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혹은 다른것

 

 

"저기요, 잠깐만요-"

"네?"


지민이 고개를 돌리자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참석한 장례식에서 마악 오는 길이었기에,

검은 정장이 생소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무언가 틀렸다. 한눈에 보아도 단단하고 우람한 팔다리가 드러났다.

조폭인가? 지민은 겁이나는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깨에 더 힘을 주었다.

누가 뭐래도 남자아닌가.


"무슨 일이죠?"

"저어..."


사내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얼굴이었다. 짙고 굵은 눈썹이 유난히 새카맸다.

헌데 전체적으로 둥글넓적한 얼굴상에 비해 입술이 아주 얇아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혹시, 령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지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같은 사람에게 귀중한 귀갓길의 30초를 빼앗기다니.


"아뇨, 죄송합니다."


무시하고 그대로 걸어가려는 찰나, 강한 아귓손이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아악! 왜, 왜이래요!"

"죄송합니다. 부디 잠시만, 잠시만 제 애기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지민은 몸을 빼내려 발버둥쳤다. 사내는 순순히 지민을 놓아주었다.

그대로 달아날까,

하다가 지민은 사내의 건장한 체격을 보고 자신의 형편없는 달리기 실력을 가늠해보았다.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자 체념은 빨리왔다. 어차피 시시한 종교 개론 나부랭이일 것이다.

1분정도만 들어주다가 빨리 가버리는게 상책이다.


"령이요? 귀신을 말하는 건가요?"

"귀신이라뇨, 그런 잡스런 사령들이 아니라. 품격있는 령을 아느냐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 그래요? 저는 령이고 귀신이고 모릅니다. 교회도 안다닌다구요"

"그렇습니까..."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민은 깜짝 놀랐다.

그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가엾게 보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표정이 이토록 살아서 그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그래요, 그 령이 대체 뭡니까?"

"글쎄요, 령은 혼입니다."

"... 혼과 령의 다른 점이 무어입니까?"


사내는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무지 덩치와 맞지 않는 행동거지였다.


"죄송합니다. 현세인에게 이 말은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알아듣기 힘들것입니다. 귀한 시간을

오래 빼앗는 것 같아 미안하군요. 그럼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민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았다. 2분여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그것도 고인의 상을 치룬 뒤라 매어진 흰색 조건이 아직도 팔에 달린

채로 사이비 종교의 예찬을 듣는 것은 정말이지 엿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무어랄까... 지금 앞에 있는 사내가 자신에게 허튼짓을 하려고 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질문을 바꾸어 하도록 하지요.... 당신은 수호령의 존재를 믿습니까?"


지민은 잠시 멍해졌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영혼의 존재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을 제쳐두고 수호령이라는게 과연 자신 따위에게 붙어 있을까?


"글쎄요... 수호령이라... 그런게 있다곤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렇습니까. 하지만 영적인 존재에 대한 것은 생인이 느끼기 힘든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요. 예기치 못한 행운이나 커다란 재앙을 우연찮게 피하게 된 적은 없습니까?"


지민은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 그것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거대한 재앙을 우연찮게 피하게 된 경위를 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민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었다.

대학교 MT 때, 과 선배들은 담력체험이라며 번지점프를 강제로 시켰다.

고도가 높은 곳이었다. 담약한 남자애들이나 여자들은 죽어도 못하겠다며 고개를 도리질쳤고

선배들은 그 모습을 보고 고민끝에 가장 먼저 뛰는 사람에게 취업자리를 우선적으로 알선

해주겠다며 꼬드겼다. 그래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지민은 손을 들어 저요! 라고 크게 외쳤다.

선배들의 독려와 격려주를 한잔씩 받아마신 지민은 벌게진 얼굴로 점프대 위에 섰다.

