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원철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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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똥을 치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대문 앞을 쓸었다.

부지런하고 청정한 전통이

오늘날 관광객을 부르는

부자 마을의 바탕이 되었다.

쓸고 닦고 청결히 한다면

많은 재물이 들어온다고도

하잖은가.

길 청소는 도道 닦는 일이다.

그러니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우선 주변 청소부터

시작할 일이다.

- 73페이지

 

 

 

`관불용침官不容針 사통거마
私通車馬`라는 말씀처럼 앞문은
언제나 바늘 한 개 꽂을
틈조차 없지만 뒷문은 항상
수레가 지나가도 될 만큼
여유롭다.
또 봄비가 내린다.
같은 비인데도 빨래를 널어놓은
뒤에 만났던 그 비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뒷문을 통해
듣는 빗소리를 귀에 착착
감긴다.

마을의 `주전자`는 절집에
오면 `차관`이 된다. 막걸리를
담는 게 아니라 청정수를
올리는 데 주로 쓰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같은 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주전자가
되기도 하고 차관이 되기도
한다. 주전자가 차관이
되는 것처럼 번뇌가 바로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이니,
범부의 모습으로 성인이
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수백 년 세월 그 자리를
지켜 온 마당 한편의 화강암
수곽은 12월이 되면서 물을 담는
본래 역할을 끝내고 바닥을
드러낸 채 제 몸을 말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철철 물이 넘쳐 가끔
새들도 와서 목을 축이고
잠자리가 꼬리를 담갔다 사라지곤
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고양이가
지나가면서 울음으로 적막을
깨뜨릴 뿐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고요함으로 가득하다.
설사 생명 없는 돌이라 할지라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다.
그런 쉼이 해마다 있었기에
그 자리를 오늘까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12월엔 돌도 쉬고 나무도
쉬고 산도 쉰다.
사람도 매듭을 지어야 한다.

대낮까지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를 한참 동안
물끄러니 바라보다, 이내
스스로 지쳐 버린
느낌이 싫어 찻상을
당기고는 물을 끓였다.
끓는 물은 올라가면서
소리를 내고 비는
내려오면서 소리를 낸다.
두 소리가 방문을 경계로
묘하게 어우러진다.

김장을 담갔다.
자연산 배추는 별로
볼품이 없지만 어디에
내놓더라도 맛과 향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배추걷이가 끝난
휑한 빈 산밭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한 해를
마무리한다.
배추로서는 아름다운
마무리이겠지만
김치로서는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눈길을 걸으면서도
뒤는 남는 발자국까지
걱정하지 말라.
사실 그냥 당신 갈 길만
유유히 바르게 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은
뒷사람의 몫이다.
설사 앞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
간다고 할지라도 그건
같은 길이 아니라
뒷사람이 새로 가는
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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