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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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양이를 버리다

글쓴이: 무라카미 하루키

그린 이: 가오 옌

옮긴 이: 김난주

펴낸 곳: 비채

 

 

 많은 독자가 사랑하지만, 내게는 아직 낯선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만나는 하루키는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엄청난 필력을 자랑하는 대작가이기 이전에, 학교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듯한 남학생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와 서먹한 여느 아들의 모습. 작가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이 책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남긴 기록이다. 시대적 괴리감으로 인해 이 뜻깊은 여정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하루키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하루키는 첫 문장부터 아버지를 떠올린다. 열여덟 살에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와 아들로, 당연히 일로써 매일 함께 살았으니 아버지에 관해 많이 기억하고 있다는 그. 꼭 감정 표현에 서투른 아이 같다. 아버지와의 추억 여행은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일로 시작한다. 다 큰 암고양이를 해변에 버리고 돌아온 무라카미 부자.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고양이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안심한 듯했다. 매일 아침 식사 전,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고 열심히 경을 외우던 아버지. 하루키는 매일 정성스럽게 반복되는 그 일과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훗날 아버지의 군 복무 시절을 추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우를 잃고 홀로 목숨은 건졌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전우와 적군을 위해 지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암과 당뇨로 고통받던 아버지가 2008년 8월, 아흔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하루키는 아버지와 서먹서먹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불과 얼마 전에야, 아버지를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1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뭇 묵직한 이야기라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잠시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면 온통 아버지로 가득한 이야기. 이 글은 그리운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일까? 다행히도 책 끝 무렵에서 하루키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가장 말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자신이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파헤치면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이름 없는 한 방울 같은 우연의 관계지만,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할 책무가 있다고... 그리고 전쟁이 한 평범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이 글을 통해 쓰고 싶었노라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생은 흐르고, 우리가 점점이 수놓은 하루가 모여 세상이란 존재가 완성된다. 하루키는 자신의 유년 시절과 아버지의 인생이 수놓은 나날을 가능한 한 원래의 형태로 제시하려 했고, 그 시절 그의 곁에 있던 고양이 몇 마리가 이야기의 흐름을 떠받쳐주었다. 고양이를 버리러 갔던 일. 이 기억은 하루키가 아버지와의 추억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고양이를 버리다』라고 제목 지었는지 이제는 조금 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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