 

 『하트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하트 여왕이 왜 그토록 잔인한 여인이 되었는지에 주목하며 시작된 프리퀄 소설이다. 보통 원작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속편을 프리퀄이라 하지만 속편보다는 외전이라 이해하는 게 오해의 소지가 없을 듯하다. 어리다고 하기엔 제법 나이가 있는 1984년생 작가가 펼치는 소녀 같은 이야기. 하트 여왕, 아니 캐서린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함께 떠나보자.

 

 

 

 하녀 메리 앤과 함께 베이커리를 여는 게 꿈인 열일곱 소녀 캐서린. 하지만 귀족 아가씨가 고작 베이커리를 열겠다니, 그런 꿈을 지지해줄 부모는 없다. 어떻게 꿈을 이룰지 고심하던 어느 날, 캐서린의 방에 갑자기 레몬 나무가 자랐고 캐서린은 그 레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타르트를 만들어 왕에게 선물한다. 그런데 이 왕이 참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5cm 높이의 깔창을 깔고도 캐서린보다 두 뼘이나 더 작고 둥그런 몸통에 위엄이라곤 전혀 없는 왕. 그런데 그런 왕이 프러포즈라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왕의 짝이 되기 싫을뿐더러 왕비가 되면 베이커리도 열 수 없단 생각에 절망한 캐서린은 그만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간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던 캐서린은 결국 정신을 잃고 눈을 떴을 땐 궁정 조커 제스트가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근처 정원에 켜놓은 횃불에 반사돼 눈동자가 금빛으로 일렁였다.

눈가에는 여전히 검은 콜이 두텁게 발라져 있었다.

조커가 캐스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얼굴의 구석구석까지 가닿는 친근한 웃음이었다.

뺨에 보조개가 파이고 눈가에 주름이 갔다.

캐서린은 심장이 떨렸다.

조커가 무도회장에서 공연할 때, 캐서린은 그의 마술에 푹 빠져 즐거워했다.

하지만 조커가 무척 잘생겼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p74'


 

 이런 이런, 위험하다. 조커의 꿀 떨어지는 금빛 눈동자에 캐서린도 나도 그만 풍덩 빠져버리다니. 나라도 사랑했을 그 조커를 캐서린도 결국 거부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버린다. 어쩌면 이 순간이 비극의 시작이었을까? 갖은 고생과 모험에 휘말리다가 조커가 지닌 비밀을 알게 되는 캐서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과연 어디까지 내어줄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던 이야기.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책의 주인공은 캐서린이지만 조커도 조연이라고 보기엔 역할이 상당하다.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 이 책 속엔 하트 여왕이 왜 심장을 잃게 됐는지는 물론이고 우리가 원작에서 궁금했던 거의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이 실려 있다. 괴상한 모자 장수가 미친 이유, 큰 까마귀는 왜 책상과 닮았을까, 바다거북이 기괴한 모양새가 된 원인, 카드 정원사들이 흰 장미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사연까지 원작에서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비밀스러운 의문의 해답이 비 오듯 쏟아지니 앨리스를 읽어본 독자라면 『하트리스』를 꼭 읽어보시길! 600페이지가 좀 넘는 두툼한 벽돌책이지만 가공할 흡입력으로 여러분을 즐겁게 해줄 겁니다! 『하트리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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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소피 드 빌누아지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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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글쓴이: 소피 드 빌누아지

옮긴이: 이원희

펴낸 곳: 소담출판사


 제목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에 절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눈에 들어온 예쁜 표지에 사르르 마음이 녹는다. 빨간 리본을 매단 영롱한 오너먼트에 금박으로 새긴 글씨. 이건 디자인의 승리다! 표지만으로도 호감 가고 끌리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 3개월 넘게 지난 크리스마스의 두근거리는 감성을 살포시 꺼내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올해 영화로도 개봉할 작품이라니 책도 영화도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이 자살 여정의 관람객이 되길 자처했다. '부디 죽지 마, 죽으면 안 돼'라고 수없이 속삭이면서.


