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동물
황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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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야행성 동물

글쓴이: 황희

펴낸 곳: 몽실북스

 

 

 

 놈들이 쫓아온다. 소름 끼치는 괴성, 고약한 악취, 피를 갈구하며 번뜩이는 눈,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괴력까지. 저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저 피 냄새에 흥분한 좀비일 뿐. 녀석들을 제거하는 방법은 딱 하나, 머리를 쏘는 것! 당신에겐 총알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이지만, 실수해서는 안 된다. 놈을 죽여야 당신이 산다. 깊은 심호흡과 함께 총을 겨눈 당신은 살점이 흘러내린 채 분노로 가득한 좀비와 눈이 마주친다. 어딘가 낯이 익은 존재.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그 괴물이 우리의 가족, 친구 혹은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과연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월요일이 없는 소년》, 《부유하는 혼》, 《내일이 없는 소녀》, 《기린의 타자기》 등등, 특이한 소재와 열정 가득한 필력으로 다수의 팬을 보유한 황희 작가님이 이번엔 몽실북스와 손잡고 새로운 소설을 출간했다. 좀비를 소재로 한 사회파 SF 미스터리 『야행성 동물』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좀비를 선보이며 그들을 제거의 대상이 아닌, 구해야 할 대상으로 피력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내디딘다.

 

 

 

 과거 마약 중독자였던 한나는 약에서 벗어난 후, 엘파소 국경수비대원으로 일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차량에서 상당한 양의 마약을 찾아낸 어느 날, 한 미친 운전자가 날뛰며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한나가 머무는 도시에 마약성 좀비화가 창궐하자, 한나는 딸 러너와 함께 서둘러 귀국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과 강아지가 있는 한국, 흰섬.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한나는 평화로운 일상을 잠시 만끽하지만, 흰섬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다. 물려서 죽은 자가 삽시간에 좀비로 부활하고 사람을 공격한다. 구조의 손길을 기다릴 새도 없어, 비릿한 피 냄새와 처절한 절망만이 가득한 이 흰섬에서 과연 한나는 살아남아 딸 러너는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

 

 

 

 


 

 

 

 

"마약은 원래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천연 진통제였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걸까요?"

"인간의 과욕 때문이겠죠."

- 《야행성 동물》, p78 중에서...

 

 

 

 특별한 소재를 다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계관과 타당성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황희 작가는 인간이 좀비로 변이한 이유와 신종 좀비가 출현할 수밖에 없는 탄탄한 원인을 제시한다.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바이러스가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나약함이 퍼트린 잿빛 질병.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눈앞에서 살벌하게 펼쳐지는 살육전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때문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시원하게 머리를 박살 내며 제거하던 좀비가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면... 거기서 느낄 절망감과 고통이 얼마나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 황희 작가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좀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좀비 마니아인 내가 영화 '웜 바디스' 이후로 좀비에게 연민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인 듯. 《야행성 동물》을 영화화한다면, 여자 주인공 한나 역으로 이시영 배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영화화를 간절히 바랄 만큼 생생하고 잔혹했던 이야기. 하지만 그 끝엔 가슴 뭉클한 인류애와 따스함이 있었다. 믿고 읽는 황희 작가님의 신작, 이번에도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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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 마인드풀tv 정민 마음챙김 안내서
정민 지음 / 비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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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안의 평온을 아껴주세요

글쓴이: 정민 (마인드풀tv)

펴낸 곳: 비채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실수를 자책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괴로워하고,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는 우리는 나약한 존재다. 가벼운 우울감은 어쩌면 건강한 감정이라고 하지만, 자칫 깊은 우물로 떨어지듯 그 감정에 파고들면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힘들다. 힘들고 괴로운 마음을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몬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정도로 아찔한데... 11만 구독자의 응원을 받는 유튜브 채널 마인드풀tv의 주인장 정민 씨도 괴롭고 힘든 인생을 지나왔다고 한다. 흔들림 없는 평온함으로 밝은 에너지를 전파하는 그녀는 자신의 과거가 얼마나 다채롭게 불행했으며, 그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헤어나왔는지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명상을 권한다.

