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 옷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옷에 주머니(pocket)가 부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대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그마한 별도의 주머니(囊)를 달고 다녔다. 우리옷에 주머니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마고자와 조끼가 들어오면서부터인데, 마고자는 흥선대원군이 1887년 청나라의 유폐에서 풀려 돌아올 때 입고 온 만주사람들의 마괘가 변하여 입게 된 옷이다. 점차 두루마기의 옆선에 손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의 안쪽에 주머니를 달기도 하였다.

 

제법 커서 웬만한 중요한 것들은 요긴하게 넣을 수 있었다.

1 휴식’의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노상탁발’의 일부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의 전통 주머니는 형태나 장식 방법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달랐다. 두루주머니는 엽낭, 염낭, 또는 낭으로도 불렸다. 주머니 입구에 있는 끈을 잡아 오므리면 둥근 모양으로 되는데 그 형태가 두루뭉술하여 ‘두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귀주머니는 가장자리가 각이 지고 아래 부분의 양쪽에는 삼각형의 마치 귀처럼 생긴 부분이 나온 형태의 주머니이다. 귀주머니는 주로 두 가지 색 이상의 옷감을 이어 만들었다. 자라줌치는 넓이 9센티, 길이 14센티 정도의 장방형의 주머니를 위에서 4센티쯤 넘겨 끝을 세모지게 한 주머니라고 김용숙선생이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데, 자라줌치로 보이는 주머니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궁에서 만든 작은 궁낭은 관례로 평상시 입궐하는 외척의 어린이들과 신혼부부가 문안할 때 내려 주기도 하였다.

주머니는 남녀가 주머니 색상이 다소 달랐는데 남자들은 주로 옥색이나 초록색 등 푸른색 계통의 색을 썼으나 여자들과 아이들은 분홍, 다홍, 초록 등 선명하고 화려한 색으로 꾸몄다. 주머니의 겉에는 수를 놓거나 진주와 같은 보석을 달기도 하고 끈목에 매듭을 짓고 술을 달아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하였는데, 진주낭, 수낭, 오방낭, 부금낭 등 갖가지 다양한 주머니가 전해지고 있다.

진주두루주머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휴귀주머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자라줌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선시대의 풍속화를 보면 남성들이 두 개의 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여러 가지 물건을 넣기에는 주머니의 크기가 작아서 한 개 이상의 주머니가 필요했던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주머니가 달린 마고자와 조끼를 입게 되면서 점차 주머니를 차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주머니가 달린 마고자를 입고 귀주머니와 안경집을 차고 있는 모습

 

여성들도 주머니를 대개는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돈과 같이 중요한 것은 주머니에 넣고 크기가 큰 물건은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머리에 이고 다녔다. 근대에 들어서는 속바지에 커다란 사각형의 옷감을 덧붙여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이 주머니는 제법 커서 웬만한 중요한 것들은 요긴하게 넣을 수 있었다. 치마를 들치고 속바지에 달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주머니는 물건을 넣고 다니는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 민간 신앙과 관련된 역할도 하였다. 궁궐에서는 음력 정월의 첫 번째 쥐날(子日)과 돼지날(亥日)에 붉은 색 종이에 볶은 콩 서너 알씩을 싸서 궁낭 안에 넣고 왕 이하 궁인들까지 모두 찼는데 일 년 내내 농작물의 피해가 없고 악귀를 막으며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글  박윤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한국복식사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덕혜옹주 - 그의 애환과 복식], [대가야복식], [한국전통복식조형미], [조선조왕실복식]이 있다.
자료제공
문화재청 헤리티지 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후애(厚愛) 2013-02-0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휴귀주머니가 갖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