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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평점 :
제목: 푸른 세계
글쓴이: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옮긴이:
변선희
펴낸
곳: 연금술사
소설의 주인공 '나'는 11살에
양아버지를 잃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빠서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내 귀에 그렇게 속삭여 주던 아버지는
어느 날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파도에 휩쓸리며 미소지은
채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7년 후, 곧 열여덟 살이 될
나는
의사로부터 마지막 통보를 받게
된다.
그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살날이 앞으로 이틀 혹은 사흘
정도 남았다고.
마지막 남은 소중한 며칠을 병원에서
보내기 싫었던 나는
가난하고 외롭게 홀로 죽어갈 사람들만
받아준다는
'그랜드호텔'로 가기로
한다.
이 소설은 살날이 앞으로 사흘 남은
열여덟 '나'의 이야기다.
의사에게 사형 선고를 받는 주인공의
모습에 지난날 내가 겪은 슬픈 기억이 겹치며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의사의 그 무심한 태도. 물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환자의 상태를
고지하도록 연습하여 완성된 냉정함이겠지만, 환자로서는 그런 의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따스함이라곤 하나 없는 병원을 박차고 나온 주인공은 환자복을
찢고 새로운 삶을 꿈꾼다. 비록 며칠 안 되는 삶일지라도 말이다. 이미 죽은 사람과 곧 죽을 사람만 모인 신비로운 그랜드호텔에서 주인공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담담하게 다가선다.
살면서 이미 몇 번의 상실과 지독한
슬픔을 겪었지만, 그 슬픈 고통은 내가 눈 감기 전엔 끝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죽음'이란 늘 두렵고 버거운 존재다. 하지만 작가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열네 살에 암 선고를 받고 그 후 10년간 치료를 지속하며 한쪽 다리를 잃고 간과 폐의 일부를 잃었다는 작가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암을 이겨 내지 못하고 떠난 친구들의 삶까지 살고 있다고 말하며 최선을 다해 하루를 꾸려간다.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서일까? 의연하고 담담하여 어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작가와 주인공의 태도는 실로 놀랍고 낯설었다. 죽음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다니...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모든 것에 맞설 수 있다 -
p165"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것을 사랑하라. - p175"
피곤하고 노곤했던 오후, 졸린 잠과
싸워가며 기운 빠졌던 터라 이 책에 담긴 깊은 뜻과 감동을 오롯이 못 느낀 것 같아 상당히 아쉽다. 햇살 따사로운 날, 푸른 자연이 보이는
곳에서 쓴 커피 한 잔과 함께 이 책을 꼭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좀 더 활기차고 빠릿빠릿하게 하루를 상대하며 맞이한 <푸른 세계>는
지금과는 단연 다른 느낌일 테니, 두 번째 만남을 기대하며 조용히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