 

 

 

 검도를 배웠던 시절, 운동 전에 가볍게 묵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관장님이 말씀하시길, '어? 내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네'라고 생각하는 순간조차 어그러진 것이라며 정말 무념무상의 상태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나는 정말 멍~한 상태로 몸이 나른할 정도로 기운을 빼야만 제대로 된 명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년간 명상하며 자신을 치유한 정민 씨의 명상법은 좀 다르다.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되고 명상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끌어내기도 하며 아픔을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마주한다. 아침과 저녁 15분가량의 시간을 할애하여 명상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는 개인의 상황과 선호에 따라 얼마든지 편하게 조정해도 좋다고 한다. 명상에는 교과서에 실린 정답이 없으니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될 수 있으면 정해진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어도 괜찮고 마음속 우주에 도달할 때까지 깊은 명상에 빠져도 좋다고 한다. 정민 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명상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슬그머니 집안을 둘러보며 나만의 명상 자리를 찾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전해진 따스함이 참 좋았다. 나의 허물을 보듬고 괜찮다며 토닥여주는 느낌. 고집스럽게 밀어붙이지 않고 그저 차분하게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듯한 포근함. 깊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냈던 정민 씨이기에 명상이 더 절실했고, 자신이 극복해낸 그 아픔을 여전히 앓고 있는 이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것 같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멋지게 탈출한 산증인이라고나 할까? 꾸밈없는 솔직함도 좋았고 다정하고 겸손한 태도도 호감이었던 정민 씨와의 만남. 코로나가 할퀴고 간 일상 때문에 꽁꽁 얼었던 마음을 따스한 봄과 함께 명상으로 사르르 녹여볼까 한다. 정민 씨가 건넨 따스한 위로, 참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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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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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 킨

글쓴이: 옥타비아 버틀러

옮긴이: 이수현

펴낸 곳: 비채

 

 

 

 얼마 전, 오늘의 SF라는 잡지를 읽고 SF라는 장르에 대한 막연한 거리감을 조금 좁혔었다. 우주로 뇌파를 찌릿찌릿 보내며 외계인과 교신하고 혹은 납치당하고 눈부신 빛을 내뿜는 UFO가 짠~ 나타나야만 SF 소설인 줄 알았던 무식에서 조금 벗어난 셈이다. 하지만 이제 호감과 관심이 고개를 들었을 뿐, 아직 짜릿한 재미는 보지 못했던 상태. 그!런!데! 맙소사! 이번엔 임자를 제대로 만난 듯하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SF소설 『킨』은 519페이지를 단숨에 읽어버릴 만큼 흥미진진했다. SF 장르에서 가장 대중적인 소재라는 타임슬립을 통해 시공간을 오가는 주인공 '다나'를 따라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신비로운 여행을 떠났던 시간. 그 짜릿한 여운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친다.

 

 

 

 1976년의 세상에 살고 있던 다나는 어느 날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모르는 곳으로 순간 이동한 그녀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빨간 머리 아기를 구한다. 하지만 부모의 반응은 냉랭하다. 심지어 아기의 아버지는 다나에게 총까지 겨누는데, 생명에 위험을 느낀 그녀는 순식간에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같은 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타임슬립이 벌어지는데 다른 세상은 몇 년이 훌쩍 지나 있다. 다나가 구했던 그 아기는 어느새 6살이 되었고 그쪽 세상이 1815년이라고 알려준다. 소년의 이름은 루퍼스. 왜 다나는 루퍼스의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마다 타임슬립의 웜홀에 빠져들어 그를 구하러 가는 걸까? 다나는 루퍼스가 자신의 조상이란 사실을 눈치채지만, 이 기이한 현상을 제어할 방법도 모르거니와 아직 노예제도가 살아 있던 그 시절에 상당한 괴리감을 느낀다. 눈앞에서 자꾸 사라지는 다나를 걱정한 남편 케빈은 타임슬립이 발생한 순간 다나를 끌어안고 함께 루퍼스의 인생으로 뛰어드는데... 이런, 두 사람이 겪은 풍파와 고생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건 꼭 직접 읽어봐야 함!