아래에는 선배들과 동급생들이 올망졸망 모여 위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분홍색 티를 입고 있던 류경이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이런 터무니없는 용기의 발언은 그녀의 시선을 받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민은 안정장비를 매고서 점프대 끝에 가 섰다. 그리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갑작스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점프를 하면 로프줄이 휘어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었다.

안전요원이 지민을 제지했고, 곧 나아지겠거니 하며 기다리는데, 바람은 잦아들기는 커녕

더욱 요란스럽게 기승을 부렸다. 삼십여분을 기다린 끝에 도로 땅으로 내려온 아이들에게

지민은 집단 야유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지민이 내려오자마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다시 올라가라는 선배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찰나에, 땅에서 대기하던 안전요원의 무전기로

통화가 들려왔다.


"칙- 중간 로프부분에 흠이 있다. 성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까 뛰려던 남자 손님 점프했으면 그대로 곤죽될뻔 했어.

또 이런 애기는 하지말고, 괜히 겁주지 말고 빨리 보내"


지민과 학과 일동은 충격으로 굳어졌었다.

 

"만약 그때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이렇게 애기하고 있지 못했겠죠"

"그렇군요..."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사내의 얼굴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담겨있었다는 건 지민의 착각일까?

"그렇다면, 다른 일은 없었나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뭔가 기묘한 행운이라던가요"

"아, 있었어요. 그게 그러니까...."

 

지민은 류경에게 대쉬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류경은 입학 당시부터 선배들과 동급생들, 복학생들

뭇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학교 내의 여신이었다.

연극 배우가 꿈이라고했다.

그녀가 리허설을 할때에면 극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과 학생들도 방청석을 빼곡히 매우곤 했다.

긴 생머리에 여우눈, 흰 피부에 작은 입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였다.

그녀가 살짝 웃어보이는 눈웃음은 연 여학생중 독보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남학생들의 대쉬가 끊이는 법이 없었다.

연모하긴 하지만 뛰어들어 쟁취하기에 자신은 너무 초라하다고 지민은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극 표가 하나 들어왔다. '피가로의 결혼' 이었다.

두장을 공짜로 얻은 지민은 표를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누굴 데려가야 하나,

이런 로맨틱한 연극을 남자동기와 보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차라리 쓰레기통에 처박고 말지...

고개를 절레절레 휘젖던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요번 피가로의 결혼은 정식 콩쿨수업을 걸친

해외파 극단의 공연이었다. 매매가가 적어도 30만원은 하겠지. 암표로나 팔아볼까...

하다가 지민은 하릴없이 표를 여자 후배에게 넘겼다. 후배는 털털하고 활동적인 여자였다.

왠만한 남자보다 더 친한. 어쨋든 남자랑 가는 것보다야 낮지 않은가.


"선배, 이걸, 나랑, 같이.. 보러가자고?"

"쓸데없는 상상하면 죽는다"


지민은 피곤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경고했다.

후배는 낄낄거리면서 표를 잽싸게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계집애가, 물건 다루는 태도 하고는...

공연 날, 라포드 극장 앞에서 기다리는 그에게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오빠, 나 사정 생겨서 못 갈 것 같아. 그대신 내 동기중에 한 명 보낼게. 극작과 애니까, 연극만

잘 보고 밥이나 먹여서보내"


지민은 당황해서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전화는 꺼져있었다. 똥 밟았다고 생각하며

초조하게 담배를 찾았지만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생각에 잠겼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와 '피가로의 결혼'을? 그것만큼 웃기는 코미디도 없겠군.

결국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집에 가려는 찰나,

작고 하얀손이 그의 갈색 트렌치 코트 끝자락을 잡았다.


"저기..."

"으,응?"

"혜림이랑 연극 보러오신 선배분 아니세요?"


아, 그녀였다. 신류경. 왜 그녀가 여기서 내 코트를 잡아당기고 있을까.

일순, 그녀의 크고 검은 눈에 의문이 담겼다.


"아니세요?"

"아,아니. 맞아. 어.. 그럼, 드, 들어갈까?"