 주인공 실비 샤베르는 막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엄마는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더니 아빠는 오랜 투병 생활로 괴로워하다가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이제 그녀는 고아다. 45살에 가족 하나 없는 고아. '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이를테면 자식을 갖기에도, 한 남자를 갖기에도 기한이 지났으니까. - p7'. 시니컬하게 내뱉는 그녀의 대사엔 진한 고독과 지독한 슬픔이 깔려 있다. 아빠 묘지를 계약하며 실비는 자신의 묘지도 마련한다. 곧 죽을 거니까 내 자리는 직접 해놓자는 심산으로. 친구 베로니크의 권유로 심리치료사를 찾았지만 자살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변치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자살하겠다는 실비에게 매력적인 심리치료사 프랑크는 이렇게 말한다.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두 달하고 조금 더 남았군요.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만나러 오세요. 그리고 12월 25일. 그날이 진짜 마음에 들면 오후 2시 30분에서 4시 30분 사이에 자살하세요. 어떻습니까, 실비? - p23'. 그렇게 이 기묘한 자살 여정은 시작된다. 부끄러워서 절대 못할 일, 비난 받아 마땅한 일,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일,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드는지 답을 찾는 일. 프랑크는 일주일에 하나씩 숙제를 내고 실비는 곧 죽을 건데 뭘 못하겠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숙제를 실행한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실비는 눈앞에서 누군가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이는데... 우리의 그녀, 실비는 과연 무사히(?)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작품이 떠올랐다. 책 보다는 영화가 더 생각나는 걸 보니 이 작품은 정말 영화를 위해 태어난 소설이 아닐까 싶더라는. 45년이나 자신을 휘감고 있던 딱딱한 껍질을 깨고 성장하는 실비의 모습에서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가 보이고, 죽음을 앞두고 원하는 혹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에서 <라스트 홀리데이>의 조지아가 떠올랐다. 어찌 보면 뻔한 전개겠지만 다 알면서도 뻔하지 않고 예상하면서도 즐겁고 재미있게 읽게 되는 힘을 지닌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조금만 읽어보자고 책을 폈다가 스르르 잠들어 아침에 다시 집어 들었던 책. 일요일 아침, 10년 넘은 내 사랑, <서프라이즈>도 포기한 채 주인공 실비의 뒤를 졸졸 쫓으며 따라다닌 여정은 불안감에서 어느새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롤러코스터처럼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마음 졸이게 했던 실비. 그녀는 이제 우울함에 휩싸여 죽을 생각을 하는 노처녀가 아닌 당당하게 인생의 소중한 행복을 찾는 멋진 아가씨로 새롭게 출발한다. 실비,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줘서 고마워요! 언제까지고 당신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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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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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책이나 읽을걸

지은이: 유즈키 아사코

옮긴이: 박제이

펴낸 곳: 21세기 북스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한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 고전을 소개했던 에세이를 엮은 책, 『책이나 읽을걸』. 머리맡에 둔 안경과 편하게 누운 자세, 땅거미 진 밤에 조용히 펴든 책이 내가 책 읽는 상황과 너무 비슷하여 잠시 넋을 읽고 바라보았다. 그림 속 주인공과 다른 점이라면 내가 좀 더 통통하고 반팔티를 입는다는 정도, 하하. 작가 소개글을 보니 일본에서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르고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도 있는 인기 작가인 듯한데 안타깝게도 이 작가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고전 읽기에 한창 재미를 붙인 터라 고전 속 여주인공을 다룬 에세이라기에 눈이 번쩍! 보석 같은 고전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읽어간 이 책은 학창시절 짝꿍 정하기로 뽑았던 제비뽑기처럼 설레고 두근거렸다.

 

 

 

 

 

"고전을 읽노라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이토록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 주인공들.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

- p64, 책이나 읽을걸 中에서..."


 수도원 출신 귀족 따님이 자주 등장해서 프랑스 고전 문학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때론 수다스러운 사춘기 소녀처럼 때론 인생 전반전에 지긋이 자리 잡은 예비 중년처럼 조근조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프랑스 문학, 일본 문학, 영국 문학, 미국 문학 순으로 나뉘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글에서 31살이었던 작가가 어느덧 35살이 되고 지금의 나이가 되기까지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함께 성숙해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친한 친구 같고, 철든 어른이 되고자 오늘도 노력하는 책벌레 동지로서 기묘한 동질감과 일종의 전우애까지 뿜어내며 푹 빠져서 읽었던 책. 『책이나 읽을 걸』, 이 책 참 좋다.


 책의 시작을 연 프랑스 문학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당황스러울 정도. '프랑스 문학이 이렇게 재밌단 말이야?' 듣는 사람 없이 허공에 혼잣말을 내뱉으며 읽고 싶은 작품을 하나하나 적다가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펜을 내려놓았다. 노트에 메모하고 인터넷 서점에 그 책이 있는지 찾아보며 계속 읽다가 관심 안 생기는 작품이 없어 결국 다 읽어보자고 마음먹고는 편하게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호수에 풍덩 빠진 듯이 하염없이 빠져들고 또 빠져들었던 시간. <오만과 편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개츠비> 등 잘 아는 작품이 나올 땐 반가웠고 <골짜기의 백합>, <클레브 공작부인>, <소녀 파데트> 등 주옥같은 명작을 알게 된 순간엔 어찌나 기쁘던지. 히가시노 게이고나 나카야마 시치리 등 일본 추리소설 거장들만 알던 내게 작가가 전하는 일본 고전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엔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이 많고 읽을 책이 넘쳐나 행복한 나는 진정한 책벌레! 자신만의 고전 이야기라는 잘 마른 향긋한 솔잎을 켜켜이 쌓아 선뜻 내어준 작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며 이젠 색색깔 알사탕을 골라 먹는 기분으로 한 권, 한 권 맛있게 읽어봐야지. 끊없는 독서 생활 중 겪게되는 책태기에 직효일 것 같은 『책이나 읽을걸』, 이 세상 모든 책벌레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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