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그리움
손택수 엮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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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1932~)




어느 날 아침 게으른 세수를 하고 대야의 물을 버리기 위해 담장가로 갔더니 때마침 풀섶에 앉았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담장 높이만큼이나 폴짝 뛰어오르더니 거기 담쟁이 넝쿨에 살푼 앉는가 했더니 어느 사이 미끄러지듯 잎 뒤에 바짝 엎드려 숨을 할딱거리는 것을 보고 그놈 참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감탄을 연거푸 했지만 그놈 청개구리를 제(題)하여 시조 한 수를 지어 보려고 며칠을 끙끙거렸지만 끝내 짓지 못하였습니다. 그놈 청개구리 한 마리의 삶을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몇 겁(劫)을 두고 찬미할지라도 다 찬미할 수 없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습니다.-108쪽

청개구리가 놀라 폴짝 뛰어오른 담장이 시인에게도 있다. 청개구리와 시조 사이의 담장. 절간 안과 절간 밖 사이의 담장. 넘을 수 없는 그 담장이 절망을 부른다. 하지만 절망이 있기에 새로운 꿈이 탄생한다. 끙끙대던 시조 형식을 버리면서 청개구리 할딱이는 숨소리가 바짝 다가왔다. 다 찬미할 수 없는 것이 있기에 청개구리처럼 화들짝 도약하는 말. 담장 안과 밖이 모두 청개구리빛으로 푸르다.-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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