이런 얼간이 같은 놈.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퍼붙는 찰나, 그녀가 쌕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 아름답다. 아름답다.

 

"류경이와 같이 연극을 보고 급속도로 가까워졌지요. 저는 후배가 제가 류경이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꾸민 일인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더라구요, 후배가 극작과

애들한테 주라면서 자기 친구에게 준 것을, 류경이가 다시 전해받은 모양이에요. 뭐... 행운

이라면 행운이죠. 그 덕분에 지금은 캠퍼스 커플이니까요"

"그랬군요. 정말 두근거리는 이야긴데요"


지민은 스스럼없이 사내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 사내에게 친밀감을

느낀다는데에 당황했다.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에게 이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다니. 이제 그만 해야겠다.


"저.. 이제 그만 가야.."

"저, 이지민씨"


갑자기 사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지민은 그처럼 순해보이던 얼굴이 이렇듯 암중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데에 한번 더 놀랐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는거죠? 잠깐, 당신.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는데.. 대체 정체가

뭡니까?"

"그런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지민씨, 제가 지금 당신에게 상기시켜드릴게 있습니다.

당신, 동물을 죽이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뇨. 당신은 동물은 죽였어요. 작은 동물이요. ... 검은 고양이, 기억 안납니까?"


지민은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건.. 그건 사고였어요. 고의가 아니었다구"

"지민씨, 당신은 살리고자 했으면 충분히 그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겁니다."

 

 

지민은 자취생이었다.

전라도에 사시는 부모님은 농사를 지었고, 풍족하진 못해도 매달 생활비를 부쳐주었다.

자취방은 더럽고 작았다.

그 조그만 방에 믿어지지 않을만큼 딱정벌레며 노린재따위가 발견되곤했다.

그의 방은 인접한 도심 숲 속에 잠겨있는 낡은 연립주택에 속해 있었다.

지민은 밤을 설쳤다.

대략 일주일 전부터 밤마다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고양이 소리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사랑의 세레나데였으나,

지민에게는 아기가 우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음에 불과했다.

연립주택따위에 경비가 있을리도 없다. 그는 쉼없이 그 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끼야아아아욱, 끼야아아아옥. 끼야웅, 꺄웅.

공부를 끝내고 두시 경에 잠에서 깬 그는 마른 신경에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에

야구 배트를 챙겨들고 빌라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검은 고양이는 무너진 야트막한 담벼락 위에서 꼬리를 아래로 살랑거리며 계속해서 구애의 소리를 내었다.

녀석은 구애의 노래를 부르는 것에 너무도 빠져든 나머지, 지민이 힘껏 휘두른 야구배트가 자신의 작은 두개골을 박살낼때까지 미동없이 앉아있었다.

작은 고양이의 울음이 멎고 나서, 지민은 정신을 차렸다.

부서진 고양이의 머리에서 뇌와 뇌수가 흘러나왔다. 원망스런 노란 눈은 지민을 무섭도록

노려보고 있었다.


"제길, 제기랄..."


그는 야구 배트를 가지고 서둘러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덜덜떨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다.


"끄야욱.. 끄악! 끄욱,끄욱"


지민은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고양이 소리였다. ...

아까완 달리 힘없고 가느다란.

짐작컨데,

지민의 일격이 놈을 일거에 죽이지 못하고 반 죽음 정도의 상태에 처하게 만든 듯 했다.

지민은 떨면서 이불을 더욱 꼭 여몄다.

고양이의 덜 죽어간 비명소리는 새벽 네시까지 계속되었다. 지민은 한숨도 자지못했다.

놈은 뇌가 보이는 상황에서, 두대골안에 뇌가 외부의 찬 공기와 접촉하는 상황에서

지옥의 두시간을 보냈으리라. 그리고 결국 간 것이다. 죽은 것이다.

