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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아랑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관을 준비해 장례를 치르고 좋은 곳에 묻어주도록 하라."
정동호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임금의 지시대로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해동 조선국 평안도 철산군 배무룡의 딸 장화 홍련의 불망비'
라고 씌어 있었다.
<정화홍련전>중에서 - 11페이지
"여기, 여기 있어! 여기 말이야. 알겠어? 아래, 아래를 봐."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니 귀신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누가 왜 자기를 죽였는지 귀신도 알고 싶다. 저도 사고 경위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된 건지 산 사람에게 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있어서 뒤통수밖에 보여줄 수 없지만 나는 마흔아홉 개의 돌에 눌린 채 누군가 꺼내주길 기다리는 내 머리를 그들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까 봐 차마 썩지도 못하는 내 머리...... 그 머릿속에 산 여자와 죽은 여자 사이에 끼인 어느 가련한 남자의 원귀가 머문다고. 그러니 제발 그 머리를 꺼내 마른 땅에 묻어달라고. 이제 원귀로 떠도는 건 지긋지긋하다고. 죽은 여자도 싫고 산 여자도 싫다고.
권피아도 늙어간다. 권피아가 죽으면 나는 누구에게 머리를 꺼내달라고 말해야 할까. 나 지금 이런 꼴이라고 이미 보여주고 말해줬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 일에 둔하다. 그러니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권피아가 얼른 마음을 바꿔야 할 텐데. 그런데 그녀는 애꿎은 청년을 몇이나 죽여야 마음이 풀릴까. 그들은 도대체 애꿎은 청년을 몇이나 죽여야 이 영화를 끝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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