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리미티드 에디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방정환, <형제별>

 

 

 

헤어짐은 헤어짐다워야 한다.

오랜 사랑의 무게는

시간의 절약을 미덕으로 삼지 않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자목련이 흔들린다.

바람이 왔나 보다.

바람이 왔기에

자목련이 흔들리는가 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다.

자목련까지는 길이 너무 멀어

이제 막 왔나 보다.

저렇게 자목련을 흔드는 저것이

바람이구나.

왠지 자목련은

조금 울상이 된다.

비죽비죽 입술을 비죽인다.

 

                                -김춘수, <바람>

 

 

남이 울면 따라 우는 것이 공명이다.

남의 고통이 갖는 진동수에

내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커지는 것이 공명인 것이다.

슬퍼할 줄 알면 희망이 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소망이 있는 한

기다린다는 것은 정녕 행복한 일이다.

기다릴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 소리에 눈물 흘렸네

 

 

                                       -김민부 작사 장일남 작곡, <기다리는 마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부모>

 

 

 

사랑 앞에서, 운명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사랑은, 열정은, 낭만은, 행복은 그저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리는 그런 것일까?

 

 

 

그들은 취직을 해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아니 살기 위해 살고 있었으며,

그러다 보니 필경 젊은 시절의 꿈들은 잊힌 채,

그리하여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던 것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