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한 일
내가 기억하는 것중 가장 오래된건 4살때
초겨울의 찬바람이 부는 저녁 무렵, 혼자서 그네를 타고 있을 때였어
손 발이 꽁꽁 얼어붙어 몹시 차가웠지만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나..
할머니가 데리러 왔음 좋겠다, 여긴 매일 오는 공원이니까 분명 금새 찾을 수 있겠지
그러는 동안은 바람에 흔들리는건지 그네가 흔들리는 건지 모르게되 버리지..
난 엄마한테 학대당하면서 컸어
물을 흘리거나, 조금이라도 소리내서 걷거나, 소리내서 웃었거나...
그러면 바로 체벌을 당했어, 엄마가 분이 풀릴때까지 맞았어
안전핀으로 찌르거나 한겨울에 찬 물 속에 집어 넣기도 했어
담배 연기를 마시게 하기도 하고..
등짝이 재떨이가 되기도 하고..
밥을 굶기고..
집에서 쫓겨나는 건 일도 아니었지뭐
나를 향해 몽둥이를 들어올리는 엄마는... 즐거운듯해 보였어
아빠는 봐도 모른척, 실수해서 혼날때 아무리 발에 마구 차이고 있어도 옆에서 TV를 보면서 밥을 먹고 있어
끝나고 나면 엄마 말 잘 들어 라고 할뿐..
날 구해주는건 할머니 뿐이었어
맞아서 생긴 상처를 치료해주고 한 이불에서 같이 자 줬어
나를 감싸고 대신 발에 차인적도 있어
난 그걸 봤을때 너무 무서워서 울어버렸어
나 때문에 맞았다고 화를 내는게 아닐까 생각했거든
이젠 내가 싫어지는게 아닌가 싶어서 숨이 멎어버릴 정도로 무서웠어
둘이서 방으로 돌아와서는
울면서 할머니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나는 맞아도 되니까..괜찮다며 필사적으로 빌었어
할머니는 나를 안고 울었어, 그리고 그대로 잠이 들었어
이건 아마도 6살때 쯤 이었나,
한밤중에 눈이 떠졌는데 옆에서 자고 있어야할 할머니가 없는거야
분명 화장실에 갔을거라 생각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어
근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아..
어쩜 엄마에게 무슨 일을 당한게 아닌가 생각하고 조용히 일어나서 문밖의 상태를 살폈어
아무소리도 안들려
소리가 안나게끔 문을 열고 할머니를 찾아나섰어
새카맣게 어두운 집안을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걸었어
걸리면 또 맞을테니까..
화장실에도 주방에도 거실에도 없었어
어쩌면 날 버리고 나가버린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거실을 지나 현관에 신발에 있는지 보러 가려고 했어
근데 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는지 커텐이 바람에 움직있는거야
밖에 사람이 서있는 것처럼 보여서 문틈으로 살짝 내다 보았어
할머니가 있었어
이쪽을 향해 무표정으로 서 있어
다행이다.. 날 두고 간게 아니구나
안심이 되자 너무 기뻐서 커텐을 열려고 했어
근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뭔가 이상해..평소 할머니랑은 뭔가 달라...저런 분위기의 할머니는 본적이 없어
뭐가 이상한건지는 바로 알 수 있었어
할머니는 강아지의 머리를 들고 있었어
어디선가 잡아 온거겠지...연한 갈색이었는데, 혀가 축 늘어져 있어
크기는 중간정도..그래도 목을 자르는건 힘들었겠지...
강아지 머리도.. 발밑에 뒹글고 있는 몸통도.. 할머니도....빨갛게 물들어 있었어
잠시 그렇게 서있던 할머니는 곧 나른한듯이 강아지의 몸통과 머리를 들고 어디론가 가버렸어
봐선 안되는 것을 봐 버린거겠지...
나는 떨면서 이불속으로 돌아와 제발 할머니를 원래대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었어
신같은건 없다는거 알고 있었지만 말야
눈을 뜨자 할머니는 옆에서 자고 있었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싶어 깨우지도 못하고 계속 보고만 있었더니 깨어났어
"잘 잤니? 배고프지?"
하며 웃어주는 할머니는 평소의 할머니였어
아....다행이다..
안심을 하고는
"응~!배고파" 하고 대답했어
할머니한테서 풍기는 옅은 비린내따위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
언제부턴가 집안에 여우나 너구리, 개 같은것들이 어슬렁 어슬렁 거리는게 보이기 시작했어
아빠도 엄마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한테만 보이는 거라 생각했어
하루는 할머니한테 그 일을 말했더니 엄청 기쁜듯한 얼굴을 했어
"그게 뭘 하고 있든?"
하고 물어보길래 있는 그대로 말했지
아빠랑 엄마한테 착 붙어있는데 그게 붙어있으면 둘다 엄청 상태가 나빠보인다고...
밤중에 엄마가 비명을 지르는 일이 많아졌어
낮에도 파래진 얼굴을 하고 있어
아무래도 별로 자지 못하는것같아
엄마의 몸 상태가 나빠진뒤로 혼나는 건 확실히 줄어들긴 했는데...
왠지 초조하고 안절부절 못해 하는 것같아
라이타 불로 지지고 손바닥에 들어간 연필심은 몇개나 되는지...
그때 쯤 부터 할머니는 현관부터는 들락거리지 말라고 했어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가 시킨 일인걸..
할머니와 나는 뒷문쪽에 구두를 놓고 그 문으로만 집에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하게 됐어
집안에 비린내가 가득해졌어
특히 아빠랑 엄마한테서 심한 냄새가 났어
둘다 깔끔한 성격이었는데 점점 옷차림에 신경도 안쓰게 됐어
긴 손톱에 때가 시커멓게 꼈어
옷도 뭔가 더러웠고..
젓가락을 쓰지 않아...
아빠가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어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어서 뒤에서 살짝 다가가 봤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어
아빠는 심한 냄새가 났어
그게 짐승의 냄새인지, 아빠 속옷에 쌓인 배설물 냄새인지 잘 모르겠어
엄마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질러
공중에다 부엌칼을 휘둘러
그러고보니 최근엔 혼난적이 없네
더이상 엄마한텐 내가 안보이는 거겠지?
7살때, 시청이랑 병원에서 사람이 와서 엄마, 아빠를 데리고 갔어
할머니는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모두가 돌아가고나자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어
나도 웃었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할머니랑 둘뿐이라는거 이것만으로도 더이상 무서운게 없어
13살때, 할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을 쓸 수 없게 되고 말았어
집안에 있던 짐승들은 전부 할머니한테 붙어있었어
그걸 말하자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분명 되돌려 받은 걸거라고 중얼거렸어
그뒤로 2년, 치매로 천천히 어린애가 되가던 할머니는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어
온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습진과 두드러기가 퍼져, 긁고 또 긁다가 죽었어
부검을 해보니 사인은 두드러기로인해 목이 부은 질식사래
원인 불명의 습진과 두드러기는, 동물 알레르기라고 하더라고
동물은 기른적도 없었지만, 알겠다고 대답했어
나는 아직 그 집에 살고 있어
변함 없이 뒷문으로 출입을 하고 있어
동물들의 모습도, 마치 짐승 같이 되어 버린 할머니의 모습도 보여
할머니가 무엇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분명 날 위해 생각한 일 일거야
어떠한 모습이됐든...
할머니가 옆에 있어주니까...그것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