 

 

 


 

 

 

 

 루퍼스와 시간과 다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다나가 있는 세상에서의 3시간은 루퍼스 세상에서 8개월에 해당했다. 루퍼스가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시대로 끌려가는 다나가 안쓰러우면서도 루퍼스의 세상에서 노예도 자유민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으로 또 다른 인생을 꾸려가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아기에서 소년으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루퍼스의 인성과 태도가 변하는 과정도 전혀 예측불허. 흑인 노예의 처참한 인생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 많아서 이 소설은 노예제도라는 핏빛 역사를 비판하는 작품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이건 긴장감을 조성하는 주요한 소재일 뿐이니 색안경을 끼고 봐서는 안 되겠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자신을 SF 작가로 규명하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고 좋은 이야기인지 판단 받기를 원하는 소설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로 멋진 이야기를 선사하는 천재 작가라는 표현이 그녀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이 책 『킨』의 첫 장을 펼쳤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다나와의 시간여행이 너무 생생하여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과거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다나의 무사 귀환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19세기 루퍼스의 세상에 좀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상충하며 다나의 복잡한 심경을 깊이 이해했던 순간들. 루퍼스와 다나의 묘한 애증 관계, 케빈이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 어느새 노예의 삶에 익숙해져 그 시대에 물든 다나의 모습, 인간의 추악한 욕망, 무자비한 폭력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인간의 생존 본능,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다나의 행보까지... 이 소설이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무수히 많다. 이런 작품이 SF라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져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예감. 맙소사! 나는 SF와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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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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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지프 신화

글쓴이: 알베르 카뮈

옮긴이: 김화영

펴낸 곳: 민음사

 

 

 영화 같은 삶을 살다 간 작가,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과 《페스트》로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불꽃을 피어오르게 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카뮈에 관한 첫인상은 '잘생겼다'였다. 《이방인》과 《페스트》, 클래식 클라우드 《카뮈》를 통해 그에 관해 새록새록 알아가면서 바람 잘 날 없었던 그의 인생과 작품에 담긴 심오한 철학에 한때 심취했었다. 열병처럼 스쳐 간 카뮈 앓이가 아련한 추억이 될 때쯤 언젠가 꼭 읽어보자 생각만 했던 『시지프 신화』를 집어 든 건 카뮈를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부조리와 그에 맞서는 인생의 자세를 논한 철학서. 제목에 속아 재밌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면 낭패를 볼 작품이니 혹 오해하신 분들이 있다면 꼭 참고하시길!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민음사,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p15 중에서...

 

 

 

 

 

 카뮈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지금까지는 부조리가 결론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이 논고에서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말한다. 인간 정신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순수한 상태 그대로의 묘사만을 보게 될 것이라고... 과학적, 인식론적 사고는 중요치 않다.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은 없으므로. 자살을 '사회적 현상'이 아닌 '개인의 생각과 자살의 관계'로 다룬다. 삶을 직시하는 명철한 의식, 즉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정신적 침식으로 골병이 들기 시작한다. 본래 삶이란 자신의 방식대로 통일되어 있어 '낯익은 세계'지만, 어느 날 문득 환상과 빛을 박탈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을 '이방인'이라 느끼며 삶이 낯설어진다. 통일성이 해체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이때 솟아오르는 감정이 바로 '부조리'다.

 

 

 

 

 

부조리(不條理): 명사

1.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

2. '부정행위'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

3. (철학) 인생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가망이 없음을 이르는 말. 인간과 세계, 인생의 의의와 현대 생활과의 불합리한 관계를 나타내는 실존주의적 용어로, 특히 프랑스의 작가 카뮈의 부조리 철학으로 널리 알려졌다.

네이버 국어사전, 표준국어대사전 중에서...

 

 

 

 

 

과연 자살이 어느 정도로 부조리에 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희망'과 '자살'. 그렇다면 길은 오직 이 두 갈래 뿐인가? 아니면 그 사이에 머무는 게 가능할까?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이 손에 쥔 시간만을 긍정하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죽음을 인지하므로 부조리에 관한 반항으로 행동의 자유를 획득하고, 끝이 있는 시한부 인생이므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자기 삶의 다른 가능성을 모두 살고자 하는 인간이 바로 부조리한 인간이다. 긴장 상태에서 버티는 반항이 자유와 열정을 불러오는 셈이다. 이런 부조리한 인간의 표상이 바로 신화 속 인물 시지프다.

 

 

 

 

 

 

 

 

■■■ 시지프(시시포스)는 누구인가?

