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 희망엄마 인순이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인순이 지음 / 명진출판사 / 2013년 1월
품절


나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산에만 가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치유된다는 기분을 느끼거든. 아마도 어릴 적 강보다 산에서 뛰놀았던 기억이 많기 때문인가 봐.
찔레 새순이랑 싱아 꺾어 먹고, 까마중 따 먹고, 새 둥지에서 새알 꺼내 구워 먹고..., 사계절 언제 가도 산에는 늘 재미있는 일이 널려 있었어.

요즘에는 등산을 해. 등산로가 시작되는 산 아래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북적하지. 저 멀리 보이는 정상에 곧 다다를 수 있을 것처럼 의욕과 자신감으로 중무장한 사람들 말이야.
평지였다가 울퉁불퉁했다가 나무뿌리가 가로지르기도 하고 바위가 가로막기도 하는 등산로를 따라 산으로 오르다 보면 내 몸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려. 가슴이 답답해지고, 발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가 삐걱거리고, 엉덩이 근육이 경직되기도 해.
그래도 계속 가다 보면 점점 숨이 차오르며 이마와 목 뒤로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다가 금세 비 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지.
그 땀을 닦아낼 무렵이면, 지금까지 아프다고 소리치던 내 몸 여기저기서 이상하게도 편안하다고 느껴진다. -123~125쪽

평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곳들이 조금씩 이상 증상을 호소하다가 그제야 제대로 풀린 거지.
그즈음이면 처음 등산을 시작할 때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아. 한두 명씩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 다시 숨을 고르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다 왔겠지 싶으면 다시 또 나타나는 오르막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올라가면 다시 끝도 안 보이는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도대체 어디가 정상이야?'




포기하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정표. 앞으로 몇 킬로미터만 가면 정상이라는 이정표가 늘어지는 다리에 힘을 보탠다.


그렇게 몇 시간 후면 눈앞이 시원해지면 더는 오를 곳이 없는 산 정상에 이른다.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듬직한 바위에 기대고 서면, 시원한 산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며 지친 허파에 생명력 넘치는 새 공기를 가득 채워주지.
그때, 눈에 보이는 또 다른 산의 정상들. 나는 또 한 번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정상에 올라야 다른 정상이 보인다는 사실을 말이다.-123~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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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4-02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순이는 나랑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어릴 적에 산에서 자라서 그런지 바다보다는 산이 참 좋다.
산열매도 많이 따 먹고...
글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