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의 낙성식 때 수덕각시에게 함께 떠나자고 하였으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방문을 열자 사라지는 수덕각시를 잡으려는 순간 바위가 갈라지면서 버선 한 짝만 남았다. 이후 봄이면 갈라진 바위 틈에서 버선꽃이 피어난다. 관음보살의 현신 수덕각시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수덕사’라 짓고, 산마루에 정혜가 세운 절을 ‘정혜사’라고 했다. 이 이야기가 수덕사 백련암 뒤에 있는 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수덕사에 얽힌 전설이 또 하나 있다. 홍주 고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았는데, 어느 날 노루 사냥을 하는 도중에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수덕 도령이 덕숭 낭자를 찾아가 혼인을 하자고 졸라대자, 덕숭 낭자는 절을 세워주면 혼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수덕 도령은 절을 지었으나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 때문에 절이 불타 버렸다. 그 뒤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지어 결혼할 수 있었으나, 덕숭 낭자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한 수덕 도령이 강제로 덕숭 낭자를 안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낭자의 버선 한쪽만 남았다. 그 자리는 바로 바위로 변했고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덕숭 낭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덕숭산’이라 하였고,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수덕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조선 말기의 경허 선사가 수덕사에서 선(禪) 수행의 풍토를 조성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이어 경허의 제자 만공 선사가 1898년 사찰을 중창하고 후학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수덕사는 선을 중시하는 선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
조계종 5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 수덕사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익히고 실천하는 강원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수덕사 견성암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선원인데, 하엽 스님의 가풍을 이어받은 이곳의 비구니들은 오늘도 수도정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