 

 

그리스로마에서 가장 교활한 인물로 꼽히는 시지프는 코린토스의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왕국에 물을 대고 싶은 사사로운 욕심에 제우스의 만행을 실토했고 그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임종을 앞둔 그가 아내의 사랑을 시험해보려 자신이 죽거든 시신을 매장하고 말고 광장에 버리라고 했다는데... 인간적 사랑에서 한참 어긋난 아내의 복종에 노한 시지프는 아내를 벌하고자 죽음의 신 플루톤에게 간청하여 세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옥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그는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다가 결국 강제로 끌려가 지옥에서 끊임없이 돌을 들어 올리는 형벌에 처하게 된다.

 

 

 

■■■ 시지프는 왜 부조리한 인간의 표상인가?

 

 

분노한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별을 내린다. 아무 소용없고 희망 없는 노동이야 말로 가장 끔찍한 형벌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묵묵한 형별을 감내하는 것은 부조리한 삶에 대한 시지프의 반항이다. 그는 바위를 떨어뜨리고 산을 내려올 때마다 기쁨을 느낀다. 고생 끝에 찾아오는 휴지의 시간. 곧 바위를 다시 짊어져야 하지만, 그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찰나의 자유를 만끽한다. 아무리 부조리한 일일지라도 시지프는 운명에 맞서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위를 짊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 짧은 감상

 

 

아무래도 철학 에세이이다 보니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일단 '부조리'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상당했고, 과연 카뮈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처음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빙빙 겉돌았다. 아직 고전과 철학 근육이 많이 붙지 않을 터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던 책. 카뮈가 말하는 철학적 의미의 '부조리'를 이해한 순간부터 흐름에 따라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조리한 세계 앞에 선 인간의 세 가지 선택지인 자살, 희망, 반항 중에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은 반항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반항이 자유와 열정으로 이어진다는 결과도 만족. 우리는 어쩌면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인생의 굴레 속에서 시지프처럼 바위를 들어 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엔 분명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기쁨과 행복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또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카뮈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니,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읽어 보며 그의 철학을 더 깊이 사유해볼 생각이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와 함께한 시간은 조금 힘들었지만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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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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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양이를 버리다

글쓴이: 무라카미 하루키

그린 이: 가오 옌

옮긴 이: 김난주

펴낸 곳: 비채

 

 

 많은 독자가 사랑하지만, 내게는 아직 낯선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만나는 하루키는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엄청난 필력을 자랑하는 대작가이기 이전에, 학교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듯한 남학생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와 서먹한 여느 아들의 모습. 작가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이 책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남긴 기록이다. 시대적 괴리감으로 인해 이 뜻깊은 여정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하루키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하루키는 첫 문장부터 아버지를 떠올린다. 열여덟 살에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와 아들로, 당연히 일로써 매일 함께 살았으니 아버지에 관해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그. 꼭 감정 표현에 서투른 아이 같다. 아버지와의 추억 여행은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일로 시작한다. 다 큰 암고양이를 해변에 버리고 돌아온 무라카미 부자.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고양이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안심한 듯했다. 매일 아침 식사 전,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고 열심히 경을 외우던 아버지. 하루키는 매일 정성스럽게 반복되는 그 일과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훗날 아버지의 군 복무 시절을 추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우를 잃고 홀로 목숨은 건졌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전우와 적군을 위해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암과 당뇨로 고통받던 아버지가 2008년 8월, 아흔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하루키는 아버지와 서먹서먹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불과 얼마 전에야, 아버지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뭇 묵직한 이야기라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잠시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면 온통 아버지로 가득한 이야기. 이 글은 그리운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일까? 다행히도 책 끝 무렵에서 하루키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가장 말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자신이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파헤치면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이름 없는 한 방울 같은 우연의 관계지만,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할 책무가 있다고... 그리고 전쟁이 한 평범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이 글을 통해 쓰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은 흐르고, 우리가 점점이 수놓은 하루가 모여 세상이란 존재가 완성된다. 하루키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아버지의 인생이 수놓은 나날을 가능한 한 원래의 형태로 제시하려 했고, 그 시절 그의 곁에 있던 고양이 몇 마리가 이야기의 흐름을 떠받쳐주었다.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일. 이 기억은 하루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고양이를 버리다』라고 제목 지었는지 이제는 조금 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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