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아빠>

오늘 아침도 조용하다.

엄마가 바가지에 물을 받아 와 얼굴에 끼얹어야 간신히 눈 뜨던 내가 요즘은 아버지의

이불 개라.” 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 아침은 시끄러웠다.

배고프니 여물을 달라는 것인지 외양간에서는 소가 음매, 돼지우리에서는 돼지가 꿀꿀거렸다.

닭장 속 닭들은 모이 먹느라 정신없고, 강아지는 그런 닭들을 보며 짖어 대느라 바빴다.

외양간에는 송아지, 닭장 속에는 암탉이…….” 라는 노래를 부르며 우리 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소가 보이지 않는다.

꿀꿀, 꼬꼬댁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강아지도 조용한 아침이 낯설기만 한지 짖는 소리에 힘이 없다.

가축이 없어지기 시작할 때쯤인 것 같다.

엄마가 사라진 것이……. 엄마는 옆마을로 며칠만 품앗이 해주러 간다고 한 뒤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아버지는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마당에 나락을 너신다.

며칠 동안 내린 비 때문에 벼가 많이 눅눅해진 모양이다.

나도 급하게 옷을 챙겨 입는다.

순창에서 출발한 첫차가 곧 도착하기 때문이다.

나락을 너신 아버지가 논에 나갈 채비를 한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얌전히 나락 지켜. 참새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혀.”

아버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서신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나도 종요한 일 있는데.

아버지가 내 마음을 알 리 없다.

마루에 털썩 주저 앉는다.

100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해가 중천이다.

안 되겠다.

나가야겠다.

집 안 곳곳을 뒤져 지겟작대기 두 개를 찾아낸다.

지겟작대기를 십자 모양으로 엮고 안방에 걸린 아버지 윗도리를 씌운다.

뭔가 빠진 것 같은데.

, 모자를 안 썼네.

모자까지 씌우니 허수아비가 제법 무섭다.

참새들이 겁먹고 얼씬도 못할 거야.

부랴부랴 집을 나서는데 아침에 아버지가 하신 말이 생각난다.

오늘은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얌전히 나락 지켜.”

아버지한테 걸리면 끝장이야.

해 지기 전에 얼른 돌아와야지.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 아빠한테 편지를 쓰고 나가야겠다.

그럼 아빠도 이해해 주실 거야.

아버지.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요. 대신 허수아비 만들어서 세워 놨어요. 죄송해요. 혼내지 마세요. 막내 올림.”

막차까지 기다렸는데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겁이 난다. 집에 가면 난 죽었다. 참새가 쌀을 다 먹었으면 어쩌지.

허겁지겁 달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계신다.

흙 묻은 장화를 신은 걸 보니 여태 씻지도 않으셨나 보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한 번 보고 손에 들린 편지를 한 번 보신다.

그러고는 나를 다시 보고 힘없이 웃으신다.

우리 막둥이가 아빠한테 편지 썼는가? 뭐라고 쓴 겨? 아빠는 까막눈이라 뭐라고 쓴지도 모르겄다. 허허허.”

아빠는 그냥 웃기만 하시는데 나는 아빠한테 혼나는 것보다 더 마음이 슬프다.

우리 아빠는 글자를 모른다.  

- 출처 좋은생각 설은아님 호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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