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보따리 -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옛이야기 112가지 살아있는 교육 23
서정오 지음 / 보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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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나이도 똑같고 몸집도 비슷한 세 아이가 같은 글방에 다녔어. 그런데 이 세 아이에게는 소원이 한 가지씩 있었어. 한 아이는 신선이 되는 게 소원이어서 이름을 '신돌이'라 했고, 또 한 아이는 글 잘하는 선비가 되는 게 소원이어서 '선돌이'이라 했지. 또 한 아이는 부자가 되는 게 소원이라 '부돌이'라고 했어.
세 글동무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나 봐. 그래서 배우는 책을 죄다 줄줄외게 됐어. 하루는 글방 훈장님이 셋을 불러 놓고,
"너희들이 그동안 글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이제 내가 더 가르칠 것이 없구나. 그러니 이제부터는 내 곁을 떠나서 너희들끼리 공부를 하여라."
하더래. 그래서 셋이 조용한 산속에 가서 글공부를 하기로 했어. 훈장님과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산으로 들어갔지. 마침 깊은 산속에 빈 절이 있어서, 거기서 잠도 자고 밥도 지어 먹으며 글공부를 했더래.
셋이서 약속을 하기를, 아침밥은 신돌이가 짓고 점심밥은 선돌이가 짓고 저녁밥은 부돌이가 짓기로 했어. 그런데 밥을 지어 상을 차려 오는 품이 셋이 저마다 다르더란 말이지.-107~110쪽

신돌이는 밥을 그릇에 퍼 담을 때 두 동무 것을 먼저 수북하게 담고, 남은 것을 제 밥그릇에 퍼 담아. 그러니까 늘 자기는 찌꺼기밥이나 누룽지 차지지. 그래도 군말 한번 하는 법이 없어.
선돌이는 밥을 어떻게 퍼 담느냐 하면, 세 밥그릇에 저울로 단 듯이 똑같이 밥을 담아.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똑같이 담아 놓으니 누가 더 잘 먹고 못 먹고 할 것이 없지.
부돌이는 늘 자기 밥그릇에 먼저 밥을 수북이 퍼 담고 나서 남은 찌꺼기와 누룽지를 두 동무 밥그릇에 퍼 담아. 그러니 아무리 양식이 모자라도 제 밥그릇은 늘 푸짐하지. 그래도 다른 두 동무는 알고도 모르는 채, 쓰다 달다 말이 없었어.
이렇게 하루 세끼를 먹으며 공부를 하니 신돌이는 날이 갈수록 몸이 야위고, 선돌이는 날이 가도 어제가 오늘 같고, 부돌이는 날이 갈수록 피둥피둥 살이 쪘어. 이렇게 살다 보니 삼 년이 후딱 지나갔거든. 이제 글공부도 할만큼 해서 산을 내려가기로 했지.
"이제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저마다 소원을 이루고 십 년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이렇게 약속을 하고 헤어졌단다.-107~110쪽

그 뒤에 선돌이는 글공부를 더 많이 해서 소원대로 이름난 선비가 되었어.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도 하고 말이야. 벼슬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일을 칼로 무 자르듯이 경우 바르게 딱딱 잘하니까, 사람들이 과연 선비 중의 선비라고 추어주고 그래. 소원대로 잘 되었지.
그러다 보니 두 동무들과 약속한 날이 되었거든.
'신돌이, 부돌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원대로 신선 되고 부자 되어 잘 살고 있을까?'
하면서, 도포 입고 갓 쓰고 옛날에 공부하던 산속으로 들어갔단 말이야. 가보니 옛날 절이 있던 자리에 절은 온데간데없고 아담한 초가집이 한 채 있더래. 뜰에는 갖가지 꽃이 활짝 피었고 그윽한 향기가 집 안에 가득한데 쌍무지개가 초가지붕에 두둥실 걸려 있더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서 입을 딱 벌리고 바라보고 있으니, 집 안에서 하얀 옷 입은 사람이 굽은 지팡이를 짚고 걸어나오거든. 가만히 보니까 바로 신돌이야.
"자네는 소원대로 신선이 되었네그려."
"자네는 소원대로 선비가 됐군."
둘이서 얼싸안고 반가워했지. 신돌이가 선돌이를 데리고 집 안을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는데, 신선이 사는 집은 좁아도 넓더래. -107~110쪽

동쪽 창문을 열고 보니 봄 경치가 나타나서 온갖 꽃이 울긋불긋 피어 있고, 남쪽 창문을 열어 보니 여름 경치가 나타나서 푸른 숲이 우거져 있더래. 서쪽 창문을 열고 보니 단풍이 한창인데 온갖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고, 북쪽 창문을 열어 보니 흰눈이 가득 쌓여 눈이 부시더래.
선돌이가 이렇게 좋은 구경을 실컷 하고 보니, 부돌이 소식이 궁금해지지 않겠어?
"부돌이는 왜 여태 안 올까? 약속을 잊어버렸나?"
그랬더니 신돌이가 한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부돌이는 벌써 여기 와 있다네."
하거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까 신돌이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주춧돌 아래를 가리킨단 말이야. 거기를 보니까, 글쎄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이렇게 쳐다보고 있더란 말이지.
"저 구렁이가 부돌이란 말인가?"
하니, 신돌이가 고개를 끄덕끄덕해.
"아니, 어쩌다가 부돌이가 구렁이가 되었단 말인가?"
"부돌이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남의 것을 탐내다가 그만 하늘의 벌을 받았다네."
십 년 전 셋이서 글공부할 때도 제 밥그릇만 채우더니, 그 뒤로도 욕심을 못 버려서 죗값을 치르나 봐. -107~110쪽

아무리 죗값을 치른다고 해도 옛 동무가 저런 꼴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하겠어. 선돌이가 신돌이를 붙잡고 사정을 해.
"여보게, 아무려나 같이 공부하던 글동무인데 불쌍해서 못 보겠네. 자네는 신선이니 무슨 수가 없겠는가?"
그러니까 신돌이가 한참 동안 궁리를 해. 그러더니 구렁이더러,
"여보게, 뒤뜰에 가면 복숭아 나무가 하나 있으니, 거기 가서 복숭아를 있는 대로 다 따 오게나."
하고 심부름을 시켜, 구렁이가 된 부돌이가 그 말을 듣고 스르르 뒤뜰로 갔어. 구렁이를 보내 놓고 나서 신돌이가 하는 말이,
"만약에 부돌이가 복숭아를 그대로 다 가지고 오면 하늘의 용서를 받아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걸세."
이러거든. 조금 있으니까 구렁이가 복숭아를 세 개 입에 물고 와. 신돌이가 그걸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단 말이야.
"왜 그러는가? 부돌이가 뭘 또 잘못했는가?"
"뒤뜰에 열린 복숭아는 네 개인데, 자기가 한 개를 따 먹고 세 개만 가지고 왔어. 아직도 욕심을 못 버린 게야. 도대체 사람 노릇을 할 수 없는 심보니 난들 어쩌겠는가."-107~110쪽

그 소리를 들은 구렁이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더래. 그 뒤로 신돌이, 선돌이는 오래오래 잘 살았는데 부돌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더란다. 지금도 구렁이로 살고 있는지 몰라.-107~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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