이제는 고양이 울음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기랄! 어떻게 당신이 그런 것 까지 알고있는거지? 정말로 기분.. 나쁘군. 대체, 당신 뭐야?

뭐냐구?"

"진정하세요 지민 씨. 전 당신을 비난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충분히 알아요. 그건

우발적인 사고였죠. 당신은 지극히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싶은 말은, 당신은 한

생명을 되살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거에요. 그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내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거짓없이 담백한 표정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지민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 흑.. 크흑. 제길... 고양이가 죽어서 제가 편했다는 생각은 마시죠. 그 녀석이 죽어서

울음소리가 안들렸다고.. 흑, 제가 편하게 잤을 것 같습니까? 오히려 더 악몽이었습니다. 전

일주일을 뜬 눈으로 지새웠어요"


사내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제- 내가 당신에게 기회를 주려합니다. 자, 질문하지 마세요. 어차피 당신은 이해

하지 못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사는 집으로 뛰어가세요. 한숨도 쉬자마십시오. 절대로

쉬어선 안되요.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뒤를 돌아보아선 안됩니다. 지민씨, 부탁입니다.

제 말대로 해주세요."


사내는 다시 한번 그 강한 아귀손으로 지민의 손을 강하게 잡고 힘차게 악수를 했다.

지민은 어리둥절한채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을 끝으로, 사내는 골목길담벼락을 지나 사라졌다.


갑자기 추워졌다.

지민은 그렇게 느꼈다. 풍채좋은 사내가 마치 온유한 온기를 불어오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사라진 골목은 한겨울처럼 찬기를 띄었다. 입김이 나오려 한다.

그때였다.

아기 울음소리다.

... 고양이 울음소리다.

지민은 무작정 골목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미친듯이 달렸다.

얼은 빙판길에서 미끄러졌지만 지민은 생각할 겨를 없이 미친듯 기어 일어났다.

그의 귀 바로 옆에서 고양이 울음이 들리는 까닭이다.


"으힉, 으히이이이..."


지민은 흙투성이가 된 옷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울음은 마치 바로 옆에서 그 참극이 되풀이 되는 것처럼 지민의 귀속에 생생히 들렸다.

슬픈 울음소리, 섬뜩한 울음소리.

그리고 그 자신이 고양이의 작은 머리를 내려치던 잔인할만큼 단순한 파격음- 꽈드득!


"으흑, 으흐흐흐흑"


지민은 달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집까지는 십여분 정도 남았을 것이다.

그가 울기 시작한 까닭은,

이제 뒤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따라 달리는 발자취도 들리는 까닭이다.

사박, 사박 하는 걸음이 아니었다.

지르르륵, 지륵 지륵..

포대자루 끌리는 소리처럼, 대갈터진 고양이가 몸을 질질 끄는 소리처럼!

가로수를 수없이 지나쳤건만 집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는 그렇게 왕래하는 사람이 많던 거리가 마치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이 고요하고 조용했다.

그 정적 사이로 아기 울음소리는 보채는 것처럼 그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지민은 돌부리에 걸려 다시 한번 넘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흘끗 보고 말았다.

어둠 속이었다. 달리고 있었다.

캄캄해서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핏발이 서있는 고양이의 눈만이 섬뜩할만큼 크게 따라오고 있었다.

자동차의 헤드랜턴만큼 큰 눈이었다.

지민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이제 집 대문이 보였다.

그는 미친듯이 집 도어를 열고 들어가 문을 잠궜다.

문을 잠그기가 무섭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멎었다.


"으아아악!"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문에서 돌아서는 순간.

지민은 창문을 꽉 채우는 고양이의 핏발선 노란 동공을 마주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정말이야 엄마, 집에, 우리집에 귀신이 쫓아 왔다니까?"


