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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평점 :
631페이지~
책이 무척 두껍습니다.
이 책을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내내 붙잡고 있었어요.
몰두하면서 읽다보니 이제야 완독했네요.^^
바느질은 쉬운 게 아니였어요.
물론 쉬운 바느질도 있겠지만 <바느질하는 여자> 이 책을 읽으면서
바느질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어요.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바느질을 하는 여자~
자기의 삶을 모두 바느질에 바친 여자~
한 흰색이어도 멥쌀 같은 흰색이 있고, 갓 지은 백미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금택은 알았다. 배꽃 같은 흰색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이, 두부 같은 흰색이 있다는 것을. 멥쌀 같은 흰색에는 옅은 밤빛이, 갓 지은 흰색에는 초겨울 새벽녘의 푸른빛이, 배꽃 같은 흰색에는 노란빛이 미미하게 감도는 연둣빛이, 달걀 껍데기 같은 흰색에는 탁하고 흐린 분홍빛이, 두부 같은 흰색에는 살굿빛에 가까운 노란빛이 감돌았다.
금택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바늘을 심장에라도 찔러 넣고 싶었다. 그래야만 바늘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서 놓여날 것 같았다. 밤에 잠을 자다가도 금택은 바늘을 잃어버린 것 같아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바늘 때문에 금택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
바늘을 손에 꼭 잡고 있는 동안에도 금택은 바늘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서쪽 방에서처럼 바늘이 어느 순간 손에서 날아날 것 같았다. 심지어 금택은 이미 바늘을 잃어버린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한 착각은 불현듯 엄습했고, 금택은 그때마다 손에 바늘을 들고 있으면서 바늘을 찾았다.
“죽은 사람 옷을 왜 만들어?”
화순이 물었다.
“입히려고.”
“죽은 사람한테 옷은 왜 입혀? 죽으면 아무것도 모를 텐데.”
“깨끗하게 입혀서 보내려고……”
마을 뒷산에 널린 무덤들이 떠올라 금택은 말끝을 흐렸다.
……
그러니까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아기 옷도, 산 사람 옷도, 죽은 사람 옷도 만들 줄 알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더구나 바늘 하나로 그 모든 옷을 만들었다. 바늘이 탄생과 죽음을 아우르는 기이하고 오묘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금택은 소름이 끼쳤다.
오전 내내 누비대 앞에 꿈쩍 않고 앉아 바늘땀을 뜨고 난 어머니의 눈은 멀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바늘땀을 뜨고 나면 어머니의 눈은 어둠과 빛을 구분하지 못할 할 만큼 멀어 있었다. 멀어버린 눈이 돌아오면 어머니는 다시 바늘땀을 떴다. 금택은 문득 어머니의 멀어버린 눈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