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제목: 책이나 읽을걸

지은이: 유즈키 아사코

옮긴이: 박제이

펴낸 곳: 21세기 북스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한 작가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계 고전을 소개했던 에세이를 엮은 책, 『책이나 읽을걸』. 머리맡에 둔 안경과 편하게 누운 자세, 땅거미 진 밤에 조용히 펴든 책이 내가 책 읽는 상황과 너무 비슷하여 잠시 넋을 읽고 바라보았다. 그림 속 주인공과 다른 점이라면 내가 좀 더 통통하고 반팔티를 입는다는 정도, 하하. 작가 소개글을 보니 일본에서 나오키상 후보에도 오르고 드라마로 제작된 작품도 있는 인기 작가인 듯한데 안타깝게도 이 작가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고전 읽기에 한창 재미를 붙인 터라 고전 속 여주인공을 다룬 에세이라기에 눈이 번쩍! 보석 같은 고전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읽어간 이 책은 학창시절 짝꿍 정하기로 뽑았던 제비뽑기처럼 설레고 두근거렸다.

 

 

 

 

 

"고전을 읽노라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에

이토록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 주인공들.

그것만으로도 구원을 받고 용기를 얻는다.

- p64, 책이나 읽을걸 中에서..."


 수도원 출신 귀족 따님이 자주 등장해서 프랑스 고전 문학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때론 수다스러운 사춘기 소녀처럼 때론 인생 전반전에 지긋이 자리 잡은 예비 중년처럼 조근조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그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프랑스 문학, 일본 문학, 영국 문학, 미국 문학 순으로 나뉘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글에서 31살이었던 작가가 어느덧 35살이 되고 지금의 나이가 되기까지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함께 성숙해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친한 친구 같고, 철든 어른이 되고자 오늘도 노력하는 책벌레 동지로서 기묘한 동질감과 일종의 전우애까지 뿜어내며 푹 빠져서 읽었던 책. 『책이나 읽을 걸』, 이 책 참 좋다.


 책의 시작을 연 프랑스 문학 이야기가 너무 재밌어서 당황스러울 정도. '프랑스 문학이 이렇게 재밌단 말이야?' 듣는 사람 없이 허공에 혼잣말을 내뱉으며 읽고 싶은 작품을 하나하나 적다가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 펜을 내려놓았다. 노트에 메모하고 인터넷 서점에 그 책이 있는지 찾아보며 계속 읽다가 관심 안 생기는 작품이 없어 결국 다 읽어보자고 마음먹고는 편하게 작가의 이야기에 집중.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호수에 풍덩 빠진 듯이 하염없이 빠져들고 또 빠져들었던 시간. <오만과 편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위대한 개츠비> 등 잘 아는 작품이 나올 땐 반가웠고 <골짜기의 백합>, <클레브 공작부인>, <소녀 파데트> 등 주옥같은 명작을 알게 된 순간엔 어찌나 기쁘던지. 히가시노 게이고나 나카야마 시치리 등 일본 추리소설 거장들만 알던 내게 작가가 전하는 일본 고전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엔 이토록 흥미로운 작품이 많고 읽을 책이 넘쳐나 행복한 나는 진정한 책벌레! 자신만의 고전 이야기라는 잘 마른 향긋한 솔잎을 켜켜이 쌓아 선뜻 내어준 작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며 이젠 색색깔 알사탕을 골라 먹는 기분으로 한 권, 한 권 맛있게 읽어봐야지. 끊없는 독서 생활 중 겪게되는 책태기에 직효일 것 같은 『책이나 읽을걸』, 이 세상 모든 책벌레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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