엄마는 걱정스런 눈초리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그래, 나도 두손 두발 다들었다. 평생 그런거라곤 질색하던 애가 이게 왠 꼴이래니, 응? 너

접때 엄마가 굿한다고 했을때 그렇게 잔소리 하더니"

"그거랑은 틀리다니까! ... 엄만 몰라, 그 고양이 눈깔, 고양이 눈깔......여기 유명한 무당이랬지?

맞지?"


지민은 와락 다가들며 어머니의 손을 붙들어 잡았다.

어머니는 뜨악스런 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색동옷을 입은 나이든 여자가 싸리문을 통해 나타났다.

여자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그대로 모자에게 오더니 그대로 지민의 뺨을 후려쳤다.

기겁하는 어머니와 얼결에 얻어맞은 지민은 화도 내지못하고 무당을 쳐다보았다.


"쯧, 그러게 괭이 새끼는 왜 죽여? 특히 검은 괭이는 예부터 저승사자 손주라고 그랬어. 그 영물을 죽여? 허, 참.. 쯔쯔"


놀라서 커다래지는 어머니의 눈과 이제 살았다는 지민의 표정이 대조적이었다.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저도 그거, 그냥 죽인게 아니라고. 그렇게 좀 전해주세요. 네?"


무당은 코웃음을 치더니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됐어, 돌아가!"

"네?"


지민은 거의 발작할 기세로 벌떡 일어났다.


"제,제발.. 제발 좀 살려주세요"


무당은 지민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늬 애미를 잘두어서 살아있는 거여. 느이 애미에게 감사해"

"네?"

"너, 괭이 새끼 따라오던 날, 왠 남자 만났지?"


지민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덩치의 사내가 스쳐지나갔다.


"그게 니 수호령이다. 일찌감치 죽어야 할 니놈 명줄 붙잡고 뻗팅겨 준게 그 령 덕분이라 이거여"

지민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처럼 헌신적인 영도 드물것이다. 하물며 검은 괭이 영에서 핏줄을 지켰음에야 말할 것도 없지. 집안 사람들 영혼들이 참 맑고마. 넌 재수가 참 좋은줄 알아야 돼"


무당은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축객령을 내렸고 지민은 어머니에게 기대다 시피 점집을 빠져나왔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지민도 심신이 지쳐 무슨 말을 건넬 처지가 아니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창가에 머리를 괴고 말이없는 지민에게 어머니가 지갑에서 사진을 빼어내 내밀었다.

지민은 가만히 사진을 받아들었다.

... 그 사내였다. 짙은 눈썹의 풍채좋은 남자.

그 사내가 어머니에게 어깨동무를 두르고 있었다. 아직 학생처럼 보이는 어머니.


"니 외가 삼촌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지. 대학교까지 붙어불고서 나 대학보낸다고

물건팔기 시작한 사람이야. 알고보니 지역 건달 눈에 들어서 건달 노릇을 하고 있었단다.

그때는 오빠가 왜 그랬나 참 싫었지. 그런데... 이 애미가 지금 생각해보니. 가난한 집안에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뛰어든 짓이 아니었나 싶구나."


지민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물었다.


"전 한번도 몰랐어요. 왜...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그 사람, 손 씻겠다고 했다가 칼침맞고 죽었어. 이런 애기... 넌 알 필요가 없는 것들 아니냐..

헌데.. 그 사람을 네가 보았다니. 도무지 난..."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닌 손으로 얼굴을 감싸셨다.

눈썹 짙은 남자는 내 삼촌이었댄다.

길에서 마주쳤던 그 인연이, 날 살린 것으로 여겼는데 틀린 말이었다.

엄마의 학생 시절부터 직접 폭력의 전선에 뛰어들어 집안을 뒷바라지 한 것처럼,

그는 죽어서도 엄마의 아들인 나를 지켜주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뒤돌아보지 말라던 말을 한 뒤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경자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언제나 네가 가장 큰 희망이었다고.....

 

어머니 이름, 김경자.

나는 이 말을 어머니에게 전해주어야할까, 그렇지 않을까-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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