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지은이: 박건우
펴낸 곳:
소담출판사
<글로벌 거지 부부>란 책으로 유명한 박건우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이번엔 한국의 추운 겨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박 작가 부부가 사는 한국의 냉골 집을 피해 대만으로 도보 여행을 떠난 이야기라고
한다. 출국을 하루 앞둔 날, 땔감이 떨어져 밥상을 톱질하여 불을 지폈다는 이야기에 몇십 년 전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불과 몇 년 전 이야기이니
오해 마시길! 쓱싹쓱싹 밥상 다리를 잘라 땔감으로 쓰며 필요한 짐만 챙겨 대만 여행길에 오른 부부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 펼쳐질 고생길이 훤해서
나까지 긴장하게 되었다. 무사히 돌아온 걸 알면서도 부디 무사히 완주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작한 이 책. 그런데 작가가 너무 솔직한 거 아님?
온갖 투정과 고백이 뒤섞인 솔직함에 당황하고, 실은 낯을 가린다지만 의외로 유쾌한 이 부부에게 호감을 느끼며 어느새 팬이 되어
버렸다.
68일의 도보 여행 동안 1,113.58km를 걷고 총 20번의
학교 야영, 9번의 종교 시설 숙박, 8번의 민가 초대, 7번의 카우치 서핑, 1번의 민가 침입으로 잘 곳을 해결했으며, 무려 51번이나
구호물자를 받았던 부부의 위대한 여정은 편안하게 누워 이 책을 보고 있던 내가 미안해질 정도로 고생스러웠으며 한편으론 따스했다. 직접 가보지
못한 대만이라는 나라는 꽃보다 할배 덕분에 망고 빙수와 맛난 먹거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지우펀 정도만 알았는데
부부를 따라 도보로 횡단하며 관광지가 아닌 사람 냄새 풍기는 대만을 만난 것 같다. 대체 이런 용기는 어떻게 낼 수 있는 걸까? 동네 뒷산을
가도 히말라야 등반팀처럼 챙겨 입는 요즘 세상에 주운 등산화, 신고 있던 가죽 신발을 신고 떠난 부부의 무모함에 혀를 쯧쯧 차다가도 이런
그들이기에 가능한 여행이었으리라 존경하게 된다.
빨래 한번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야영은 안 된다는 단호한 거절에
짜증이 밀려왔을 법도 한데 부부는 여행을 끝낼 정도로 크게 싸우는 일 없이 무사히 여정을 완주한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야위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정해진 도착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에 수줍은 응원을 보내며 몇 시간 동안 부부와 함께한 순간은 참 뜻깊고 행복했다.
내가 하지 못할 일이기에 부부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나도 짧은 도보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희망을 품었던 시간. 인정이라는
따스함을 전하고 새로운 대만과 특별한 인생을 소개해준 박건우, 미키 부부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들의 다음 여행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